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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33·34대 총무원장 자승 스님 ③

격변의 혼란 딛고 94년 이후 첫 연임 총무원장에 당선

34대 총무원장 출마여부에 논란일자 5자회담 추진으로 ‘승부수’
무량·무차·보림회의 보선 스님과 맞대결…50표차로 당선 확정
총무원장 선거제도 개편 등 변화 추진…3자연대 반발에 무산돼

34대 총무원장에 당선된 자승 스님은 2013년 11월8일 서울 조계사에서 취임법회를 갖고 새 임기를 시작했다. 법보신문자료사진

자승 스님의 총무원장 재임기간은 격변기였다. 33대 총무원장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아 서울 강남 봉은사 직영전환 문제로 극심한 혼란을 맞았고, 화쟁위원회 중재로 안정을 되찾자 템플스테이 예산 파동으로 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자성과 쇄신결사로 종단 변화의 토대를 닦았지만 백양사 도박사건으로 다시 위기에 직면했다. 안정과 혼란의 ‘롤러코스터’가 계속되면서 조계종은 조용한 날이 많지 않았다. 

2012년 6월7일 대국민참회와 종단 쇄신안을 발표한 자승 스님은 공언대로 종단 쇄신에 착수했다. ‘사찰예산회계법’ ‘사찰운영위원회법’을 개정하면서 사찰예산공개 및 재정투명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고, 중앙징계위원회를 구성해 선출직 종무원이 비위를 저지르면 즉각 직무를 정지할 수 있도록 했다. 8월21일에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를 계기로 노사갈등 중재를 전담할 노동위원회도 발족했다. 10월19일 교구본사주지 선거 때마다 논란이 컸던 동화사, 범어사를 비롯해 쌍계사까지 ‘총림’으로 지정했다. 종단 쇄신안이 속속 추진되면서 백양사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었던 조계종도 안정세를 찾아갔다. 

2013년 6월 조계종에 선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해 10월 34대 총무원장 선거를 앞두고 중앙종회가 술렁였다. 종단 쇄신차원에서 해체를 선언했던 종책모임이 새로운 형태로 속속 부활했다. 6월25일 여권으로 분류되던 옛 화엄·법화·무량회와 무소속연대 종회의원 46명이 ‘불교광장’을 출범시켰다. 불교광장은 출범과 동시에 차기 총무원장 후보추대 논의에 착수했다. 다양한 후보군을 검증해 차기 총무원장을 선거 없이 추대키로 했다. 불교광장은 7월11일 창립법회에 이어 23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9월10일 이전까지 차기총무원장 후보를 추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불교광장의 후보추대 논의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았다. 자승 스님의 거취가 변수였다. 무량회 측은 ‘자승 스님이 앞서 불출마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후보군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화엄·법화회 측은 ‘불출마를 단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이었다. 무량회가 반발했다. 8월19일 무량회 측은 “자승 스님이 8월26일까지 불출마를 표명하지 않으면 불교광장을 탈퇴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자승 스님은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자승 스님의 침묵이 길어지면서 종단 내부에서는 그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전국선원수좌회가 뛰어들었다. 자승 스님을 겨냥해 “도박사건 당시, 자성과 쇄신결사를 마무리 짓고 아름답게 퇴진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한 뒤 8월29일부터 서울 조계사에서 묵언정진을 시작했다. 전국선원수좌회까지 나서면서 조계종 내부는 다시 흔들렸다. 

무량회가 불교광장에서 이탈하고 8월29일 종책모임 옛 무차·백상도량(보림회)과 선거연대를 선언했다. 전 중앙종회의장 보선 스님을 후보로 추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3자연대’의 출발이었다. 3자연대 후보로 추대된 보선 스님은 8월30일 출마기자회견을 했다. 이 소식은 ‘한국불교세계화’를 위해 호주 순방에 나섰다 귀국길에 오른 자승 스님에게도 전해졌다. 

전국선원수좌회의 퇴진요구에다 3자연대 출범과 보선 스님의 출마선언으로 ‘사면초가’에 내몰린 자승 스님은 승부수를 던졌다. 8월31일 대전 유성에서 봉암사 수좌 적명, 3자연대 측 법등, 화쟁위원장 도법, 전 화계사 주지 수경 스님과 5자회담을 진행했다. 5자회담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 가자, 새로 후보추대위원회를 구성해 차기 총무원장을 추대하자, 종회나 총무원에 관여하지 않고 있던 제3의 인물들을 데려다 순수한 집행부를 구성하자”가 결의됐다. 후보추대위원회는 자승 스님 측 3명, 보선 스님 측 3명, 선·교·율 분야 및 비구니계에서 추천 받은 9명의 15인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5자회담의 결과대로라면 자승 스님은 재임을 포기해야 했고, 보선 스님도 출마선언을 번복하고 추대위원회의 논의결과를 지켜봐야 할 상황이었다. 전국선원수좌회 측은 5자회담 결과를 수용키로 하고 조계사 묵언정진을 철회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선 스님 측은 공식입장을 유보했다. 오히려 보선 스님은 적명 스님과 만나 “법등 스님이 상의도 없이, 마치 전체의 뜻인 양 합의했다. 월권행위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적명 스님, ‘불광’ 2014년 12월호)

자승 스님은 9월3일 적명·도법 스님과  깜짝 기자회견을 열었다. 스님은 “8월31일 5자회담에서 보선 스님의 후보사퇴와 저의 총무원장 재임포기 및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종단발전의 주춧돌을 놓기로 했다”며 “이 합의가 지켜지길 바란다. 보선 스님은 9월4일까지 결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자승 스님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보선 스님 측이 5자회담 합의를 거부하면서 ‘재임포기’ 번복으로 도덕적으로 수세에 몰렸던 자승 스님은 명분을 얻었다. 9월16일 불교광장의 후보추대를 수락하고, 불출마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사부대중에게 사과한다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자승 스님과 보선 스님의 양자대결로 압축된 34대 총무원장 선거는 치열했다. 상대를 향한 네거티브와 날선 비난이 이어졌다. 세간의 정치권에서나 볼 수 있었던 상대 측 인사 영입전도 벌어졌다. 3자연대 측이 자승 스님 지지로 분류되던 화엄사·선운사 주지스님을 영입하자, 불교광장 측은 옛 보림회의 핵심멤버였던 영배 스님을 선대본부장으로 지명했다. 종단 내부에서는 그동안 선거 경험이 많고, 각 종책모임을 이끄는 중진들이 대거 포진한 보선 스님 측이 우세할 것으로 분석됐다. 더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마곡사 선거인단 구성을 모두 무효로 결정하면서 자승 스님 측은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선거결과는 의외였다. 10월10일 자승 스님은 전체 선거인단 311명 중 179표를 얻어 당선이 결정됐다. 129표를 얻은 보선 스님과는 50표차였다. 이로써 자승 스님은 1994년 이후 첫 연임 총무원장으로 기록됐다. 스님은 “소납의 당선은 청정한 수행풍토를 진작하고 종단의 성장과 교구와의 조화로운 발전을 염원하는 종도들의 의지가 모인 결과”라며 “초심의 자세로 스스로 탁마하고 한국불교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소임자로서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2014년 1월14일 자승 스님은 34대 집행부 운영과 관련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자비와 화쟁으로 이웃과 함께’를 종단운영의 기조로 삼고, “사회와 이웃을 향한 나눔과 봉사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밝혔다. 1사찰 1사회시설 운영을 권장하고 매월 총무원 차원에서 진행됐던 자비나눔 활동을 교구본사와 일반사찰로 확대시켜 나가기로 했다. 출가자 감소 문제 해소를 위해 출가자 예비학교 운영 및 출가사이트 활성화로 홍보를 강화하고, 승려복지와 관련해 중앙과 교구의 역할 분담을 통해 의료비 지원 확대도 약속했다. 교구분권화를 위해  중앙·교구발전위원회를 구성, 교구인사제도 개선과 말사주지 인사 교구 위임 등도 추진키로 했다. 종도들의 참종권 확대를 위해 총무원장선거제도를 개선키로 했으며, 세종시 등 신도시 종교용지를 매입해 신도시 포교에도 나설 것을 공언했다. 

종단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종책들이었지만,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3자연대 등 야권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34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참패한 3자연대는 ‘야권다운 야권이 되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해 3월11일 3자연대는 종책연대의 틀을 넘어 통합을 선언하고, 종책모임 ‘삼화도량’을 발족했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197차 임시중앙종회에 제출된 32건의 종책질의 가운데 75%에 해당되는 24건이 삼화도량 소속 스님들이 제기한 것들이었다. 

삼화도량은 번번이 총무원 집행부를 겨냥한 날선 성명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그해 6월25일 임시중앙종회에서 총무원이 승랍 20년 이상의 스님들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발의한 총무원장 선거법도 삼화도량의 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선학원 이사회도 발목을 잡았다. 선학원이사회는 조계종이 종단 산하 법인의 효율적 관리 및 지원를 위해 제정한 법인법에 반발해, “조계종 종지종통을 봉대한다. 이사는 조계종 승려로 한다” 등의 정관내용을 삭제하며 갈등을 키웠다. 그해 3월26일 선학원이사회 임원들은 조계종에 ‘제적원’을 제출하며 탈종단화를 추진했다. 이에 맞서 조계종도 선학원 이사장 법진 스님 등에 대해 ‘멸빈’의 징계를 내리면서 조계종과 선학원의 갈등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현재까지도 선학원은 조계종과의 대화를 거부하면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해 4월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승객 30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희생자 가운데 대다수는 제주로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이들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됐다. 조계종은 즉각 구조지원을 위한 긴급봉사대를 현지에 파견했다. 부처님오신날마다 진행되던 봉축행사도 대폭 축소하고, 추모행사로 변경했다. 자승 스님은 5월20일 세월호 희생자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추모재를 봉행하며 유가족들을 감싸 안았다. 22일에는 진도 팽목항을 찾아 실종자 무사귀환을 발원했다. 종단 안팎에서 ‘세월호 참사’ 추모분위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이러는 사이 그해 10월16일 16대 중앙종회의원 선거가 진행됐다. 중앙종회의원 선거는 자승 스님이 임기동안 종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지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였다. 야권인 삼화도량도 선거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각 교구본사마다 치열한 선거운동이 진행됐다. 그러나 34대 총무원장 선거 때처럼 이번 선거에서도 불교광장의 압승이었다. 선거결과 불교광장이 54석을 얻은 반면 삼화도량은 15석을 얻는 데 그쳤다. 불교광장이 많은 수의 중앙종회의원을 확보하면서 자승 스님은 종단 안정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조계사 성역화불사 등 숙원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선학원 정상화를 위해 범종단 대응기구도 출범시키기로 했으며 2015년 1월부터 사부대중 100인이 참석하는 대중공사를 발족해 종단 현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그러나 2014년 12월 동국대 총장 선출논란과 2015년 6월 전 총무원장 의현 스님의 재심파동이 발생하면서 조계종은 또 다시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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