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약사여래와 파업의사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09.04 21:00
  • 수정 2020.09.09 09:51
  • 호수 1552
  • 댓글 6

불교에서는 부처님이 의사
환자 고통 외면한 인술 없어
탐욕에 허덕이는 것도 질병

팔공산 약사여래좌상.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 유명하다. 출처=경산시
팔공산 약사여래좌상. 사람들의 소원을 하나씩 들어준다는 갓바위 부처님으로 더 유명하다. 출처=경산시

더불어민주당과 대한의사협회가 9월4일 공공의료 확충 정책 입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의료계 파업 해결 단초가 마련됐다. 그러나 중환자들마저 방치한 14일간의 의료계 파업에 많은 국민이 실망하고 분노한 것은 분명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醫)’가 중시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불교에서도 의술은 대단히 중시됐다. 부처님의 여러 호칭 중 하나가 대의왕(大醫王)이라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잡아함경’에는 부처님이 4가지 법을 성취했기에 가장 위대한 최고의 의사인 대의왕으로 불린다고 설명한다. 첫째 어떤 병인지 잘 아는 것이며, 둘째 병의 근원을 잘 아는 것이며, 셋째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잘 아는 것이며, 넷째 병을 잘 치료하고 난 다음에 다시는 그 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 의사들 역할과 다르지 않다.

오랜 세월 대중에게 가장 친근감 있던 부처님은 약사여래(藥師如來)다. 대의왕불(大醫王佛)의 다른 이름인 약사여래는 전쟁, 천재지변, 전염병, 형벌, 굶주림, 산통 등 극심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약사여래를 부르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믿음이다. 삼국시대 말 시작된 이 같은 신앙은 전국 곳곳에 약사불이 모셔지고 ‘약사경’이 폭넓게 독송되는 신행문화를 가져왔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한 인생들에게 부처님은 모든 재난과 병고로부터 구제해주는 명의로 받아들여졌다. ‘약사경’에는 약사여래가 보살행을 닦을 때 세운 서원이 소개돼 있다.

“내가 후세에 깨달음을 얻을 때 갖가지 질병에 걸려서 구제할 방법도 없고 의사와 약도 없으며 친구와 가족도 없고 빈궁하며 괴로운 중생이 나의 명호를 귀에 스치듯이 듣더라도 병이 완전히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안락해지며 가족과 권속이 갖추어져 모두 풍족하게 되거나 무상보리를 증득하도록 하리라.”

약사여래의 12가지 중 6번째인 이 서원에서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람들이 느꼈을 두려움이 생생히 전해진다. 동시에 어떻게든 고통 받는 이들을 돕고자 했던 불교인들의 깊은 자비가 행간마다 묻어난다. 신라시대 많은 사찰에 질병 치료에 뛰어난 의승(醫僧)이 있었고, 이 스님들이 왕공귀족을 비롯해 가난한 이들의 구휼과 치료를 담당했다는 역사 기록도 약사여래의 서원과 맞닿아있다. 또 불교의 위세가 당당한 고려시대나 억불의 시대로 접어든 조선시대 초까지 매골승(埋骨僧)을 자처하는 스님들이 병으로 죽어간 시체와 유골의 매장을 직접 담당했던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부처님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대의왕이었던 반면 지바카 코마라밧차는 신체의 병을 고치는 의사였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명의로, 동남아에서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지바카는 부처님에 감화된 후 수많은 이들을 병의 고통에서 구제했다. 그가 지금까지 위대한 의사로 전승되는 것은 당시 뇌수술까지 성공한 뛰어난 의사라는 이유에만 있지 않다. 천부적인 의학적 재능에다 진리에 대한 열정, 고통 받는 생명들에 대한 한량없는 자비심이 그를 오늘날까지 의사의 사표로 기억토록 하고 있다.

오늘날 의대 입학은 극소수에게만 허용되는 수험생들의 로망이다. 영재고, 과학고, 자사고 등 학생들 중 상당수가 의대를 희망하는 것이 순수하게 인술(仁術)의 길을 걷겠다는 다짐으로 보기는 어렵다.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순간 보장되는 수억원의 연봉 및 특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편집국장
편집국장

간화선 주창자인 대혜 종고 스님은 유시랑이라는 관리에게 보낸 글에서 “부처님과 조사들은 확탕지옥과 노탄지옥 속으로 들어가 고뇌하는 중생이 앓는 생사의 큰 병을 치료하기에 대의왕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이는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 나는 종교나 국적이나 인종이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적 신분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다를 것이 없다. 환자를 외면한 의술은 결코 인술이 될 수 없다. 탐욕도 질병이다.

mitra@beopbo.com

[1552호 / 2020년 9월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