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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기자명 김준희

수많은 연주로 보살행 실천한 ‘음악계의 아난다’

20여년 동안 개정 작업 거쳐 2곡의 피아노 협주곡 탄생시켜 
존경하던 베토벤 닮고자 노력…화려한 기교와 서정성 담겨져
부처님 말씀 듣고 기억해 편찬 작업 임무 맡은 아난다와 닮아

중국 돈황 막고굴 45번 석굴에 조성돼 있는 아난존자상.

가장 화려하고 멋진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장르는 아마도 피아노 협주곡일 것이다. 협주곡(concerto)이란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을 위한 작품을 말한다. 18세기중반 이후 피아노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 후로 많은 작곡가들이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프란츠 리스트에게도 피아노 협주곡은 매력적인 장르였다. 연주 여행을 다니던 젊은 시절, 수많은 독주곡을 작곡하면서도 항상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갈망이 컸다.

리스트는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을 남겼는데 두 곡 모두 처음 스케치를 시작한 후 20여년이 지난 후 초연될 만큼 여러 차례의 수정과 개정 작업을 거쳤다. 10대 시절부터 협주곡에 대한 습작은 꾸준히 계속 되었는데, 그 결과 리스트는 스스로 만족할 만한, 교향곡에 필적할 규모와 내용의 피아노 협주곡을 탄생 시킬 수 있었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등장하기 전, 낭만시대의 피아노 협주곡들은 다소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빠르고 화려한 독주부분만 강조가 되거나, 피아노 부분에 비하여 오케스트라가 빈약하거나, 전체적으로 극적이지 못하거나, 웅장하지만 길고 무거운 작품들에 비해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두 곡은 간결하면서도 균형 잡힌 획기적인 작품이었다.  

천재적인 연주 실력과 작곡 능력을 갖추어 수많은 독주곡과 편곡 작품들을 만들어낸 리스트였지만, 협주곡을 마주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관습적으로 내려오던 틀에 맞추어 작품을 쓰기는 싫었다. 특히 형식면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피아노 협주곡 제1번 Eb장조’는 1832년에 작곡을 시작하여 1955년 초연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고, 결국 단악장의 완벽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한 가지 주제를 변형시켜 나가는 기법이 가장 무르익었을 때 발표된 작품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카덴차와 같이 시작하는 주제는 곡의 전반에 걸쳐 각인된다. 20분이 채 되지 않는 이 곡은 네 부분으로 이루어졌으나 각 부분의 긴밀한 관계로 통일성이 있는 단악장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는 협주곡의 첫 부분을 회상하며 휘몰아치듯 질주하여 끝맺음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스케르초 악장에서 트라이앵글의 사용은 매우 새로운 시도였다. 피아니스트로서 최상의 비르투오소적인 요소들을 담은 것은 물론이다.  

바이마르의 아파트에서 Bechstein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

리스트는 어린 시절 그를 가르친 카를 체르니(Carl Czerny)와 함께 베토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바흐의 평균율을 조를 바꾸어 연주하는 어린 리스트에게 베토벤은 “너는 참 대단한 아이구나”라는 칭찬을 했다. 자신감을 얻은 리스트는 베토벤에게 “선생님의 곡을 연주해보고 싶어요”라고 하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베토벤은 연주를 마친 리스트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행운아로구나.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게 될 테니까!”

그 이후 리스트는 언제나 베토벤을 닮고 싶었고, 그처럼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누구보다 짜임새 있는 교향곡과 협주곡을 남긴 베토벤을 생각하면서 그는 피아노 협주곡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에 담긴 화려한 기교와 색다른 서정성, 그리고 그 작품 안에서 자유롭게 펼쳐진 그의 피아니즘에는 어떤 성취의 기쁨이 느껴진다.

대담한 시도, 영웅적인 스케일, 감수성 충만하고 완벽한 작품에서 기쁨과 환희[慶喜]라는 의미를 지닌 부처님의 제자 아난다존자를 떠올려 본다. 마지막까지 부처님의 시자 역할을 했던 아난다가 부처님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듣고 기억하여 편찬 작업의 대임무를 맡은 것은, 뛰어난 암기력으로 많은 당대의 작품들을 편곡하고 수많은 연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공개레슨과 제자 양성을 했던 리스트의 행보와도 닮았다. 

부처님은 “아난다야, 너는 앞으로 보살행, 즉 다른 사람과 세상을 위해 삶을 살고, 남을 가르치고 구원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면, 마침내 부처의 경계에 이를 것이다. 그때 ‘산해혜자재통왕여래(山海慧自在通王如來)’가 될 것이며 모든 능력을 다 갖추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법화경’의 수학무학인기품(授學無學人記品) 내용이다. 
 

바이마르시절의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 A장조’는 1번에 비하여 훨씬 더 성숙한 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의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인 ‘소나타 B단조’의 완성과 더불어 처음부터 단악장으로 계획했던 이 곡은 전반적으로 각 부분 간의 연결성이 돋보인다. 강렬한 카덴차와도 같은 도입부가 아닌 낮은 목소리로 은근하게 시작하는 듯한 점도 인상적이다. 자연스럽게 빠른 템포로 넘어가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간의 대화 역시 훌륭하다.

스스로 ‘교향적 협주곡’이라고 부를 만큼 오랜 시간동안 공을 들여 작곡한 리스트의 두 개의 피아노 협주곡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미를 갖춘 간결하고 획기적이면서도 리스트의 피아니즘을 극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악성(樂聖)’ 베토벤을 닮고 싶어 했던 리스트의 두 피아노 협주곡과 전편에서 소개한 편곡 작품들을, 아난다가 부처님 말씀을 빠짐없이 듣고 편찬한 경전들에 비유할 수 있을까. 

작품과 연주를 통해 열망과 행복을 추구했던 리스트와, 부처님 말씀을 전한 아난다의 잘생긴 외모도 닮았다. 오늘날의 아이돌과도 같이 많은 이들의 인기를 끌었던 리스트는, 그 덕분에 더욱 많은 이들을 연주회장으로 이끌었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의 훌륭함을 전할 수 있었다. 아난다 역시 단정하고 깨끗한 외모와 배려심 많은 다정한 성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샀다.

“얼굴은 맑은 보름달 같고 / 눈은 푸른 연꽃 같은데 / 불법의 큰 바닷물이 /아난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갔도다. / 사람들의 마음과 눈으로 하여금 / 보기만 하면 크게 환희하게 하고 / 부처님을 뵈러 온 모든 이들 / 잘 인도하여 화목함을 잃지 않네.” 

‘대지도론’의 게송에서도 나타난 수려한 외모로 많은 이들에게 불법을 전할 수 있었던 아난다와 낭만주의 피아노 음악의 한 획을 그은 프란츠 리스트의 복덕을 함께 생각해 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46호 / 2020년 7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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