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무선마이크 어떤 거 써야지요?” “쏘니가 국룰이니, 그거 사시면 돼요.” 그런데 내가 말해준 금액보다 물건이 비쌌다. 어라! 나온 지 오래된 물건인데도 가격이 역주행을 하고 있네? 코로나 쓰나미가 몰아치면서, 많은 분이 유튜브에 내동댕이쳐진 결과였다.
불교도 예외는 아니다. 대면예배를 강행하던 교회가 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면서, 사찰과 스님들도 앞다퉈 유튜브에 뛰어들고 있다. 그리곤 곧 심심한 자위를 하거나, 처참한 현실에 절망하곤 한다. ‘우리 절 신도만 구독을 눌러도 몇백 명은 될 거야’라는 예상은 조만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 유튜브를 안 하는 사람은 없다. 신문은 화석이 된 지 오래고, 티비는 좀비로 전락했다. 최강자로 군림하던 포털도 맥이 빠진 지 오래다. 또 요즘은 10~20대의 유튜브 사용 비율보다 50~60대가 더 많은 역전 현상이 이루어졌다. 코로나19에 따른 비대면 강조와 50~60대 유튜브 인구의 급증은 사찰도 유튜브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내가 유튜브를 볼 때는 수십만 구독자는 기본이고 백만이 넘는 분도 많은데, 막상 채널을 개설하면 구독자 1000명도 노안이 달을 보듯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이렇게 실의에 빠진 분을 만나면, 내가 늘상 해주는 말이 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만들지 말고, 스님이 보는 콘텐츠처럼 만드셔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좋아하는 걸 하세요. 그럼 최소한 다른 분이 안 봐도 스트레스는 안 받을 겁니다.’ 즉 대세를 따르거나, 소신껏 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게 또 막상 그리 녹록지가 않다.
60~70년대에는 신문에 기사 한 줄 광고 한 줄만 나와도 매출이 바뀐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봐주세요’라고 하는 것들이 항하의 모래 수보다도 많다. 그런데 자신도 잘 안 보는 걸 올려놓고 신도님께 봐달라고 하는 건, 현대판 ‘도끼만행 사건’에 진배없다.
사실 나는 상대적으로 유튜브 진입이 용이했다. 2018년 말부터 불교방송 티비에서 ‘자신감’이라는 프로를 진행하게 되었고, 또 2019년 초부터는 BTN에서 ‘붓다로드’를 시작했다. 덕분에 이 프로들의 파일을 받아와 방송국과는 1달 이상의 차이로 올리면서, 양질의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흥미로운 건 두 방송국에서 동시에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내가 최초인데, 이게 상도덕(?) 위반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불교방송 티비에서는 시청률이 최고였음에도 개편 때 하차하게 된다. 시청률이 황금갑옷이라면, 괘씸죄는 토르의 망치 묠니르였던 것이다.
그러나 두 프로는 내 유튜브의 마중물이 되고도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적기에 들어온 두 프로야말로 부처님께서 내게 온라인 불교교육 체계를 만들라는 가피가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은 방송국 프로가 굳이 없더라도 자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근육이 갖추어져 있다. 프로를 진행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값진 곁눈질 덕분이다.
내가 나름 꽃길을 걸었다면, 다른 스님들은 유튜브라는 시멘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데서 시작하게 마련이다. 해서 나는 종단 차원에서 스님들께 유튜브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곤 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이 연재 의뢰가 들어왔으니, 이 역시 또 다른 가피가 아닌가 한다.
자현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kumarajiva@hanmail.net
[1570호 / 2021년 1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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