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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불교건축에서 불교역사를 배우다

  • 불서
  • 입력 2020.09.21 14:05
  • 수정 2020.09.22 09:48
  • 호수 1554
  • 댓글 0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 홍병화 지음 / 민족사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불교 암흑기라 말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선시대 들어서야 비로소 불교가 진정한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권력 중심부의 지지와 비호 속에서 성장했던 과거와 달리,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살아남으면서 민중을 제대로 보는 진정한 종교의 자격을 갖게 됐다는 시각이다.

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에 참여하면서 금강산을 80회 이상 방문하고, 전국 사지와 전통사찰 전수조사 사업에 참여하는 등 불교건축과 인연을 맺어온 홍병화 박사도 조선시대 불교를 그렇게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선시대를 거치며 불교가 하향 평준화되고 표리부동한 종교가 되었다고 혹평하는 이들과 달리, “500년 동안 두 번의 큰 전쟁과 일상적인 비하와 배고픔에 직면했지만 때로는 스스로가, 때로는 백성들과 함께 호흡해 가면서 수백의 전통사찰이라는 족적을 남기며 살아낸 불교가 그 시대를 잘 살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족적 안에 다양한 내용을 담으며 단순히 건물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삶이 녹아 있는 건축을 남겼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이 책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는 그런 그의 눈을 통해 조선시대 불교를 새롭게 보게 한다. 그는 여기서 하나의 건축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역사적 사건과 그 사건을 헤쳐 나온 주체들의 역량이 결집되었는지 보여주며, 조선시대 불교건축을 통해 불교가 그 500년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설명하고 있다. 

책은 불교건축을 크게 성리학과의 대립적 관계에 놓여 있는 불교 입장에서 서술했다. 성리학을 신념으로 따르던 학자층이 주도하던 사회에서 냉대 받던 불교가 어떻게 온전히 백성들의 종교로 자리매김했는지를 건축을 통해 설명한 책은 그래서 특별하다.

불교건축은 조선 초기 고려의 여운이 남아 화려하고 장대한 귀족문화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시대적 상황에 적응하며 백성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건축도 바뀌기 시작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세련된 장식보다 몰려드는 백성을 한 명이라도 더 수용할 수 있도록 한 자라도 방을 넓히기 위해 울퉁불퉁한 기둥과 구불거리는 서까래를 사용했다. 그렇게 불교건축은 보여주기 위한 장엄의 건축이라기보다, 부처님 법을 배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을 더 담아야 하는 그릇인 ‘반야용선’이 되었던 것이다. 저자가 조선시대 불교건축을 하화중생의 건축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문정왕후와 보우선사의 의지로 중창된 청평사는 세조∼성종 연간 지어진 능침사와 같은 배치를 하고 있다. 이후 기신재도 회암사에서 청평사로 옮겨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정왕후와 보우선사의 의지로 중창된 청평사는 세조∼성종 연간 지어진 능침사와 같은 배치를 하고 있다. 이후 기신재도 회암사에서 청평사로 옮겨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책은 먼저 15세기 명분으로서의 억불과 전통으로서의 불교를 다루며 능침사의 부상에 초점을 맞췄다. 이어 16세기 성리학의 완고함과 불교건축의 잠재력을 다루며 수륙재의 유행을 조명했고, 17세기 후원세력의 교체와 사회의 보수화에 따른 건축 유행을 살폈다. 그리고 18세기 불교건축을 문중불교의 강화와 대중불교의 심화로 살펴본 저자는 19세기 사회적 혼란과 불교의 선택이 불교건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조명하고 있다. 또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각 시대별 가람 배치와 건축형식을 차례로 기술해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전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조선시대 불교건축이 불교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각된 세력이 일반 백성들이었고, 이 백성들을 수용하기 위해 새로운 형식을 띠게 된 것은 역사적 필연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듯 새로운 시각으로 불교건축사를 서술한 점이 기존 관점과 차이를 갖기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성리학 사회였던 조선은 운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성리학만을 강조했으나 지금은 단지 학문의 대상으로 남았을 뿐이다. 그러나 불교는 지배를 당한 입장이었음에도 생명을 이어올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잇는 종교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는 승리의 역사이기도 하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불교건축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정리하고 사진자료와 삽화를 함께 실은 불교건축사에 대한 첫 개설서라 할 만한 이 책에서 그 승리의 역사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1만48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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