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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수행 한선희(청지, 49) - 하

기자명 법보

공양간 바라지하며 법문 경청
봉화사 밴드, 자아성찰 계기돼
언젠가 ‘부처님학교’ 졸업하길

청지, 49

이렇게 폐쇄적인 나를 열어준 건 봉화사 밥심인 것 같다. 새벽이고 밤이고 봉화사에 들어가면 첫마디가 “오느라 고생했어요. 밥 먹게 어서와요”다. 사회에선 느낄 수 없는 친절과 환한 미소. “먼 길 오는 사람도 있는데 기다리는 건 암시랑토 안 해”라고 말하는 사무장님은 한결같이 사랑 가득한 마음을 내어주시는 따뜻한 분이다. 나에게 봉화사 공양은 엄마밥이다.

마음을 내며 다니던 즈음 하동 봉화사엔 부처님 봉안식과 주지스님의 1000일기도 회향식, 부처님오신날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있었다. 부처님 봉안식은 내생애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를 귀한 행사라 생각했기에 뭐라도 하고 싶었다. 밥값이라도 하고 싶었다. 은사스님께서 자주 “수행과 일은 같은 것이다. 공양간에서 걸레질해주는 사람이 제일 고맙다”라고 하셨다.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일을 찾아 하라는 말씀으로 여겨 공양간 바라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화사 앞마당 풀이라도 메갰다는 마음을 냈다. 자주 내려가지 못하지만 스님과 기도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고 법문을 경청할 수 있게 되었다.

주지스님께선 “얼굴에 미소 마음엔 평화”를 종종 말씀하신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을 땐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라 조용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문득 바라본 내 얼굴은 화난 얼굴, 화난 말투였다. 남들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에 내가 참고 사는 이해심 많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주위 사람들이 ‘나로 인해 힘들었을 수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화사 밴드 소식은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었다.

절에 다니기는 했으나 법회를 다녀본 적도 없었고, 불교용어도, 경전공부도 해본 적이 없었다. 어린아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지만,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만 계신 줄 알았다. 법당에 모셔진 부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절에 다녔고 ‘반야심경’조차 외우지 못했다. 부처님 법을 알지 못하는 나에게 봉화사 밴드 속 이야기들은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부처님 법을 가르치시는 주지스님의 방법은 신선했다. 밴드에 스님께서 글을 올려주시면 누구나 자유롭게 궁금증을 질문하고 수행담을 통해 생각을 주고받았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도통 알수 없었다. 나는 안 그런 척, 아닌 척하며 살아왔기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내 얘기를 솔직히 한다는 건 발가벗겨진 느낌이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힘이 되어준 건 도반이었다. 함께 바라지하며, 밴드에서 공부해가며 서로 응원하고 공감하다 보니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스님께선 작은 용어 하나까지 뜻풀이를 해주셨다. 법문을 보고 들을 때마다 자꾸 나를 바라보게 된다. 항상 상대를 향해 옳고 그름을 말하던 내가 ‘나는 어떤 사람일까?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내가 나일까’라고 생각했다. 

1000일기도 회향식 때 스님이 “불교는 부처님 만드는 학교입니다”라는 법문을 하신 적이 있다. 봉화사 신도가 된 나는 부처님 되는 것을 배우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되기로 했다. 크나큰 부처님 법을 쉽게 가르치시는 스님은 좋은 선생님이었다. 스님은 항상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들까지 모두 따라하고 배울 수 있는 방법,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신다.

그렇게 나온 것이 주지스님의 ‘행복자비송’이다. 어려운 한문 경전 속 수많은 말씀을 쉽고 간결하게 응축해 음율에 맞춰주셨다. 나처럼 완전 초보자들에겐 안성맞춤인 것 같다. 아직 인정도, 감사도 잘 안되고 자비심과 보리심도 눈꼽이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부지런히 절 문턱을 넘다보니 마음의 조급함이 줄었다. 나의 평안함이 내 가족의 평안함으로 변했다. 아직은 부처님학교 초등학생 1학년이라 힘들고 짜증나고 괴로울 때도 있다. 그땐 행복자비송의 ‘힘들수록 미소지어, 마음이 평화롭기를’을 떠올리고 잠시 미소명상을 한다. 우리 모두 얼굴엔 미소부자, 마음엔 베품과 나눔의 부자가 되어보면 어떨까. 내가 행복을 소망하듯 모두 행복하고 싶은 마음은 같을 테니 말이다.

 

[1574호 / 2021년 2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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