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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인연법을 따르는 수행

기자명 정원 스님

세친 넘어서는 지혜도 없이 어찌 대승 폄하하나

자기 수행법·믿음만 바르다며
대승불교 비방하고 스님 배제
대소승 떠나 보리심 실천 관건
불자는 행복한 공동체 힘써야

한동안 열심히 글을 올리던 소셜 네트워크에서 친구삭제를 한 적이 있다. 출가자임을 알고도 친구신청을 해오는 이들은 다 수락했었다. 삭제는 한두 사람만 해보았는데 게으름이 큰 원인이었고, 그래도 혹시나 필자와의 교류로 불교나 출가자에 대해 약간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그것이 순진한 착각이었구나 싶어서 친구삭제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여러 인연이 겹쳐 소셜 네트워크와 소원해졌다.

삭제를 했던 대상은 비록 불자라 하더라도 자신의 수행법 혹은 믿음만이 가장 바른 길이라는 확신으로 대승불교를 비방하는 이들이었다. 높은 수행의 경지에 이르렀다면야 어떤 인연도 다 감화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렇지도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불교라는 하나의 테두리 내에서도 과거 생에 쌓아온 업에 따라 혹은 현생에 만난 인연에 따라 혹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선택하는 길은 다양하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함 가운데 삼보 중에서 승보를 제외한 ‘이보(二寶)에의 귀의’를 주장하는 이들과의 간극은 메우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 같다.

두 번째 간극은 초기불교의 관점을 가지고 대승불교를 비방하는 경우다. 대승사상이 생기게 된 유래와 보리심과 보살정신에 대한 이해는 고사하고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로 인해 불법이 얼마나 더 풍성해졌는지, 문화적으로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는지 외면하는 편협함이 느껴진다. 대승불설이니 비불설이니 하는 논쟁은 이미 학계에서도 시대에 뒤떨진 낡은 사고로 정리되었다. 부처님 법 안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수행법에 충실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비심을 실천하는 모습은 수희찬탄의 공덕을 불러일으키지만, 자기의 관견으로 다른 종파 혹은 다른 수행법을 폄훼하고 비판하는 것은 불자로서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지자대사는 중국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 대소승 경전을 부처님 설법 시간을 기준으로 화엄시(21일), 아함시(8년), 방등시(12년), 반야시(21년), 법화열반시(8년) 등으로 분석했다. 교리적으로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여러 경전들을 5시8교의 사상체계로 분류함으로써 경전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 대승불교 수행자로서 천태지자 스님께 무척 감사한다. 부처님의 수많은 설법들 중 특정 경전만이 부처님의 친설이라는 사상보다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인 부처님께서 49년의 긴 세월을 아함시의 사상만 설하셨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기초한 대승의 체계가 훨씬 더 나의 마음을 두드리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고귀한 보살들의 세계를 실감나게 설명하는 ‘화엄경’, 성문·연각·권교보살의 삼승을 설하신 이유가 중생의 근기에 따른 방편설이고 최종 목적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며 수기를 내리는 ‘법화경’, 아미타 부처님의 극락세계를 보여주는 ‘정토삼부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보현행원품’ ‘지장경’ 등을 통해 여러 부처님과 보살들이 펼치는 갖가지 중생교화의 과정들을 이해하고 그분들의 명호를 부르는 수행법으로 상구불도 하화중생의 보리심을 꾸준히 실천하면 어느 생인가는 반드시 누구라도 부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원대하며 고귀한 인간 해방선언인가!

인도문화의 황금기 굽타왕조 시대에 실존했던 인물로서 소승불교를 대표하는 논서인 ‘아비달마구사론’을 지었던 세친보살은 형 무착보살의 영향으로 대승불교로 전환한 후 많은 논서를 지어 대승의 유식을 선양했다. 대승을 비방하는 이들을 볼 때면 세친을 넘어서는 지혜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리 용감할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 불법에 대한 이해와 수행방식도 스스로 쌓아온 인연법에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자신의 선택이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인연 지워진 다르마와 수행방식을 올곧게 잡고 나아감으로써 이생을 향상시키고, 향상의 과정과 결과를 선하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눔으로써 공동체의 삶이 행복해지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대소승을 떠나 보리심을 실천하는 참 불자의 아름다운 삶이다.

정원 스님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 shamar@hanmail.net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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