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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유행자 왓차곳따를 교화하다

깨어있는 때와 잠 잘 때가 같다는 생각은 망상

‘몽중일여’을 주장하는 견해는
부처님을 비난하는 망어일 뿐
깨어있을 때 확연히 깨어있고
잠을 잘 때는 확실하게 자야

초전법륜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초전법륜상.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오늘날 역사적으로 존재하셨던 고따마 붓다, 즉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다면 사람들은 어떤 질문들을 할까. 사람마다 궁금한 점들이 다를 터이지만, 아마 그 내용들은 초기경전에서 그 옛날 인도 사람들이 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질문의 내용을 보면 수행과 관련된 질문이 많기는 하지만 신통력과 관련된 내용도 적지 않다. 그리고 전생이나 내생에 대한 내용도 심심치 않게 본다. 질문의 내용들은 다 제각각이지만, 그 질문을 통해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부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질문자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이 진짜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자신을 혼란스럽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든 원인에 대한 통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호하게 되는 것이다. 정체모를 어떤 것으로 지금까지 고통받아왔던 것을 벗어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며, 더 이상 잘못된 정보에 빠져 헤매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중 한 예화가 ‘맛지마니까야’에 나오는 왓차곳따(Vacchagotta)의 경이다. 왓차곳따는 떠돌이 수행자인데, 보통 유행자라고 소개된다. 왓차곳따와 관련된 경전은 모두 3가지인데, 그중에서 첫 번째 경전에 수행과 관련된 재미난 질문이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왓차곳따]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수행자 고따마는 모든 것을 아는 자, 모든 것을 보는 자이며, 완전한 앎과 봄을 지닌 자이다. 그래서 걸을 때나 서있을 때나 잠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나에게는 앎과 봄이 항상 끊임없이 현존한다고 선언했다’라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말하는 자는 세존에 관하여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세존에 관하여 사실이 아닌 허위로 비난하는 것입니까?

[붓다] 왓차곳따여, 그와 같이 말하는 자는 세존에 관하여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존에 관하여 사실이 아닌 허위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수행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이 대화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사람들이 부처님은 걸을 때나 잠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한결 같이 앎과 봄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왓차곳따는 부처님께 직접 여쭙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러하시겠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부처님은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그것은 비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때로는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오매일여(寤寐一如)를 말하기도 한다. 이 정도 경지는 되어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만약 부처님께 이 말씀을 올리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이미 경문에 그 답은 나와 있다. 수행은 어떤 신비로운, 일상을 벗어난 아주 특별하며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견해[邪見]이다. 이는 부처님 말씀처럼 오히려 ‘부처님을 비난하는 말’이 된다. 부처님의 팔정도 가르침을 아는 사람이라면, 계정혜의 삼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깨어있을 때는 잘 보고, 잘 말하고, 잘 들으면 된다. 잠잘 때는 곤히 잘 자면 된다.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가 같다는 것은 망상이다. 망상을 쫓아서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반대로 가는 결과를 초래한다. ‘상윳따니까야’ 1권에는 잠과 관련된 몇 가지 가르침이 나온다. 그 중에 천신이 “무엇을 끊어서 편안히 잠을 잡니까?”라고 여쭙자, “미움을 끊어 편안히 잠잡니다”라고 답하시는 내용이 나오고, 낮잠을 주무시는 부처님께 악마 마라가 나타나 “왜 잠을 자는가? 홀로 있다고 생각해 잠을 자는가? 한낮인데 어찌 잠을 자는가?”라고 하자, “모든 삶의 집착을 부수고 깨달은 이가 잠을 자네. 악마여, 그것이 그대에게 무슨 상관인가?”라는 말씀도 나온다.

부처님은 다만 연기법을 명확히 설하시고, 번뇌를 부수어 스스로 깨닫는 것을 말씀하실 뿐이다. 그래서 걸을 때는 분명히 걷고, 먹을 때는 분명히 먹고, 잠잘 때는 곤히 자게 된다. 왓차고따는 이러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수행에 대한 환상을 벗어버렸다.

이필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교수 nikaya@naver.com

[1572호 / 2021년 2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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