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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차별 그쳐야 한국불교 산다

  • 데스크칼럼
  • 입력 2020.11.13 17:29
  • 수정 2020.11.26 13:37
  • 호수 1561
  • 댓글 15

여성출가자 급속히 감소
불평등한 승단구조 요인
차별 걷어내는 게 급선무

지난달 말 조계종 중진스님들이 발제자로 참여한 만행결사 대중공사는 중흥과 쇠퇴의 중대 기로에 선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진단하는 자리였다. 이날 심각하게 논의된 것 중 하나가 출가자 감소였다. 1991년 출가자가 517명으로 2002년까지는 매년 400~500명이 꾸준히 출가했다. 그러나 2003년 373명으로 떨어진 것을 기점으로 크게 감소하더니 2016년 157명이었고, 올해는 131명에 그쳤다.

이날 공개된 통계에는 출가자 감소 외에 또 다른 심각성을 보여준다. 남성출가자에 비해 여성출가자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남성출가자와 여성출가자 수 차이가 53.2%대 46.8%로 엇비슷했지만 2000년대에는 59.7%대 40.3%로 크게 벌어졌고, 2010년대 이후에는 65.7%대 34.3%로 여성출가자는 남성출가자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올해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도드라져 남성출가자 74.8%(98명), 여성출가자 25.2%(33명)로 여성은 4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비구니스님이 아예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

출가자 감소 원인은 출산율 저하와 젊은 층의 종교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면 유독 여성출가자가 남성출가자에 비해 현격히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사회에서 여성의 권익과 평등이 정착되고 경제생활이 보다 자유로워진 여건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 내부 상황이 보다 본질적인 이유일 수 있다.

2018년과 2019년 출가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서 출가사유로 59.2%가 ‘불교공부’를 꼽았으며, ‘스님 권유’가 9.4%였다. 누구라도 진리를 깨달아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불교의 특성이고 매력이다.

결연한 각오로 산문에 들었더라도 부지런히 공부하고 정진해 인천(人天)의 스승으로 거듭나는 길은 고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성출가자라면 더 험난한 난관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평등의 공동체라는 승가 내부에는 은산철벽과 같이 뛰어넘기 힘든 수많은 차별이 현존한다. 종단의 주요 직책은 모두 ‘비구’가 맡아야 한다고 명문화됐고, 일반 스님들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종회의원도 비구스님들 일색이다. 교구의 중요 사안을 결정하는 산중총회에 비구스님은 법랍 10년 이상이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지만 비구니스님은 말사 주지로 한정하고 있다. 평생 해당 교구에 머물렀더라도 말사 주지를 맡지 못한 대다수 비구니스님들에게는 발언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최근 80대 노비구니스님이 병원에 입원해 종단에서 지원을 결정했는데 정작 해당 교구본사에서는 그간 비구니스님이 본사와 왕래가 없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부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절집에서 60년을 넘게 산 노비구니스님에게 본사주지, 종회의원 등을 선출할 투표권이 있었더라도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예나 지금이나 여성이 출가해 비구니로 살아가는 자체가 고달프고 차별과 마주하는 일이다. 대다수 큰절을 비구스님들이 운영하기에 비구니스님들이 머무를 공간은 부족하고, 교구본사의 주요소임은커녕 부전 일을 맡는 것조차 어려워 생활고에 허덕이기 십상이다. 선원장·선사 초청법회가 으레 비구스님 일색이다 보니 비구니스님이 선방에서 오랫동안 정진했더라도 법문이나 지도할 곳이 마땅찮다. 비구니스님이 어렵게 사찰을 지었더라도 겨우 운영이 가능한 사찰들이 대부분이다.

불경에서는 산천초목과 모든 미물도 성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불교 안으로 들어오면 승가의 일원인 비구니스님조차 제2의 성이며 주변인이다. 평등과 공정 문제에 유독 민감한 요즘 시대에 모르면 몰랐지 알면서 애써 차별받는 곳에 어떤 여성이 선뜻 발을 들일까.

편집국장
편집국장

불교는 사부대중의 종교다. 각각의 역할과 차이가 권리행사와 접목되는 순간 차별로 귀결된다. 시대의 역주행은 위기를 부를 뿐 아니라 사회적 지탄을 피해갈 수 없다. 한국불교가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첫걸음은 차별을 걷어내고 평등정신을 회복하는 데에 있다. 무엇보다 비구니스님들도 이제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으며 권리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mitra@beopbo.com

[1561호 / 2020년 11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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