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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은 지금 지독한 ‘좌선병’에 걸려 있다"

기자명 법보
  • 교계
  • 입력 2021.01.26 14:38
  • 수정 2021.01.26 16:41
  • 호수 1572
  • 댓글 26

특별기고-윤창화 민족사 대표

매일 8~12시간씩 무릎 고장 날 정도로 좌선에만 내맡긴 방치선
수행자 불치병은 ‘좌박’ ‘장좌불와병’ ‘용맹정진병’ ‘~척’ ‘~체’ 병
좌선일변도로 선 대중화는 불가능…좌선병 치료가 한국선 화두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지난해 12월11일 ‘전등록’과 ‘백장청규’ 등 선문헌에 대한 고찰로 오늘날 선수행 풍토를 지적한데 이어 1월26일에는 ‘누가 더 오래 앉아 있느냐’가 수행의 척도가 되고 있는 선원 문화를 고찰한 글을 보내왔다. 윤 대표는 ‘당송사원의 생활과 철학’을 저술해 불교평론 학술상을 수상했으며, ‘무자화두 10종병에 대한 고찰’ 등 논문이 있다. 편집자

지금 한국 선(禪)은 좌선병에 걸려 있다. 좌선에 속박, 경도되어 있다. 불(佛)에 속박(걸려)되어 있는 것을 ‘불박(佛縛)’이라고 하고, 법에 속박해 있는 것을 ‘법박(法縛)’이라고 한다. 장좌불와에 속박되면 그것은 ‘좌박(坐縛)’이다.

‘원각경’에는 “보살(대승의 구도자)은 법에 속박되지도 말고 법박을 구하지도 말라(圓覺經曰. 菩薩, 不與法縛, 不求法縛)”고 설하였고, ‘육조단경’ 정혜품에는 “마음이 만약 법에 안주하면 그것을 자박(心若住法, 名爲自縛)”이라고 하였다. 또 ‘선가귀감’에는 “만약 불(佛)을 구하는 데 집착하면 불박을 당하게 되고, 법을 구하는 데 집착하면 법박을 당하게 된다(若着佛求被佛縛 若着祖求被祖縛)”라고 하는 등 여러 곳에서 불박, 법박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박(縛)’은 ‘이것이 최고’라는 관념의 선병으로 결박·속박·집착·구속을 말한다. ‘벽암록’ 제1칙 달마의 확연무성도 불박과 법박을 타파하게 하는 공안이고(如何是 聖諦第一義, 磨云, 廓然無聖), 운문의 간시궐(如何是佛. 雲門云, 乾屎橛)과 동산의 마삼근(如何是佛. 洞山云, 麻三斤)도 불박과 법박을 벗게 하는 화두이다. 그리고 ‘금강경’의 유명한 법문인 ‘무유정법 명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有定法, 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도, 그 핵심은 불박과 법박에서 벗어나 공(空)의 경지를 이루어야 한다는 법문이다.

지금 한국선의 화두는 좌선병을 치료하는 일이다. 하루 평균 8~12시간씩 좌선하고 있는데, 4시간 이내로 줄여야 한다. 새벽, 오전, 오후, 저녁 각각 1시간씩만 좌선하고, 그 나머지 시간은 어록 제창(提唱, 제창은 공안 거양(擧揚)을 겸한 어록 강독임), 독참, 청익, 그리고 개인적인 사유 시간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

다음은 방장, 조실의 납자 제접 지도 기능의 복원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방장과 조실의 기능은 정지되어 있다. 법문, 독참, 청익, 법거량(선문답), 제접 등 납자 지도 및 오도(悟道) 시스템은 고장이 나서 가동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 선원이 좌박, 좌선병, 좌선 지상주의로 경도하게 된 것은 방장, 조실스님의 지도능력 부재와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법거량은 조사선의 가장 두드러진 특색이다. 법거량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케 하는 오도 기능의 하나로 2000년 백양사 조실 서옹 스님 주재하에 열린 무차대회가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70~80년대까지도 법거량은 종종 있었다. 결제, 해제 법어 등 선의 현장에서 법이 거량되었고, 지대방에서 오가는 납자들의 대화 주제도 좌선보다는 법거량이었다. 전강, 춘성, 서옹 스님 등 격외의 선승들이 존재해 있었기 때문인데, 법거량은 활발발한 선의 작용이고 생동하는 선의 모습이었다.

자각종색 선사의 ‘선원청규’ 7권, ‘존숙주지(尊宿住持)’ 편에는 주지(방장, 조실)의 책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주지는) 부처를 대신하여 고칙 공안을 거양(擧揚, 제창)한다. 그러므로 (그 역할은) 지사(知事, 감원, 도사, 감사 등)들과는 전혀 다르다. (…) 용상(龍象) 같은 고승이 나오도록 지도해야 하며, 아침저녁으로 납자 지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곧 이것이 인간과 천상의 안목(눈)이 된다는 것이다.”(“代佛揚化, 表異知事. (…) 整肅叢林規矩, 撫循龍象高僧. 朝晡不倦指南, 便是人天眼目.”(신찬속장경 63권, p.52c).

그밖에 여러 청규에서도 한결같이 주지(방장, 조실)의 역할은 납자 제접과 지도라고 말하고 있다.

청규에서 볼 수 있듯이 방장이나 조실스님의 책무와 역할은 수행자 지도이다. 불박, 법박, 좌박에 걸려 있는 납자로 하여금 박(縛)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갖가지 선병을 치료·점검해 주는 것이 방장, 조실스님의 역할이다.

우리나라 선은 간화선이다. 그런데 이 간화선이라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 일반화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그 이전 즉 60년대에서 80년대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어쩌다 간화선이라는 말이 신문에 등장하긴 했지만, 아주 낯설고 생경한 말이었다. 주로 조사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또 간화선과 조사선의 구분도 명확하지 않다. ‘화두 참구’라는 것 외에는 딱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공안의 핵심구인 ‘무’, ‘간시궐’, ‘정전백수자’ 등을 뽑아서 참구하게 했으나 간화선을 성립시킨 대혜선사도 조사선과 다르다고 한 적도 없고 구분, 차별화하지도 않았다. 간화선의 사상적, 철학적 바탕은 물론이고, 화두를 드는 이론적인 바탕도 모두 조사선이다.

우리나라 선(禪)이 점점 더 좌선 일변도로 경도하게 된 것은 이 무렵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부터 오래 앉아 있는 것, 즉 장좌(長坐)를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이 무렵부터 수행의 기준은 한마디로 ‘누가 더 오래 앉아 있느냐?’가 되었고, 장좌불와, 용맹정진은 곧 수행의 척도가 되었다. 그 결과 선원마다 좌선 시간을 극대화하여 ‘어떤 선원이 좌선 시간이 더 긴가?’ 그것은 마치 선원의 등급처럼 되었다. 그 결과 하루 10시간, 12시간씩 좌선하는 달마 이후 최대 좌선시간을 할애했다.

조사선은 생활즉선(生活卽禪), 일상생활이 곧 선(禪)이었다. 좌선 일변도가 아니었다. 마조선사는 이러한 조사선을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평상적인 마음이 곧 도)’라고 정의했고, 운문선사는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즐거운 날)’이라고 표현했다. 그 밖에 선어록에 헤아릴 수 없이 매우 많이 나오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일상의 거동)’ ‘어묵동정(語默動靜)’ ‘착의끽반(着衣喫飯, 옷 입고 밥 먹고)’ 등도 모두 일상이 곧 선(禪)이어야 함을 뜻하는 말이다. 즉 조사선은 일상선(日常禪), 생활선(生活禪)으로서 날마다 한순간 한순간을 번뇌 망상이 없는 깨어 있는 나날을 살아가는 것(日日是好日), 그것이 조사선의 이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았으므로 조사선 시대에는 별도로 좌선 시간을 정해 놓고 앉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개별적으로 좌선을 했지만, 특별히 좌선을 의무화한다거나 제도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고 좌선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좌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견, 정법안을 갖추는 것이었고, 그 방법론으로 정착한 것이 상당법어 등 법문과 독참, 청익, 선문답 등 오도(悟道)시스템이었다.

좌박, 좌선병에 대한 비판은 이미 남악마전(南嶽磨磚)의 공안에서도 볼 수 있었지만, 설봉의존과 암두전활의 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선화(禪話)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설봉이 하루는 암두를 데리고 흠산을 찾아가다가 오산의 여관에서 폭설을 만나 여러 날(7일) 묵게 되었다. 그런데 암두는 매일같이 잠만 자고 설봉은 한결같이 좌선만 하고 있었다. 그러자 암두는 설봉을 향해 소리쳤다. “잠 좀 자시오. 매일 같이 침상에 앉아(좌선) 있는 모습이 흡사 시골 촌락[七村裏]의 사당에 모셔져 있는 토지신과 같소. 훗날 남의 집 청춘남녀(자식)들을 꽤나 망치겠소.”(雪峯. 一日率巖頭訪欽山. 至鰲山店上阻雪. 巖頭每日, 只是打睡. 雪峯一向坐禪. 巖頭喝云, 噇眠去. 每日床上, 恰似七村裏, 土地相似. 他時後日魔魅人家男女去在). (五燈會元 제7권 雪峰義存장. 벽암록 22칙 평창)

암두의 질타는 좌박(坐縛), 좌선병에 깊이 걸려 있는 설봉의 병통을 고쳐주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 노파선적(老婆禪的)인 행위이다. 일상생활이 곧 선, 선(禪)의 생활이 되도록 하면 될 터인데, 마치 사당의 토지신상(像)처럼 장좌불와, 용맹정진하고 있는 그 꼴(모습)이 아직 ‘체 병’ ‘척 병’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행자의 불치병은 ‘좌박(坐縛)’, ‘장좌불와병’, ‘용맹정진병’, ‘체’ ‘척’ 병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선원은 상당법어, 독참, 청익, 납자 제접, 법거량 등 모든 지도 및 오도 기능이 정지되고 오로지 하루 10시간, 12시간씩 앉아만 있다. 지독한 좌선병에 걸려 있다. 무릎이 고장 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좌선에만 내맡긴 방치선(放置禪), 방목선(放牧禪)이라고 할 수 있다.

좌선일변도의 간화선은 대중화될 수가 있는가? 결론은 대중화될 수가 없다. 대중화가 되자면 보편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 간화선은 보편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법문과 점검, 제접, 지도 기능이 없다. 방치선(放置禪), 방목선(放牧禪)으로 대중화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민족사 대표
윤창화 민족사 대표

당송시대 조사선의 납자 지도 시스템, 즉 제접, 지도 기능은 체계적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간화선은 체계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이런 구조에서 깨달은 선승(조사)이 출현할 수 있을까? 매우 회의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1572호 / 2021년 2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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