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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생각 알아차리기

명상은 생각 일어나고 사라짐 알아차리는 것

생각을 제거하는게 명상이라고 착각
지혜는 침묵하는 알아차림서 일어나
관찰 강해지면 생각의 본질 알게 돼
수행, 마음과 관계 맺는 방식의 변화

명상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는 명상이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고 특정한 생각을 갖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상은 어떤 특정한 생각을 제거하거나 텅 비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명상은 우리 자신을 이 순간 지금 있는 그 자리에 그 상태 그대로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지낸다. 생각에 빠져있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하지만 명상의 대상으로서는 생각이 매우 유용하다. 생각의 내용에 빠져 마냥 헤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자각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면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명상하려고 앉으면 오히려 평소보다 이런저런 생각이 더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 이때 마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생각에 대해 맞서 싸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일어난 생각에 맞서 싸우지 않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그저 우리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쏟아져 들어오는지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잡념이나 번뇌가 일어나면 이를 단순히 알아차리고 호흡에 마음을 집중하면 된다. 계속 반복해서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마음의 알아차림은 점점 더 강해진다. 우리는 일어나는 생각을 관찰하고 또 관찰하면 된다. 이렇게 생각이 아니라 특히 침묵으로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할 때 생각으로는 얻을 수 없는 통찰이 일어난다. 

우리가 키우려는 지혜는 머릿속의 시끄러운 생각이 아니라 침묵하는 알아차림에서 직관적으로 일어난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각을 침묵으로 관찰하다 보면 생각은 마음 공간에서 일시적인 에너지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마음 공간에서 생각은 물결 하나도 일으킬 힘이 없다. 마치 햇볕을 받으면 사라지는 투명한 이슬방울과 같다. 이렇게 점차 관찰의 힘이 강해지면 일어나는 생각 자체를 분명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고, 생각의 본래 성질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생각에 반응하지 않고 걸려들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심지어 마음에 계속 일어나는 생각에 미소 짓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생각이 일어날 때 그 생각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 생각에 휩쓸리게 된다. 이러한 생각은 순식간에 우리를 먼 곳까지 데려가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이라는 열차에 올라타는지도 모른 채 올라탄다. 물론 생각 열차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다. 한참을 생각에 휩쓸려가고 나서야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생각에 자신이 농락당했음을 깨닫는다. 이렇게 깨달은 후에도 생각이란 놈은 아주 약삭빨라서 한 곳에서 지키고 있으면 느닷없이 다른 곳에서 비집고 들어온다. 

늘 깨어있기 위해서는 생각에 대하여 기민하게 깨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이 일어났을 때 그저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마음에 어떤 종류의 생각이 일어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상의 사고 흐름에서 벗어나 마치 강둑에 앉아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듯 생각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으면, 생각에 빠져있는 것과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점차 어떤 생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교 수행의 핵심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의 패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수행이 향상되면 서서히 생각의 영향력에서 풀려나 마음이 실제로 더 고요해지고, 마음의 관찰하는 힘이 더 기민하고 강해진다. 그리고 생각을 명료하게 보기 시작하며, 자기도 모른 채 생각에 농락당하는 일이 줄어든다.

신진욱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buddhist108@hanmail.net

 

[1558호 / 2020년 10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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