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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과 관광비행

기자명 심원 스님

최근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이 눈길을 끈다. 먼저 조두순 이야기다. 조두순은 2008년 초등학생 여아를 납치·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온 국민이 치를 떨며 공분한 사건이다. 그런데 형기를 마치고 연말에 출소할 예정인 조두순이 기존 거주지역인 안산시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피해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안산시는 조두순 출소에 앞서 시내 곳곳에 방범용 CCTV를 대대적으로 확충하여 주민 불안을 해소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조두순의 출소를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이어지고 피해 예방과 종합적인 관리 대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자, 국회에선 ‘조두순 격리법, 보호수용법, 종신형 처벌’ 같은 강력한 법안들을 발의하였다.

다음으로는 ‘척’하는 가상여행 이야기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각국의 입국제한 조치가 장기화되는 현실에서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상에서라도 여행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려는 랜선 여행이 나름 대안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해외여행 애호가들’을 위해 등장한 것이 ‘관광비행’이다.

‘관광비행’이란 비행기를 타고 유람하듯 상공을 돌다가 회항하는 여행으로, 해외에 여행가는 ‘척’ 기분만 살린 반쪽짜리 여행임에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공식 명칭이 없다보니 ‘가상출국여행' ‘여행가는 척 패키지' ‘유람비행' ‘제자리 비행' ‘목적지 없는 비행' 등 다양한 표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관광비행의 원조는 대만이다. 지난달 19일, 타오위안 공항에서 출발한 대만 관광객 120명이 약 20분 동안 제주 상공을 선회하는 관광비행을 하고 돌아갔다. 단지 제주 현지 여행만 없었을 뿐이지 한복체험, 치맥(치킨+맥주) 등 한국여행을 상징하는 이벤트를 비롯해 출입국 심사, 면세점 쇼핑도 평소처럼 진행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상품은 출시되자마자 4분 만에 전 좌석이 매진되는 진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대만에 이어 일본, 호주 등에서도 관광비행 열풍이 불면서 업그레이드된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도 여기에 가세하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랜선 여행이 완전한 가상현실이라면 관광비행은 반쪽의 증강현실이라고 할까. 어쨌거나 코로나로 억눌린 여행욕구가 만들어 낸 진화된 형태의 여행임에는 틀림없다. 

조두순이 죄의 대가로 받은 징역형이나 출소 후 그를 관리하고자 국회에서 거론된 격리, 보호수용, 종신형 등은 모두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여행이란 이러한 ‘공간 이동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행위다. 아마 이런 이유로 ‘조두순 격리’와 ‘관광비행’, 이 둘이 교차되면서 하나의 맥락으로 연상된 것인지 모른다. 

자유롭게 머물고 이동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욕구를 박탈하는 것은 엄청난 형벌이다. 조두순에게 주어진 법적 조치가 적극적인 형벌이듯이, 여행의 자유와 기회가 제한되는 것은 어쩌면 코로나를 통해 인류에게 주어진 경고일 수도 있겠다.

불교에는 신족통(神足通)이 있다. 최상위 수행단계에서 얻어지는 삼명육통(三明六通) 중 자유로운 공간 이동과 관련된 능력이 바로 신족통이다. 신족통은 원하는 대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장애물을 통과하고 물위를 걸으며 하늘을 날아서 어느 장소로나 임의대로 나타나고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코로나19확산 단계에 따라 출입 통제와 해제를 반복하고 있는 한강시민공원으로 답답함에 못 이겨 몰려나오는 서울시민의 모습을 보며, 또 이탈리아 섬의 한 농부가 ‘월급은 없고 숙식만 제공한다’는 구인광고에 답답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수천 명이 지원했다는 해외토픽을 접하며 생각해 본다.

‘내가 만약 불보살님과 같이 신족통의 능력을 갖추었다면,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나도 마음껏 사용하고, 이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싶다고.’

심원 스님 중앙승가대  전 강사 chsimwon@daum.net

 

[1557호 / 2020년 10월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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