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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슈만의 피아노 음악

기자명 김준희

슈만에게 클라라는 예술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피아노 신동이었지만 경제력 없이 패기·자신감만 넘치던 청년
스승의 딸이자 자신의 꿈 이해해 준 뮤즈와 험난한 사랑 강행
고난 끝에 결실 맺은 후 열정 예술로 승화시키며  황금기 열어

빌헬름 헨젤이 그린 1847년의 클라라(사진 왼쪽) 와1839년의 슈만.
빌헬름 헨젤이 그린 1847년의 클라라(사진 왼쪽) 와1839년의 슈만.

1840년에 작곡된 가곡집 ‘미르텐(미르테의 꽃)’은 로베르트 슈만이 사랑하는 클라라에게 결혼전야의 선물로 바친 곡이다. 미르텐은 독일에서 신부의 화관을 장식하는 꽃이다. 그 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첫 곡인 ‘헌정(Widmung)’은 시인 뤼케르트의 시에 의한 곡으로 일종의 ‘청혼가’를 연상케 한다. 그 가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대는 나의 영혼, 그대는 나의 심장 / 그대는 나의 기쁨, 오 그대는 나의 고통, / 그대는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는 나의 세상  (중략)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가치 있게 만든다오. / 그대의 눈빛이 나를 광명에 찬 모습으로 나를 변화하게 하고, / 그대는 넘어서서 나를 사랑스럽게 드높여 주었소. / 나의 선한 영혼, 더 나은 나!’

법학도였던 슈만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엄격하기로 소문난 피아노 교사 프리드리히 비크의 제자로 그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클라라는 슈만의 스승이었던 비크의 딸이다. 영특하고 재주 넘치는 피아니스트 클라라는 슈만의 꿈과 열정을 이해해 주는 단 한사람이었다. 1837년 클라라는 독주회에서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Symphonic Etudes), Op.13’을 연주했고, 슈만은 비로소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변주곡 형식 안에서 연주자의 테크닉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독특하고도 자유로운 기법으로 완성된 수준 높은 작품의 성공적인 연주 이후, 스승의 딸을 향한 변변치 못했던 하숙생 청년 작곡가의 사랑은 조금씩 더 깊어갔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아버지와 비교될 정도로 딸의 교육에 열성이었던 비크는 피아노 신동이며 작곡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애지중지하는 딸이 경제력도 없고 패기와 자신감만 넘쳤던 제자 슈만과 교제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슈만은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자의 길을 접고 출판과 레슨으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평론지 발간 등으로 기고 활동도 하는 불안정한 풋내기 음악가였다. 여러 사회활동으로 항상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고, 사교계의 인기와 함께 간간히 염문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였다. 

슈만의 피아노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곡들은 1836년부터 1838년 사이에 작곡되었다. 이 시기는 클라라와의 사랑이 시련을 겪을 때였다. 비크는 슈만과 딸이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법정 소송까지 벌이게 된다. 아직 어렸던 클라라는 아버지와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며 슈만과의 교제를 더 이상 이어가지 않을 결심까지 하게 된다. 이때 슈만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에서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다. ‘소나타 제3번 F단조, Op.14’의 첫머리는 왼손의 5도 하강하는 옥타브로 시작한다. 이것은 슈만이 클라라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첫 번째 대곡인 ‘소나타 F#단조, Op.11’에서도 여러 차례 드러난다. 30분에 달하는 곡의 각 악장에서 슈만은 클라라에 대한 필사적인 열정을 담았다. 이 하행하는 선율들과 슈만의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클라라의 향기는 그녀의 작품인 ‘녹턴 F장조, Op.6-2’에서 인용한 것이다.

1840년 9월, 드디어 슈만과 클라라는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 그해는 특별히 ‘가곡의 해’로 불릴 만큼 130곡 넘는 가곡이 작곡되었는데, 모두 그가 평소에 존경하던 슈베르트의 작품 못지않게 훌륭한 곡들이었다. 또한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곡 등으로 그 작품세계를 넓혀갔다. 또한 1843년부터는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게 되고 지휘자로서의 활동도 시작하게 된다.

슈만이 사랑하는 여인 클라라에게 바친 사랑의 곡 ‘헌정’에 붙은 뤼케르트의 시는 간답바의 아들 빤짜시카가 사랑하는 여신 쑤리야왓짜에게 바친 연정시를 떠올리게 한다. 슈만이 클라라를 위하여 화관 대신 가곡을 선물한 것처럼, 빤짜시카는 벨루와빤두(비파)를 연주하면서 연정시를 읊는다. (디가니까야 21경)

“존귀한 여인이여, 쑤리야왓차여. / 그대의 아버지 띰바루에게 경배합니다. / 나에게 환희를 주는 아름다운 그대가 그분에게서 태어났습니다. / 땀 흘리는 자에게 바람이 소중하고 목마른 자에게 물이 소중하고 / 아라한들에게 법이 소중하듯 빛나는 광채를 지닌 그대는 나에게 사랑으로 다가옵니다.  (중략)  나의 마음을 그대에게 묶여버려 이미 잃어버린 마음은 되찾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미끼달린 낚싯줄을 삼킨 물고기처럼. (중략) 성자께서 최상의 바른 깨달음을 증득하고 기뻐하듯 / 선한 여인이여, 나 또한 그대와 하나 되어 기뻐할 것입니다.  (후략)” 

슈만은 클라라와의 만남 이후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다. 그가 초기에 작곡한 피아노곡들은 클라라에 의해 자주 연주되었다. 청중들은 천재 소녀 클라라가 연주하는 작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클라라와 결혼을 한 1840년, 슈만은 그가 평생 작곡한 가곡의 반 이상을 써내려 갈 수 있었다. 다음 해에는 상대적으로 작곡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교향곡, 실내악곡, 협주곡 등 규모가 큰 작품들을 여러 곡 작곡할 수 있었다. 클라라는 슈만의 진정한 ‘뮤즈(muse, 음악의 여신)’ 였던 것이다. 

빤짜시카는 쑤리야왓짜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며 붓다를 칭송했다. 슈만은 ‘헌정’을 작곡할 당시, 오로지 격렬한 사랑의 감정으로 클라라를 ‘하늘’ ‘영혼’ ‘기쁨’ 이라 노래했다. 클라라가 훗날 더 깊은 의미의 ‘존재의 이유’나 ‘끝없는 원천’이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슈만에게 있어서 클라라와의 사랑은 한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예술관을 확립시키는 일과 동일한 것이었다. 이루지 못한 피아니스트의 꿈을 채워주는 클라라는 작곡가로서의 실존을 확인하는 것과도 같았다. 슈만의 일생을 돌아보면 그가 갈구한 사랑과 휴식은 결국 한 인간이 얻은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가곡집 ‘미르텐’과 그의 피아노 작품들은 클라라의 존재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근래에는 리스트가 편곡한 슈만의 ‘헌정’의 피아노 작품이 더 많이 연주된다. 가사 없는 피아노 선율로 들으면 음악가로서 슈만의 인생을 구원하고 완성시켰던 클라라에 대한 슈만의 심장의 박동과 그 열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56호 / 2020년 10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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