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1. 깨달음을 주제로 젊은 바라문을 교화하다 ②

진리 안다는 사람 만나면 잘 관찰해야

잘못된 스승을 만나게 되면
자기 인생 송두리째 파괴돼
수행자 맹목적인 추종 말고
삼독 물들었는지 확인 필요 

세상에는 자신이 진리를 알고 있다, 혹은 깨달았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깨달았을까? 우리는 이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교는 맹목을 싫어한다. 맹목이란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성을 잃어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을 못함’, 혹은 ‘주관이나 원칙이 없이 덮어놓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무비판적으로 어떤 것을 추종하는 자세를 말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면, 건전한 비판이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 맹목적 추종이나 비난만이 난무한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기에 맹목적 삶의 자세를 갖게 된다. 추종해서는 안될 사람을 추종하여, 인생을 허비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부처님은 젊은 바라문 까빠띠까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어떤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잘못된 스승을 만나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파괴되기 때문에,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붓다] 바라드와자여, 이 세상에 한 비구 수행자가 어떤 마을 또는 동네 근처에 머무는데, 장자 또는 장자의 아들이 접근해서 세 가지 현상, 즉 탐욕에 기초한 현상, 성냄에 기초한 현상, 어리석음에 기초한 현상에 대해서 조사했습니다.

이 존자는 탐욕의 상태에 있으면서 탐욕의 상태에 사로잡혀 알지 못하면서 ‘나는 안다’라고 말하고, 보지 못하면서 ‘나는 본다’라고 말하며, 또한 오랜 세월 불행과 고통을 가져올 길로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은 아닌가?(MN.II, pp.171~172)

부처님은 ‘어떻게 진리를 깨닫습니까?’라는 까빠티까의 질문에 위와 같이 대답하신다. 어떤 수행자가 있을 때, 그에게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 기반한 현상들이 있는지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있다면, 과연 그 사람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할지에 대해서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탐욕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가 성냄에 사로잡혀 대중들을 향해 분풀이를 하고 분노를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어리석음에 빠져 삿된 소견을 가지고 사람들을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를 비판해 보아야 한다. 행복하기 위해, 혹은 진리를 알기 위해 누군가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오히려 불행과 탐진치의 구렁텅이로 가는 길이라면 이처럼 애석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 사람의 신체적 행위와 언어적 행위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지.

[붓다] 그는 그를 조사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현상에서 벗어나 청정한 것을 알았으므로, 그에게 믿음이 확립되고, 믿음이 확립되면 존중하게 되고, 존중하면 섬기게 되고, 섬기면 청문하게 되고, 청문하면 가르침을 배우게 되고, 배우면 가르침에 대한 기억이 생겨나고, 기억이 생겨나면 가르침에 대한 의미를 고찰하게 되고, 의미를 고찰하면, 가르침에 대한 성찰을 수용하게 되고, 가르침에 대한 성찰을 수용하면 의욕이 생겨나고, 의욕이 생겨나면 노력하게 되고, 노력하면 깊이 관찰하게 되고, 깊이 관찰하면 정근하게 되고, 정근하면 몸으로 최상의 진리를 깨닫게 되며, 마침내 지혜로서 꿰뚫어 보게 됩니다. 바라드와자여, 이렇게 진리를 깨달아지고, 이렇게 진리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궁극적인 진리를 성취하지는 못합니다.(MN.II, p.173)

부처님은 진리를 깨닫는데 올바른 스승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스승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가르침에 대한 성찰과 끊임없는 노력이 지속되면 몸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궁극적인 진리를 성취하지 못한다. 부처님은 “(그렇게 깨닫게 된) 진리를 섬기고 닦아나가고 키워나가면 진리의 성취가 있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끊임없이 겸손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진리를 안다는 사람을 만나면 부처님의 이 가르침을 명심하여 그를 잘 관찰해야 속지 않게 될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50호 / 2020년 8월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