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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제34칙 미호문오(米胡問悟)

“요즘 사람도 깨침에 의지하나”

미오의 경계 초탈한 사람 경우
수행과 깨침은 별개가 아니야
자신 심경 그대로 드러낸 앙산
한 승 사이 두고 미호와 선문답

미호(米胡)가 한 승으로 하여금 앙산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질문하도록 하였다. “요즘 사람[今時人]도 깨침에 의지합니까.” 앙산이 말했다. “깨침은 곧 없지 않지만 제이두에 떨어지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 승이 돌아와서 미호에게 사실을 말하자, 미호가 완전히 긍정하였다.

미호는 경조부(京兆府)의 미화상(米和尙) 또는 미칠사(米七師)라고도 하는데, 미호(米胡)라는 아름다운 수염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미호는 설봉의존과 위산영우에게서 각각 법을 이었다. 그리고 앙산혜적은 위산영우의 제자로서 위산과 더불어 위앙종의 개조에 해당한다.

선에서 제일 먼저 제기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는 수행하는 것과 깨치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수행과 깨침을 별개의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동일한 것으로 보느냐 하는 것과 더불어 수행과 깨침에 대한 당사자와 스승의 입장이 어떤가 하는 점도 관련되어 있다. 곧 이것은 달리 중생의 속성인 미혹과 부처의 속성인 깨침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일찍이 남악회양은 혜능에게 참문하고 ‘수행과 깨침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단지 수행과 깨침에 염오되지 않을 뿐입니다’ 라는 답변을 통하여 깊이 인가를 받았다.

바로 여기 문답에는 깨침과 수행의 본질이 그와 같은 언설적인 표현으로만 드러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여기 문답에는 수행의 문제가 아니라 깨침의 문제에 대한 것만 드러나 있지만 이 문답 가운데는 수행의 문제도 더불어 감추어져 있다는 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세밀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요즈음 사람들[今時人]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는 점이다.

요즈음 사람들이란 선의 수증관에서 보자면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번뇌 속에서 부침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일상의 범부를 가리키기 때문에 깨침의 경지를 표현하고 있는 평상심의 차원에서 본래면목의 경지로 살아가는 본래인(本來人)과 상대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요즈음 사람들이 제이두에 떨어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수행과 깨침의 본질적인 것을 벗어나 있어서 그 핵심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주변에 머무를 뿐으로 항상 무엇인가 부족한 살림살이를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 미호가 그 말을 듣고 완전히 긍정했다는 점에 참으로 묘미가 있다. 곧 본래인을 포함하고 있는 요즈음 사람으로 둔갑해 있기 때문이다. 본래인과 요즈음 사람을 구분할 것조차 없이 본래인은 본래인대로 그리고 요즈음 사람들은 요즈음 사람대로 수행과 깨침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제대로 유지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제이두에 떨어져 살아가는 사람이건 그리고 본래면목의 경지에서 살아가는 사람이건 간에 수행이 깨침과 다르지 않고 깨침이 수행과 다르지 않는 이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미오(迷悟)의 경계를 초탈한 사람의 경우에는 수행과 깨침이 별개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호는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담아놓고 앙산에게 한 승을 보내서 질문하도록 시킨 것이다. 승이 전한 말에 의하면 앙산은 미호가 미리 쳐놓은 문답의 그물에 걸리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심경 그대로 독탈형연(獨脫逈然)의 선기를 드러내주고 있다. 그런 까닭에 미호는 승이 전언한 말과 그 말을 넘어선 내용까지도 깊이 긍정한 것이다.

그러나 좀더 면밀하게 생각해보면 정작 미호가 앙산을 긍정한 것은 앙산을 찬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에는 앙산의 그와 같은 행위를 통해서 미호 자신을 점검해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점검이란 다름이 아니라 수행과 깨침의 일여. 미혹과 깨침의 동일성, 금시인과 본래인의 무차별, 제자와 스승의 평등으로서 미호 자신과 앙산이 한 승을 사이에 두고 상호간에 벌인 선문답에 이루어진 감변(勘辨)이었고 점두(點頭)였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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