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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구정평의 ‘몽중인’(1986)

환생으로 사랑 찾고 다시 이별하는 ‘회자정리’

아리의 점술가 조모 송위에 “진나라 여인 기다려” 연기설 암시
송위는 8년 만난 연인 아리보다 2000년 전 사랑한 장예화 선택
장예화, ‘아름다운 한 쌍의 혼백’으로 남기 위해 인연 따라 떠나

영화 ‘몽중인’은 윤회를 경유한 사랑 영화의 전형을 담고 있다. 사진은 영화 ‘몽중인’ 스틸컷.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는가. 이 질문에 많은 심리학자들은 답을 찾았다. 상대에 대한 설렘이 동반된 사랑의 유효 기간은 9주 내외라는 통설이 통용되고 있지만 개인마다 기간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감정의 유효기간은 사랑의 지속 불가능성에 대한 전제로 도출 가능한 개념이다. 사랑지상주의자는 ‘봄날은 간다’의 상우처럼 ‘사랑은 어떻게 변하는가’라며 항변할 것이다. 영화에서 소환된 사랑은 대체적으로 유효기간이 없으며 사랑은 영원하다는 이상에 충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최대 유효기간은 두 인물이 만나서 사별할 때까지이기에 유한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효기간을 영원으로 연장하려는 시도는 생전의 사랑을 전생의 사랑까지 확장하는 영화를 탄생시켰다. 

이와 같은 계열의 영화는 사랑의 영원함이라는 이상에 충실하기 위해 인간은 거듭 태어난다는 환생과 윤회의 불교적 세계관을 적극 수용한다. 환생을 통한 사랑은 ‘은행나무 침대’에서 윤회를 거듭하면서 사랑을 이어가는 인물을 소환하고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남자 제자로 환생한 이를 사랑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몽중인’은 진시황 시대에 사랑했던 두 남녀가 2000년이 지나 꿈을 통해 현세에 만나서 사랑을 시도한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전생의 사랑을 현생의 사랑까지 이어서 지속한다는 서사이며 이는 사랑의 유효기간을 전생까지 확장하여 사랑의 불멸성 신화로 귀결된다. 사랑의 유효기간을 전생까지 포함한다면 한 번의 사랑은 윤회를 통해 영원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성립된다. 한 번의 사랑이 모든 이전의 사랑과 연을 맺고 있다면 인간의 인연과 사랑은 무한한 시간의 씨줄과 날줄이 교직하여 이뤄지는 숭고한 사건이 된다.  

‘몽중인’은 전생의 사랑을 현생에서도 이어가는 윤회를 경유한 사랑 영화의 전형을 담고 있다. 지휘자 송위(주윤발 분)는 공연장에서 연주하다가 물위에서 떠오르는 진나라 시대의 진용(秦俑)의 환영에 사로잡힌다. 진용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2000년 전의 사랑인 장예화(임청하 분)와 재회를 예견한다.  

송위에게는 8년 동안 만나고 있는 아리(양설의 분)라는 연인이 곁에 있다. 그들의 관계는 애정 장면에서 만남의 시간과 관계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은 오래된 깊은 관계의 연인이다. 장예화는 꿈을 통해 진나라 때 송위와 밀애를 나누면서 ‘내가 죽으면 같이 죽겠다, 우리는 아름다운 한 쌍의 혼백이 될거야’라는 언약을 주고받는다. 예화는 꿈에서 깨어나서 이 장면을 지우기 위해 비누로 몸을 씻어낸다. 하지만 꿈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두 인물의 장면 교차는 송위와 장예화가 전생의 연인임을 암시한다. 

송위와 아리는 아리의 조모와 만나게 된다. 점술가 조모는 송위에게 “당신은 2997세로 진나라 때 사람”이라고 전하고 “여인이 기다리고 있다”고 예언한다. 아리의 조모는 아리에게 그를 보내줄 것을 당부하고 사람은 “인연에 따라 왔다가 인연에 따라 가는 것”이라면서 연기설을 암시한다. 이 영화는 홍콩과 중국의 역사적 사실에서 살펴 볼 때 홍콩에 대한 중국인의 마음이 현세의 사랑인 아리에, 중국 본토에 대한 홍콩인의 관심은 천하 통일한 진나라 시대의 인물인 장예화로 표상된다고 볼 수도 있다.  

송위는 흰옷 입은 여성이 부르는 환영에 사로잡히고 장예화는 두 병사에 의해 처형되는 송위의 환영으로 고통 받는다. 송위는 진용이 물위에 떠오르는 환영과 흰옷 입은 여성의 몸짓으로 전생의 인연에 대해 골몰한다. 진시황의 유물전에서 송위와 장예화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  

송위는 장예화를 쫓아가고 에스컬레이터에서 그들은 서로 마주한다. 그들은 전생인 2000년 전의 기억을 꿈과 환영으로 재건한다. 기억은 현생의 과거가 남긴 시간의 흔적에서 확장하여 전생의 기억까지 소환한다. 장예화는 기억의 파편을 퍼즐로 맞추면서 2000년 전의 서사를 엮어낸다. 하나의 장면은 두 명의 병사에게 목 졸려 죽는 송위의 이미지이며 남자는 죽어서 진용으로 빚어진다. 여자는 바닥을 청소하고 옷을 벗은 다음 백옥 목걸이를 하고 남자가 좋아했던 자신의 목을 베어 목숨을 거둔다. 그녀는 남자의 모습을 빚은 진용에 엎드려 자신의 몸에서 흐르는 피로 진용을 물들인다. 

송위는 현생의 연인 아리와 전생의 인연 장예화 사이에서 고뇌한다. 송위는 2000년의 인연으로 기울어 장예화와 함께 떠나기로 결단한다. 아리는 떠나는 송위를 붙잡으려 하지만 송위는 전생의 연인을 향한다. 아리는 떠나는 송위를 부르면서 “8년이나 2000년이나 사랑은 모두 같은 것”이며 시간의 양으로 비교할 수 없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친다. 장예화는 2000년 전의 언약대로 ‘아름다운 한 쌍의 혼백’으로 남기 위해 인연에 따라 왔다가 인연에 따라 다시 떠난다. ‘몽중인’은 환생을 통한 사랑을 다루었지만 인연에 따라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회자정리의 모습을 역설한다. 기존의 사랑 영화가 사랑의 힘으로 다시 만나는 거자필반(去者必反)에 방점을 찍었다면 ‘몽중인’은 인연에 따라 만나서 다시 이별하는 회자정리(會者定離)로 마무리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1547호 / 2020년 7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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