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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불연 이기영 박사의 발원

기자명 고명석

보살의 길 가며 사무량심‧십바라밀 실천 서원

우리 문화‧사상‧불교 소중함 깨닫고 원효사상 심었던 스승
한국불교연구원·구도회 창립으로 불교사상 전파에 헌신해
평생 육신을 법의 몸으로 살면서 진리의 현대적 기능 강조

불연 이기영 박사는 앎과 실천의 길이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그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 행동하는 재가 보살의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던 선지식이다.
불연 이기영 박사는 앎과 실천의 길이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그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 행동하는 재가 보살의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며 살았던 선지식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불교학자로서, 앎과 실천의 길이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하고 소통의 길을 열기 위해 행동하는 재가 보살의 시선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크게 긍정하는 스승이 있었다. 바로 불연 이기영(不然 李箕永, 1922~1996)박사다. 그는 우리 문화, 우리 사상, 우리 불교의 소중함을 깨닫고 원효에 눈을 떠 원효사상을 이 땅에 심었던 인물이다. 그는 원효를 통해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보살의 길이 얼마나 고귀하고 값진 길인지 일깨워 주었다.

“그 모든 교훈은 하늘에서 떨어진 타산(他山)의 돌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소리, 네 마음의 소리, 우리 모두의 마음의 소리이다. 나와 너는 둘이지만, 그 마음의 소리는 하나다. 목청과 억양이 다르다고는 하더라도 거기에는 참됨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자비로움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착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원효사상-세계관)

불연은 1922년 황해도 봉산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하다가 태평양전쟁에 징집되어 죽을 고비를 넘긴 후 북한이 공산 치하가 되면서 토지를 몰수당하고 가난으로 고생하다 남하한다. 1954년 33세의 나이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벨기에에 정착하여 루뱅대학에서 E. 라모트(Lamotte) 교수를 만난다. 그의 지도로 불연은 한국의 위대한 스승 원효에 대해서 눈을 뜨며 불교를 본격적으로 천착, 6년이란 수학기간을 거쳐 박사학위(불교에 있어서 참회의 기원 연구)를 받는다.

그는 1960년 4월에 귀국해 동국대, 서울대, 서강대 등에서 종교학, 불교학, 미술사학 등을 강의하였는데 그의 ‘불교개론’ 강의는 서울대 문리대의 3대 명강의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1964년 백성욱, 김법린 두 동국대 총장의 배려로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로 채용된다. 그들이 불교의 현대 학문적 접근과 동서 비교사상의 가치에 눈을 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67년 불연은 ‘원효사상-세계관’을 편찬하여 당시의 한국 지성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1970년에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선정한 해방 후 25년의 ‘한국의 10대 명저’로 꼽힐 정도였다.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와 ‘별기(別記)’를 바탕으로 ‘대승기신론’을 그의 창조적 시각으로 조명한 이 책은 일심, 대승, 보살도를 중심으로 불교 전반을 설명하면서 고향 같은 마음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는 원효를 통해 세계와 인생에 관한 전고미답(前古未踏)의 보편적 진리를 발견하고 참신성, 예리성, 현실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연은 천주교 출신이라는 곱지 않은 주변의 시선으로 동국대에서 물러나는 시련을 겪는다. 그가 워낙 특출한 인물이고 기존 불교계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한 지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불교에 대한 사색은 젊은 불자들을 감동시킨다. 특히 초기 대학생불교학생회의 역량 있는 젊은이들에게.

1974년 4월 불연은 한국불교연구원을 설립하고 이어 재가신행단체인 구도회를 창립한다. 연구원에서는 참신한 학자들을 중심으로 연구 활동을 전개해 ‘한국의 사찰’ 시리즈 전18권을 간행한다. 이 시리즈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으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는다. 불연은 불교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기 위해서 원효의 가르침에 입각하여 ‘불교교리 기초강좌’를 연다. 이 기초교리 강좌에 불교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의 강의는 참신했고 환희로웠고 신심이 절로나게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불교연구원은 불교지성의 요람으로 작용한다. 자연스럽게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재가신행단체인 구도회가 문을 연다. 서울, 대구, 부산, 광주, 대전 등. 구도회는 구도인의 삼대서원을 강조했다.

“하나, 우리는 구도자, 보살의 길을 간다. 하나, 우리는 귀일심원 요익중생의 이상을 산다. 하나, 우리는 사무량심 십바라밀을 실천한다.”

삼대서원은 원효의 사상을 바탕으로 불연이 만든 것이다. 구도자란 보살을 말한다. 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큰 서원을 세운 사람이요 변화의 물결을 불러오는 사람이다, 나보다도 남을 먼저 구하지 않고는 못견뎌하는 사람이요 인간다운 인간, 참인간이다. 불연은 그렇게 말한다. 그는 원효의 가르침에 삼보 중에 하나인 승보를 출가보살, 재가보살의 보살중(菩薩衆)으로 받아들인다. 상가(승가)의 힘은 옷이나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에 있고, 또 생각에 있다고 하면서.

귀일심원이란 일심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일심이란 원효가 말하는 바, 유(有)과 무(無)를 떠나 홀로 청정하며, 깨뜨리지 않음이 없고 세우지 않음이 없는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부정이되 그 한계 안에서 한계를 뛰어넘는 큰 긍정의 자리다. 그러기에 그것은 생명의 자리요 창조의 자리다. 구도자란, 보살이란 이러한 일심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중생(온 생명)들에게 이익을 베푸는 뱃사공 같은 사람이다. 그것이 요익중생이다. 불연은 일심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과 중생에게 이익을 베푸는 일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그 둘은 앞뒤가 아니요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어우러지면 함께 여물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불연은 발원한다.

“자비로우신 부처님, 저희들이 당신의 가르침, 당신의 진리대로 살 수 있는 힘을 갖게 하소서. 저희가 남을 원망하고 자기의 책임을 망각하지 말게 하소서. 진실로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자기의 아픔으로 삼고 웃으며 일하게 하소서. 잘못된 말과 행동을 고집하는 풍토가 이 땅의 우리들 사이에 사라질 때 이 땅의 만백성들이 제각기 당신의 법신 안에서 삶의 보람을 찾게 됨을 아나이다. (중략) 저희들의 눈으로 당신의 진면목을 보며, 저희들의 입으로 당신의 진리를 전하며, 저희들의 육신이 당신의 자비로운 법신이 되게 하소서…”(‘구도법요집’)

보살의 길,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 육신이 법신, 법의 몸으로 사는 길이다. 법신의 몸은 열반의 몸이다. 우리 인간은 그 열반의 가능성으로 사는 것이다. 법은 진리, 진여다. 진여는 버릴 것도 없고 보탤 것도 없는 상태다. 그것은 또한 마음의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러한 진여의 마음을 회복해가는 사람은 어느 것도 버릴 것도 배척할 것도 없기에 그와 나, 나와 너는 하나이기에 자비행을 하되 지치거나 피곤함이 없다. 누구나 한 마음 자리에서만 그렇게 행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한 마음의 소리를 들음으로써 진리의 현대적 기능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알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불연은 말한다.

고명석 불교사회연구소 연구원 kmss60@naver.com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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