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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비질란테-상

기자명 유응오

‘법은 정의롭나’에 대한 화두 제시

경찰대 모범생이 사적보복 활동
한국사회 불공정한 법체계 비판
불교에서는 ‘정당한 복수’ 없어

CRG가 쓰고, 김규삼이 그린 ‘비질란테’의 주인공은 경찰대 2학년 김지용이다. 그는 유도, 복싱, 레슬링 등 격투기에 능하고 성적도 우수해 학년수석을 놓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김지용은 경찰대 동기들로부터 기수의 자랑거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모범생 김지용은 매주 금요일이면 외박을 나가서 비질란테(Vigilante), 즉, 자경단 활동에 나선다. 김지용은 어머니가 잔혹하게 살해당했음에도 범인이 심신미약 상태였고, 깊이 반성한다는 등 이유로 감형돼 고작 3년 6개월을 선고받은 아픈 과거사를 지니고 있다.

김지용은 흉악범들이 양형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게 수감생활을 하고 출감 뒤에도 범죄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복수를 가하기 시작한다. 김지용의 활동이 계속되자 ABC방송국 르포25시 담당 PD인 최미려는 그에게 ‘비질란테’라는 별명을 지어주었으며, 범행을 모방한 짭질란테도 등장한다.

김지용이 사회악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범인들에게 복수할 때 보이는 격투장면은 대단히 사실적이어서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런가 하면, 김지용이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벌이는 사적복수는 독자들에게 ‘법은 정의로운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갖게 한다.

김지용이 범행을 마치고 난 뒤 도서관 책장에 꽂혀 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꺼내 뒷장에 살해한 사람의 수를 표시하는 데에서 드러나듯, ‘죄와 벌’은 이 작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는 김지용이 자신의 행동이 비록 사적 복수일지라도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고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비범함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는 ‘죄와 벌’에서 법학도인 라스콜리니코프가 펼치는 주장과 동일하다. ‘죄와 벌’에는 알렉산드르 2세 치하 제정 러시아의 형사사법 절차가 법전 그대로 투영돼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예심판사’제도는 1864년 러시아의 신형법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 제도는 1808년 제정된 프랑스의 형사소송법의 영향을 받았다. 나폴레옹 영웅주의의 악령에 사로잡혀 ‘살 가치가 없는’ 수전노인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와 예심판사인 표르피리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벌이는 심리 대결은 형법교과서인 동시에 심리학 교과서라 할 만하다.

김지용은 법(法)의 의미는 상상의 동물인 해태가 가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해태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외뿔 동물이다. 잘못이 의심되는 사람들을 해태 앞에 데려가면 죄가 있는 사람만 골라 외뿔로 들이받는 것이다.

또한 김지용은 두 눈을 가리고 한 손에 칼을, 다른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서 있는 서양 정의의 여신과 두 눈을 뜬 채 한 손에 저울만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한국 대법원의 정의 여신을 비교하면서 우리사회에서는 공정한 판결이 이뤄질 수 없다고 비판한다.

김지용이 생각하는 법은 ‘복수의 이성적 제도화’이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공적 법제도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때 사적 복수가 정당화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불교사상에 입각해 보면 애초 정당한 복수란 없다. 부처님은 독재의 산물인 엄벌주의를 설한 적이 없다. 과거 지은 업을 원인으로 현재의 결과를 받고, 현재 짓는 업을 원인으로 미래의 과보를 받는다고 설했듯, 선업이든 악업이든 그 과보는 삼세에 걸쳐 받는 것이므로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법화경’ 방편품에 “여러 부처님께서는 다만 보살이 되도록 가르칠 뿐”이라고 명시돼 있듯 불교의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악에서 선으로 이끌어 주는 데 목적이 있다. 불법에 귀의케 한다는 의미의 교화(敎化)가 범죄자들이 더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교육시키는 의미로도 쓰이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53호 / 2020년 9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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