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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멘델스존의 피아노 음악

기자명 김준희

신인음악가 교육·발굴 원력 세운 ‘19세기 법장비구’

낭만주의시대 대표 천재음악가…동시대인의 존경 받아
그가 건립한 라이프치히음악원서 ‘음악 무상교육’ 시도 
차별없는 교육에 대한 신념 ‘범부를 위한 원력’과 닮아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본관. 독일 최초의 국립 음악 교육기관이다.

펠릭스 멘델스존은 낭만주의 시대 대표적인 천재 음악가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철학, 문학, 역사, 과학,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창작활동 이외에도 지휘, 연주는 물론이고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복한 환경과 수준 높은 교육을 누려왔기 때문에 사교성이나 소통의 능력도 뛰어났다. 음악회를 기획하고 직접 지휘를 하며 청중들에게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였던 멘델스존은 약관의 나이에 이미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초연하여 80년 넘게 사장되어있던 바로크시대의 위대한 작품들을 다시 무대에 올리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다른 작곡가들과는 달리 멘델스존은 생전에 명성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선배 작곡가들에 대한 존경, 동시대 음악인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청중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멘델스존 지인의 회고록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멘델스존의 훌륭함 중 하나는 바로 다른 음악가들을 크게 배려하는 것이었다. 멘델스존의 집은 그를 아는 모든 이와 추천서를 가져오는 이들에게 열려있었다. (중략) 또한 그는 좋은 작품을 쓴 작곡가라면 어느 나라 출신임을 묻지 않고 그의 무대에 그 작품을 편성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도왔다. 더 많은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이 멘델스존의 지휘아래 연주되는 꿈을 꾸며 작품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멘델스존의 관대함과 열린 마음 덕이라 생각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신예작곡가들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그들의 활동에 힘썼던 것은 오늘날의 ‘신인음악회’와 같은 취지였을 것이다.

멘델스존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으며 ‘역사적 연주회’라는 이름의 연주회도 열었다. 바흐의 작품을 비롯해 당시 악보로만 남아있던 방대한 독일문화권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려 오케스트라의 실력을 격상시키고 19세기 청중들을 높은 수준으로 이끌었다. 연주회용 레퍼토리로 적합했던 바흐,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 유산을 발굴해 청중들에게 소개하면서 훌륭했던 지난 시대 독일권 음악의 역사와 전통의 높은 가치를 알렸다.

멘델스존의 이런 업적은 어린 시절 대위법을 배운 영향이 컸다. 고전시대에 그 설 자리를 잃었던, 바로크시대 작곡법의 핵심인 대위법과 푸가를 공부하면서 18세기 음악의 훌륭한 전통을 깨달았고 바흐에 대한 존경심을 키우게 되었다. 그의 바로크시대에 대한 경의는 피아노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대표적인 피아노곡인 ‘엄격 변주곡(Variations seriéuses), Op.54’는 멘델스존의 후기 작품 중 가장 비중 있는 작품으로 프로페셔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정갈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 이 곡은 D단조의 16마디의 진지한 대위법적 주제와, 17개의 변주, 그리고 화려한 코다로 이루어져있다.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주제에 이어 등장하는 각각의 변주들은 고전시대의 작곡가들이 즐겨 쓴 주제의 선율이나 리듬을 장식적으로 변화시키는 ‘장식적 변주’ 기법과 이와 대조적으로 주제의 부분적인 특징만을 유지하며 주제를 발전시켜 나가는 ‘성격적 변주’가 골고루 사용되었다. 아르페지오, 스타카토, 코드의 도약 등 화려한 테크닉이 사용된 빠른 템포의 변주와 푸가, 코랄 등의 깊이 있는 변주는 음악적인, 양식적 특징을 총망라하여 보여주고 있다.

다방면에 두루 재능이 있었던 멘델스존의 수채화. 루체른 호숫가의 풍경을 그렸다.

멘델스존은 수많은 연주회에서 지휘를 해오면서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춘 음악학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은 실용적이고 유물론적인 경향이 지배적이다. 만약 우리에게 예술의 모든 방면을 아우르며, 높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일관된 관점을 갖고 가르치는 훌륭한 음악학교가 있다면 좋을텐데 (중략) 사립학교는 이런 목적을 충족시킬 수 없다. 공공교육기관이 학생들과 선생들 모두에게 필요하다. (후략)” 

그가 1840년 지인 팔켄슈타인에게 보낸 편지에는 음악학교의 필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있다.  멘델스존은 1840년 즈음 프러시아 국왕 빌헬름 4세에게 수도 베를린에 음악학교를 세우는 기안을 제출하게 된다. 그 문서는 피아노와 작곡, 대위법, 합창 등의 실기 과정과 음악사와 미학 등의 이론과목을 수료하는 3년 과정의 교육 계획과 입학시험을 통과한 학생들에게 국가에서 무상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정적인 어려움으로 음악학교 건립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는 1835년부터 게반트하우스의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던 라이프치히에 음악학교를 세우려는 계획을 정비했다. 부유한 시민계층이 대다수였던 라이프치히는 문화적 수준이 높았고, 전통을 중요시하는 도시였기 때문에 멘델스존의 음악적인 성향과 잘 맞았다. 독일음악과 독일음악인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힘써왔던 멘델스존에게 라이프치히는 최적의 장소였다. 1843년 4월3일, 멘델스존은 작센왕의 재정적인 지원과 라이프치히 시의 지원, 그리고 도시의 음악인들의 지원에 힘입어 드디어 독일 음악 전통을 중심으로 하는 라이프치히 음악원(현재 라이프치히 국립연극음악대학)을 건립했다. 독일 최초의 국립 음악교육 시설이었다. 

교육자로서 멘델스존의 모습은 ‘무량수경’의 48서원을 떠올리게 한다. 법장비구의 선정과 수행 원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48서원 중 특히 18번째 원은 특별히 ‘범부를 위해 세운 원’으로 멘델스존의 교육자적인 열망이 오버랩 된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어떤 중생이든지 지극한 마음으로 저의 불국토를 믿고 좋아해 제 국토에 태어나고자 한 사람이 제 이름을 열 번 불렀는데도 그들이 모두 제 국토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다[不取正覺].”

전공 실기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입학시험을 통과하면 누구든지 무상으로 뛰어난 교육의 혜택을 주겠다는 설립 이념 덕분에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에서 많은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라이프치히 음악원은 재정적으로 완전한 무상교육을 실시하지는 못했지만, 남학생들에게만 입학을 허가 했던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여학생에게도 입학의 기회를 주었다. 주로 성악과 피아노를 공부하는 여학생들에게도 차별 없는 교육기회의 제공은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범부에 집중 되어있는 법장비구의 18번째 서원, 구제할 수 있는 모두에게 손길을 내밀고자 하는 법장비구의 원과도 유사하게 느껴진다. 음악인으로서 재능을 갈고 닦는 일념을 오로지 의심을 품지 않고 부처님을 부르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망념 속에 나온 염불은 /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과 같아서 / 틀림없이 왕생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요카와법어(横川法語)’의 내용도 떠오른다. 멘델스존이 반음계적 언어를 대위법적인 어법으로 몇 년간의 고심 끝에 탄생시킨 ‘피아노 협주곡 제 2번 D단조 Op.40'을 들으면서 ‘19세기의 모차르트’라고 불렸던, 전통과 개혁사이의 균형 잡힌 음악 미학을 추구한  멘델스존의 교육자적인 신념을 생각해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54호 / 2020년 9월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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