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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다

기자명 민순의

8월 중순 수도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코로나 재확산으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더욱 강력해진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한 지 여러 주째다. 사업장 일시 폐쇄로 소상공인 자영업자 분들이 겪고 계실 고통은 더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도 공공장소에서의 의무적 마스크 착용이 몹시 불편하실 줄 안다. 그래서일 것이다. 마스크 착용을 권유하는 시민과 이를 거부하는 시민 사이의 갈등이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정부 시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발 또는 세대별 문화 지체 등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막연하게 떠오르는 몇 가지 이유들을 배제한다고 해도, 마스크 착용 의무에 대한 개인 차원에서의 반감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납득도 안 될 바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개인의 신체에 대한 구속인지라, 공권력에 의한 강제조차 불합리하다 비판될 수 있는 마당에 동료 시민들까지 나의 행동을 규제하며 간섭한다면 분개할 수도 있겠다. 그럴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인식이 남달리 예민한 이들에게는 충분히. 시민들 상호간의 마스크 착용 권고를 간섭과 규제로 간주하며 이를 전체주의적 태도가 온 사회에 확산된 결과라고 하는 주장은 이 같은 맥락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경청하고 반추할 가치가 없지 않다.

실제로 연초 서구에서는 한국이 코로나 방역에 성공한 것을 두고 곱지 않은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동아시아 전통의 유교문화가 개인의 권리보다 국가 권위에 대한 순종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당국의 적극적인 방역 활동이 시민사회로부터 저항을 받지 않은 것이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러한 편견은 이내 같은 서구인들 사이에서도 비판받았지만, 방역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외국에서나 있을 줄 알았던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저항이 점점 거세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한국인이 방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까닭은 그들이 권위적이거나 순응적이거나 집단주의적이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민주적 시민성’과 ‘수평적 개인주의’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한 조사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시사IN’,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2020.6.2.) “(한국의 경우) 민주적 시민성이 높은 사람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데도 또 뚜렷하게 공동체 지향이 강하다”라는 것이다. 이 공동체 지향이란 내가 확진자가 될까 두려운 것(64%)보다 혹시 확진되었을지도 모르는 나로 인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까 두려움(86%)이 더 큰 마음이고, 그런 관점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험하게 만들어서 문제”라는 인식이다.

“눈치 챙겨.” 남극 출신의 우주대스타 펭수가 한 말이다. ‘눈치밥’이라는 관용어가 함의하듯 따돌림과 서러움의 정서가 진하게 밴 이 ‘눈치’라는 말은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념이다. 그런데 한 외국인 유튜버가 이것을 ‘공동체를 고려한 상황 인식’으로 번역한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그렇다. 눈치는 따돌림 받아 서러운 수동의 단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주변을 살피고 타인을 배려하는 능동의 단어인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나보다 앞서 주변을 살피고, 나의 이익을 도모하기보다 타인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이 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고. 세상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한 가합(假合)일 뿐 그 어떤 것도 실체라 할 만한 것은 없으니 나와 너를 구별하는 분별심은 전도된 망상에 불과하다고. 그 말씀을 이어 스님들께서도 말씀하셨다. 그렇게 가합되었을 뿐인 현상 하나하나에 실은 공성(空性)의 이치가 다 똑같이 들어있으니,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세상 모든 사물이 다 걸림 없이 아름다운 진여(眞如)의 세계가 아니겠느냐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한 명 한 명의 개인이 그만큼 남도 소중히 여기어 하나인 전체를 이루는 세상. 화엄의 공동체다. 기억하자. 나와 너는 다르지 않다. 바로, 우리가 나다.

민순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실장 nirvana1010@hanmail.net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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