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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에 새긴 고대인들 지혜‧염원, 스님의 시로 읽다

  • 불서
  • 입력 2020.09.14 13:19
  • 수정 2020.09.23 11:41
  • 호수 1553
  • 댓글 2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 일감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

“온/ 하늘이어라/ 깊은 하늘이어라/ 하늘이 온통 내려앉은/ 신들의 밤이어라/ 아…/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을까/ 한 백성의 눈물도/ 빠짐없이 담아 바친/ 무릎 꿇는 밤이어라/ 중생의 어둠을 다 걷어 내는/ 신(新) 새벽이어라”

알타이 산맥을 따라 남겨진 암각화들 중 키르기스스탄 싸이말루이 따쉬에서 볼 수 있는 ‘버섯 인간’은 그 모습이 보통 사람들과 신분이 다른 특별한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다. 학자들은 그를 샤먼으로 해석하고 샤먼의 머리 모양이 버섯처럼 생겨서 ‘버섯 인간’으로 부르지만, 일감 스님은 이 그림이 갖는 가장 중요한 뜻은 기도에 있다면서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름 붙이고, “한 백성의 눈물도/ 빠짐없이 담아 바친/ 무릎 꿇은 밤”이라고 영혼을 다해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을 묘사했다.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는 불교문화재연구소장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하고 조계종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으로 활동 중인 일감 스님이 알타이 산맥을 따라가며 옛 선인들이 남겨 놓은 암각화를 보고 수행자 시선으로 풀어낸 명상록이다.

스님은 2016년 인물화가이자 암각화 연구가인 김호석 화백을 따라나선 길에서 처음으로 알타이 암각화를 만났다. 러시아에서는 깔박따쉬‧엘란가쉬‧차강살라를, 몽골에서는 타왕복드 계곡 밑의 하르오스‧바가오이고르‧빌루트를, 카자흐스탄에서는 탐갈리‧쿨자바스이를,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싸이말루이 따쉬, 그리고 타지키스탄의 랑가르까지 알타이 산맥과 파미르 고원의 암각화들을 차례로 만났다. 해인사에 살던 시절 고령 장기리 암각화를 본 이후로 15년여 만에 처음 타국에서 갖게 된 암각화와의 만남은 그저 바위에 새겨진 그림이 아니라 ‘신과 인간이 만든 영혼의 예술품’임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스님이 암각화에 푹 빠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이후 어느 해 겨울 탐갈리 암각화를 다시 보러갔고, 지난해 9월에도 키르기스스탄의 싸이말루이 따쉬로 영혼의 암각화를 찾아갔다. 깊은 어둠을 머리에 이고 홀로 기도하는 샤먼,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기도, 태양신에게 북을 두드리며 하는 기도, 하늘마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 등 싸이말루이 따쉬 암각화에서 종교적 색채가 짙은 그림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알타이 암각화에서 고대인들의 염원과 삶의 지혜를 길어 올린 일감 스님이 감정을 절제해 빚어낸 시에 짧은 산문을 더해 책으로 엮었다. 암각화 탁본까지 남긴 스님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름붙인 암각화 속 숨겨진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알타이 암각화에서 고대인들의 염원과 삶의 지혜를 길어 올린 일감 스님이 감정을 절제해 빚어낸 시에 짧은 산문을 더해 책으로 엮었다. 암각화 탁본까지 남긴 스님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이름붙인 암각화 속 숨겨진 이야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제사의식의 모습이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음에 시선이 갔다. 오래 전 그때도 사람들은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자신들의 고통을 안아 줄 하늘이나 신의 모습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암각화에는 삶의 기쁨과 애환이 담겨 있고, 어느 하나도 아무런 뜻 없는 것은 없다. 모두 지극한 삶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숭고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염원의 기록”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문자가 없던 시대 옛 사람들이 바위와 동굴에 그려 전하는 그림에는 그들이 바라는 축복과 안녕, 행복에 대한 내용이 가득 담겨 있다. 스님은 그렇게 고대인들이 남긴 암각화를 수차례 찾으면서 그때 떠오르는 단상과 수행자의 사유로 길어 올린 시어(詩語)를 기록했고,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탁본도 남겼다. 고대인이 남긴 그림을 더듬어 보는 일은 말과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참구하는 수행과 다르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렇게 수행하듯 암각화에 담긴 뜻을 풀어낸 스님은 “향상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 모든 사람이 곧 하늘이다. 생명 있는 것들은 저마다 하늘의 성품이 있다. 근원적 신성함과 삶의 숭고함을 놓지 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과 가치를 추구하라. 우리는 모두 한 생명이다. 마음속의 태양을 잃지 마라. 기도하라. 지금 이 자리에서 극락정토를 만들라”고 암각화 속 고대인들이 보여준 삶의 지혜와 염원을 전하고 있다.

“암각화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일궈낸 화엄만다라다. 암각화를 보는 것은 맑고 오래된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깨어나게 한다”고 말하는 스님이 내면 깊은 곳에서 길어 올려 절제된 언어로 다듬어 낸 시들은 명상록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암각화와 시, 그리고 짧은 산문을 더한 ‘하늘이 감춘 그림, 알타이 암각화’에서 수만 년 전 시간과 오늘 이 자리가 하나이며, 우주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하고 돌에 새겨진 세상살이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2만2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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