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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젊은 바라문 싱갈라까를 교화하다

맹목적으로 절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여섯 방향 절하는 바라문에
각 방향 구체적인 내용 설명
여섯 방향에 인간관계 설정
이들 섬기는 자세가 바른 절

인간은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간다. 이는 비단 인간만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행위를 통해 삶을 영위한다. 그런데 인간만이 자신이 하는 행위를 인지하고, 그것을 평가하며, 행위에 이유를 찾고자 한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것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우리들이 하는 행위들 가운데 많은 경우는 왜 하는지 모르고 맹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행위를 함에 있어 왜 하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 행위가 해로운 것인지 이로운 것인지를 알아야만 행위를 지속할 것인지 수정할 것인지, 멈출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만약 알지 못한다면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도 “나는 몰랐다”고 회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불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충분히 알 것을 요구한다.

‘디가니까야’에 ‘싱갈라까에 대한 훈계의 경(Siṅgalakovādasutta)’이 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매일 아침 목욕재계하고 동서남북위아래의 여섯 방향에 절하는 젊은 바라문 싱갈라까를 보고 “왜 절을 합니까?”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싱갈라까는 “아버지의 유훈이셨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부처님이 이유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절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하자, 싱갈라까가 가르침을 청하면서 이 경은 시작된다.

부처님은 여섯 방향을 수호하는 방식을 설명하셨다. 여섯 방향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① 네 가지 행위의 오염의 제거 ② 네 가지 동기로 악업을 짓지 않음 ③ 여섯 가지 재물의 파멸문을 따르지 않음이다. 이러한 14가지 악한 길을 따르지 않는 것이 여섯 방향을 수호하는 것이며,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만족하는 길이며, 죽은 뒤 천상에 태어나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네 가지 행위의 오염은 “생명을 죽이는 것, 주지 않는 것을 빼앗는 것, 거짓말, 남의 아내를 범하는 것”을 말한다. 네 가지 동기로 악업을 짓지 않는 것은 “욕망, 분노, 어리석음, 두려움에 의해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여섯 가지 재물의 파멸문은 “술 등을 마셔 취하는 것, 때가 아닌 때에 거리를 배회하는 것, 흥행거리를 찾아다니는 것, 방일의 근본이 되는 놀음에 미치는 것, 악한 친구를 사귀는 것, 나태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나서, 부처님은 여섯 방향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신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방향을 알아야 합니다. 동쪽 방향은 부모라고 알아야 하고, 남쪽 방향은 스승이라고 알아야 하고, 서쪽 방향은 처자식이라고 알아야 하고, 북쪽 방향은 친구와 동료라고 알아야 하고, 아랫방향은 하인과 고용인이라고 알아야 하고, 윗 방향은 수행자와 성직자라고 알아야 합니다.”(DN.III, pp.188~189)

그리고 이어서 각 방향을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동쪽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방식과 부모가 자식을 보살펴야 수호되며, 남쪽은 제자가 스승을 모시는 방식과 스승이 제자를 돌보는 방식이 모두 갖추어져야 수호되며, 서쪽은 남편이 아내를 섬기고, 아내가 남편을 섬겨야 수호되며, 북쪽은 내가 친구와 동료를 섬기고, 친구와 동료가 나를 섬겨야 수호되며, 아랫방향은 주인은 하인이나 일꾼을 섬겨야 하고, 하인이나 일꾼이 주인을 섬겨야 수호되며, 윗방향은 재가자는 수행자와 성직자를 섬겨야 하고, 수행자와 성직자는 재가자를 돌보아야 수호된다는 내용이다. 즉 각 방위마다 상호관계가 설정되어 있는데, 각각은 섬기는 내용이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섯 방향이 가리키는 내용보다는 여섯 방향이 지시하는 의미이다. 부처님 말씀을 정리하면 여섯 방향은 나를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절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공경하는 의미이다. 결국 싱갈라까는 이유도 모른 채, 여섯 방향을 향해 매일 같이 절을 한 것이다. 그것이 자신과 세상을 위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이에 부처님은 각 방향을 인간관계로 설정하고, 그 모든 존재들을 위해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의미 없는 맹목적 행위를 올바른 인간관계 정립으로 이끌어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55호 / 2020년 9월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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