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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어르신의 전화 한 통

기자명 최명숙

분별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기

인연엔 계산된 분별심 존재해
사회에 상충된 요소들이 많아
자기 주장만 관철시키기 보다
‘역지사지’하는 자세 가져야

보리수 아래 장애불자들과 중앙승가대학교 학인스님들이 함께한 낙산사 순례.

사는 것은 인연의 맺음이다. 좋은 인연이란 나를 앞세우지 않고, 편견이나 집착이 개입되지 않은 인연이라 종종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인연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계산된 나의 분별심이 존재한다. 나를 대하는 상대도 그럴 것이다. 분별심 없이 상대를 인정해 주면 좋은 인연이 되겠으나 곱고 미움, 능력의 유무, 생각이나 지향점이 다른 데서 오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갈등 관계가 되는 경우도 많다.

코로나19 상황이 어찌 변할 지 모르지만 올해는 장애 불자들과 사찰 순례를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순례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대흥사, 마곡사, 낙산사와 신흥사 순례 등 지난 사찰 순례 사진을 꺼내 보았다.

사진을 보며 장애인들과 동행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중요한 일임을 떠올리던 순간 전화가 울렸다. 90년대 초 전 직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인연을 맺은 팔순의 어르신이었다.

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내 중증장애인과 자원봉사자 각 100여 명과 함께했던 여름캠프가 그립다고 했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전무하다 시피했던 시절 장애인을 업고 한라산을 오른 일, 동해안에서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물놀이 할 수 있도록 인간띠를 만든 일,편의시설이 없는 숙소에 나무 경사로를 제작·설치한 일 등 회상은 끝이 없었다.

재작년 여름 낙산사에서 잠시 뵈었을 때만 해도 정정하셨는데 뇌졸중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니 봉사활동을 하던 시절의 장애인들이 더 그립다고 하셨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산을 좋아하는 자신을 배려해 아들 내외가 케이블카가 있거나 무장애길이 조성된 산과 사찰을 자주 데려가 즐겁게 여행할 수 있다고 했다.

어르신에게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손자가 있는데 환경운동을 한다고 한다. 복지와 환경 둘 사이에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고민이 많은데 특히 우선순위를 정하는 판단이 부족하다고 걱정하며 손자의 일화를 들려줬다.

“손자의 지인들이 집에 놀러 왔어요. 마침 환경보존에 대한 TV프로가 나와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제가 그쪽으로 흘러갔지요. 환경보존에 관한 여러 사례가 나오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자연환경 조성, 특히 최근 케이블카 설치문제로 이슈된 산 이야기도 대화의 주제가 됐지요. 손자가 ‘장애인들이 소외되지 않으면서 자연을 보존하는 방법을 외국의 사례에서 찾아보면 좋겠다’며 ‘장애인인 내 가족이 갈 곳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관심이 가겠지요’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장애인에 대한 상식이 전혀 없는 한 사람이 ‘지금 케이블카가 설치되려는 곳은 장애인을 팔아 이익을 보려는 업자가 대부분이니까 장애인은 기존에 케이블카가 설치된 곳으로 가면 된다’며 자신도 못 가본 곳이 많음을 강조했어요.”

어르신은 변화하는 시대에 참 개념없는 사람이더라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 사회는 상충되는 것이 많아요. 내가 하는 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배치된 것에 관한 공부를 하고 살피는 것도 중요해요. 그러고 난 후에는 전문가들이 타당한 조사와 평가해 내린 결정에 따라야 해요.”

어르신과 손자의 작은 일화지만 중요한 말씀이다.

사찰의 장애인편의시설과 문화재보호법, 장애인 기본권과 환경보존문제, 문학 언어와 장애인 인권 등 서로 상충되는 요소들이 많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장애인 편의시설은 장애인만 사용한다 착각하기에 모든 이들이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듯하다.

어떤 한 상황에서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점철된 의견을 주장하기 전에 상충된 것에 관해 폭넓은 공부를 하고 입장을 바꿔서 살펴보는 게 먼저이다. 입장이 다를 뿐이지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은 아니기에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이 순간에도 이어지는 인연 속에서 얼마만큼 분별심 없는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살펴봐야 한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73호 / 2021년 2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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