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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제48칙 파릉계압(巴陵鷄鴨)

좌주, 그대는 부처님 설법에 계합하고 있는가

“조의와 교의는 같냐 다르냐”
선과 교 차별 대해 질문한 승
같고 다름 따지는 문제 아닌
어떻게 판별할지 먼저 물어야

승이 파릉호감 화상에게 물었다. “조의(祖意)와 교의(敎意)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파릉이 말했다. “닭은 날씨가 추워지면 나무 위로 올라가고 오리는 날씨가 추워지면 물속으로 들어간다.”

본 문답에서 조의(祖意)는 조사문중의 뜻으로 불립문자를 표방하는 선종의 가치이고, 교의(敎意)는 교리의 뜻으로 경전을 강의하고 탐구하는 교학의 가치이다. 승이 선과 교의 차별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파릉호감(巴陵顥鑒)은 대단히 상징적이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예로써 답변을 한다. 말주변이 뛰어나서 깡다구(鑑多口)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선과 교의 비교 내지 차별은 달마가 중국에 도래한 이후부터 논의되어 온 문제이다. 부처님의 언설을 바탕으로 성취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한 모습이다. 그에 비하여 언설은 결국 마음의 거울이기 때문에 언설 속에 담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에 가장 부합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낙포원안이 임제의현을 모시고 있었다. 어떤 좌주(座主)가 임제께 예배 드리자, 임제가 물었다. “한 사람은 삼승십이분교(三乘十二分敎)를 잘 해명하지만 한 사람은 삼승십이분교를 잘 해명하지 못한다. 자, 말해 보라. 이 두 사람은 같은가 다른가.” 좌주가 말했다. “잘 해명한 사람은 동(同)에 즉한 것이고 잘 해명하지 못한 사람은 별(別)에 즉한 것입니다.” 임제가 말했다. “그 가운데 무엇이 들어 있길래 동이라고 말하고 별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임제가 낙포를 돌아보고 말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낙포가 갑자기 할(喝)을 하였다.

이 문답은 승과 파릉의 문답에 대한 힌트를 보여주고 있다. 좌주는 사찰에서 경전을 강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장경을 가리키는 삼승십이분교를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경전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임제의 질문은 가장 상식적이면서도 그 상식을 초월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좌주는 임제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경력에 충실했다는 듯이 정직하게 답변하였다. 동(同)은 부처님이 설법한 의도에 계합되었다는 것이고, 별(別)은 부처님이 설법한 의도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답변은 지극히 쉽다. 삼승십이분교에 대하여 통달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부처님의 의도가 드러날 까닭이 전혀 없다. 그러나 통달한 사람에게는 부처님의 의도에 온전히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경전의 문자와 언설에 충실한 답변일 수는 있겠지만 임제의 의도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임제는 같고 다른 관계를 묻고 있는 것이 아니다. 좌주 그대는 부처님의 설법인 문자와 언설에 계합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물은 것이었다. 그러나 좌주는 경전을 강의하는 사람답게 임제의 물음에 대해서도 질문에 드러난 언설에 부합하는 답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임제 곁에 서 있던 낙포는 하릴없다는 것처럼 갑자기 할을 하는 것으로 좌주에게 임제의 반응을 대신 거들어주었다.

이것이 바로 조사문중의 뜻과 교학의 뜻이기도 하다. 파릉은 승의 질문에 대하여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모든 사람이 일상에서 상식으로 알고 있는 물상을 들이밀어 응답하고 있다. 닭이 날씨가 추우면 횃대 위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오리가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렇다. 닭과 오리는 각각 본분에 충실한 행위를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달리 닭이 물속으로 들어가고 오리가 횃대 위로 올라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듯이 조의와 교의는 본래부터 같다느니 다르다느니 하는 기준으로 판별할 문제가 아니다. 조의는 무엇을 하는 것이고 교의는 무엇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의와 교의는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먼저 제기했어야만 했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569호 / 2021년 1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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