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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가 생활에 스며야 불교 살아 숨 쉰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1.01.11 13:25
  • 호수 1569
  • 댓글 0

심오한 교리·신념체계 담겨 있어
개인의 신심·공동체 활성 원동력

승단위주·선정중심에 치우쳐 소홀
포교원 ‘생활불교의례’ 인상 깊어

불자들의 정형화된 신앙표현의 대표 행위인 불교의례에는 교리와 신념 체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인과 집단의 신심을 강화하는 한편 공동체의식 활성화의 주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나아가 불교가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와 진리를 유지·영속시켜 주는 기능도 있다.  

불교의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사찰법회에서 치러지는 의례이고, 또 하나는 관혼상제 등과 직결된 일상에서 사용하는 의례이다. 전자는 비교적 종단 차원의 통일된 의례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후자는 지금까지 거의 전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한 이유는 있다.

조선의 억불숭유 정책과 함께 불교의례도 그 힘을 점차 잃어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의 승병 활약으로 왕과 사대부로부터 주목을 받지만 나라가 불교에게 맡긴 건 국가의 흥망에 영향을 미치는 천변재이를 물리치는 역할이었다. 불교가 조선 중기를 넘어서며 미신·기복으로 치우친 이유기이도 하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짚어볼 만한 게 있다. 조선시대 각 사찰에서 간행한 의식집은 70종이 넘는다. 그러나 불교의례가 통일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해인사, 송광사 등의 대찰뿐만 아니라 여러 암자가 펴낸 의식집도 많다보니 조선시대의 불교의례집은 번다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고승 중 한 분인 백파 스님이 “작법의 절차에 관한 많은 책들 가운데 전모를 보여주는 책이 없다”고 비판하며 불교의례 정비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재로 기존의 의례집들을 검토한 백파 스님은 상·하 두 권으로 편집한 ‘작법귀감’을 내놓았다. 이를 기점으로 부족하나마 불교의례가 정비되는 듯 했으나 조선말의 정세와 일제침략의 혼란으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개항과 함께 근대로 접어들며 불교의례 정비 문제는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용운 스님을 필두로 한 권상노, 이영제가 대표적인데 불교의례의 한글화·간소화·대중화를 지향했다. 특히 백파 스님의 정신을 이었다고 평가받는 진호 스님은 ‘불자필람’과 ‘석문의범’을 내놓았다. ‘석문의범’은 각 사찰에서 봉행하는 법회가 나름 통일성을 갖게 하는 단초를 제공해 주었다. 이후 조계종을 비록한 각 종단은 ‘석문의범’에 근거를 두며 나름의 불교의례 체계를 잡아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상기할 인물은 근대 거사불교를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이능화다. 그는 근대사회에서 불교가 살아남으려면 대중이 이해하기 쉽고 따라할 수 있는 생활불교의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실재로 번거롭고 잡다한 틀의 유교식 혼인절차를 고치고, 여기에 기독교 방식을 접목하면 편리한 ‘불교식 결혼’의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연구한 후 ‘의정불식화혼법(擬定佛式花婚法)’을 선보였다. 1920·30년대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이능화의 정신을 계승했다면 적어도 관혼상재와 연관된 불교의례 체계 정도는 확고하게 잡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불교계는 그 과실을 맺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재가보다는 승단 위주의 불교, 수행·선정 중심의 불교에 치우치다 보니 이 문제를 소홀했다고 본다. 

물론 외면한 건 아니다. 1980년대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에 따른 활로를 찾기 위해 제도개혁의 필요성이 논의되었는데 그때마다 생활불교의례는 이슈였다. 조계종 포교원이 ‘한글 통일법요집’을 출간한 것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생활불교의례가 불자 곁으로 다가서지 못한 건 조계종을 중심으로 한 각 종단이 곱씹어봐야 한다.

최근 조계종 포교원이 내놓은 ‘불자생활의례’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혼상제뿐만 아니라 영유아 마정의례, 백일 및 첫돌의례, 입주안택의례 등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의례가 담겨 있다. 불교가 우리의 생활 속으로 깊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고무적인 건 이번 책에 수록하지 못한 생활의례는 현장의견을 지속적으로 반영해 ‘종단본 의례집’으로 발간할 계획을 세워 두었다는 점이다. 

이능화의 고민을 풀어가고 있는 듯해 포교원에 거는 기대가 크다. ‘급격한 사회변화’는 지금도 진행 중이고, 여전히 우리는 이 시대를 선도할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며 활로를 찾아야하기 때문이다.

[1569호 / 2021년 1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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