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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국사탑 복원은 융복합 연구 결정체"

  • 성보
  • 입력 2021.01.20 17:54
  • 수정 2021.01.22 19:39
  • 호수 1571
  • 댓글 0

110년 타향 떠돈 비운의 석탑, 5년에 걸친 보존처리 완료
국립문화재연구소, 원주 법천사지 귀환 앞두고 보고서 발간
“신석재 활용법·특허기술 사용법·장엄 연구성과 등 담아내”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연구원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을 탑신석 수지처리면을 미세보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br>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 연구원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을 탑신석 수지처리면을 미세보정하고 있다. 문화재청 제공

당대 석공의 예술혼을 엿볼 수 있는 걸작이면서도 근현대사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 5년여에 걸친 보존처리를 마치고 고향 원주로의 귀환을 앞두고 있다. 이에 맞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광국사탑 보존처리 과정을 담은 보고서를 펴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정소영)는 1월20일 보존처리 과정을 담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 보존·복원Ⅲ’을 발간했다. 보고서에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한 보존처리 연구성과가 담겼다. 이날 정소영 문화재보존과학센터장은 “센터 연구원들이 지광국사탑의 잃어버린 본래 모습을 되찾고자 2016년부터 최선을 다했으며 보고서에 그간의 과정을 충실히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석탑을 조성할 당시 사용된 석질을 분석해 신석재를 제작했고 이를 활용해 파손부재를 접착했다. 29개 부재 가운데 19개가 신석재를 사용해 복원됐다. 이태종 학예연구사는 “부득이 새로 구해야 하는 신석재들은 지광국사탑이 있던 원주(귀래면 귀래리 석산)에서 채석해 제작했다”며 “옥개석과 앙화, 보륜 등 상륜부 부재는 절반 정도를 신석재로 복원해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지난 1957년 수리 당시 잘못 복원된 부분은 유리건판과 실측도면을 바탕으로 도상을 면밀히 연구하고 전통기술과 도구를 활용해 가공·접합했다. 이 학예연구사는 “탑신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옥개석 파손부재 조각과 법천사지에서 발굴된 하층 기단갑석 조각을 과학적 조사와 고증을 거쳐 원래 위치에 복원했다”며 “잘못 수리·복원된 옥개석 방위와 추녀 위치를 바로잡았고 추후 탑의 무기질 결합재 연구를 통해 학문적 성과도 도출해냈다”고 말했다.

해린 스님(海麟, 984~1070)의 사리를 모신 지광국사탑은 역대 가장 화려하고 개성있는 승탑으로 꼽힌다. 특히 상층기단석은 독특하면서도 서사적인 부조를 가졌다. 탑신석 정면에는 두 대의 가마가 나란히 등장하는데 이는 ‘현우경’ 수달기정사품을 주제로 한 ‘노도차투성변상도(勞度差鬪聖變相圖)’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노도차투성변상도는 기원정사 건립을 둘러싸고 불교도와 외도 사이에 벌어진 환술 겨루기, 이른바 ‘투법(鬪法)’을 중심소재로 다룬 회화다. 외도인 노도차가 주문을 외워 거대한 나무를 만들면 사리불은 이를 꺾어버리고, 노도차가 사나운 용이 되면 사리불은 금시조가 되어 용을 잡아먹어버리는 등 온갖 대결 끝에 결국 외도들이 귀의하는 여러 장면을 과장과 해학으로 표현하고 있다.

변상도에서 가마가 등장하는 장면은 사리불과 수달(須達, Sudatta) 장자가 기원정사를 세우고자 떠난 여정을 나타내는데 이는 외도와의 투쟁에서 승리하고 불법의 수호·전파를 위한 기원정사의 건립을 의미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광국사탑 기단석에 새겨진 도상 역시 법상종 수장이었던 해린 스님을 사리불에 투영해 부조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외에도 탑신석 모서리에 표현된 대나무 기둥장식, 옥개석의 사방불(지장보살·약사불·아미타불·미륵불), 주렴과 술로 장식된 보장 등 상징적이고 은유적 부조에 지광국사탑은 석탑 가운데 유일무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 문종 대에 왕사와 국사를 지낸 해린 스님은 990년 원주 법천사에서 관웅 스님을 만나 불교에 입문했다. 이후 1030년 해안사 주지를, 1045년 승통을 지냈고 1046년에는 궁중에서 초정 받아 유심(唯心)의 묘의(妙義)를 강의하는 등 개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054년에는 법상종 중심 사찰인 현화사(玄化寺) 주지를 지내며 이곳을 대대적으로 중수하고 대장경 판각을 주도했다. 1067년 원주 법천사로 돌아와 수행하다 1070년 입적했다. 문종은 해린 스님에게 ‘지광’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선종 2년(1085) 하산소(下山所)인 법천사에 지광국사탑과 탑비가 조성됐다.

하지만 화려하고 웅장했을 사찰의 목조 건물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모두 불타 없어지고, 일부 석재 유물만 텅빈 절터를 지켰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원주 법천사지 절터 일부는 개인 소유지 내에 포함됐다. 땅주인은 1911년 일본인 모리무라 타로에게 지광국사탑을 매매했다.

이를 계기로 지광국사탑의 긴 방랑이 시작됐다. 모리무라 타로는 서울에 거주하던 일본인 사업가 와다 쓰네이치에게 다시 탑을 팔았고, 그 사업가는 웃돈을 붙여 일본 오사카 남작 후지타 헤이타에게 넘겼다. 하지만 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반출을 문제삼고 연루된 이들을 소환하자, 최초 매수자였던 모리가 다시 탑을 사들여 총독부에 헌상하면서 일본으로 반출됐던 지광국사탑은 다시 국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우리 문화재를 아끼는 선의가 아니라기보다는 조선이 영원히 일본의 식민지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에 따른 조치로 해석된다.

방랑과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1915년 지광국사탑은 강원도 원주와 경기도 여주·이천 지역에 있던 다른 탑·부도·석등 등과 함께 조선물산공진회(박람회)에 전시되면서 경복궁 미술관 앞에 임시로 자리를 잡았다가, 1923~1932년 사이 경회루 동편으로 옮겨져 해체·복원됐다. 하지만 1950년부터 시작된 한국전쟁 때 포탄을 맞아 옥개석 남면이 완전히 결실됐고 탑 전체가 크게 훼손됐다.

전쟁은 끝났지만 탑은 계속 방치됐다. 4년이 지난 1957년까지 방치됐다가 그해 9월 한국을 방문한 응오 딘 지엠 월남(베트남) 대통령과 경복궁 산책에 나선 이승만 대통령에게 발견되면서 복원이 시작됐다. 하지만 폭격을 맞은지 7년이나 지나 부재들 상태는 엉망이었다.

1957년 국립중앙박물관 관리하에 보수·복원 작업이 시작됐으나 한 달여에 걸친 급작스러운 복원 과정에서 오류가 다수 발생됐다. 결실된 옥개석 파편이 위치가 바뀌어 접합됐고, 옥개석 배면은 방위가 뒤바뀌어 보수됐다. 1981년 문화재관리국 주도하에 문양과 치수 등 실측이 진행된 뒤 1990년 경복궁 사정전 뒤뜰에서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옆으로 이전됐다.

왼쪽부터 보존처리 완료된 앙화, 옥개석, 탑신석. 문화재청 제공
왼쪽부터 보존처리 완료된 앙화, 옥개석, 탑신석. 문화재청 제공

 

본래 있던 곳을 떠나온 110여년 세월은 지광국사탑의 지난했던 과정이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존처리로 이제 지광국사탑은 환지본처를 앞두고 있다.

2019년 6월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으로 지광국사탑을 원주 법천사지로 이전하는 것은 확정됐으나 원래 자리였던 탑비 앞에 세울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보호 시설을 지어 탑비와 함께 보관할 것인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2여년 전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는 불탑이 있던 자리에 보호각을 씌워 복원하는 방안과 원주시가 절터에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에 탑과 탑비를 함께 옮겨 보존·전시하는 방안이 거론됐었다. 이에 문화재위원회는 보존 환경을 검토해 최종 이전 지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한편 발간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 보존·복원Ⅲ’은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www.nrich.go.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71호 / 2021년 1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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