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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깎았습니다”

기자명 성진 스님

출가수행자를 나타내는 상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꼽는다면 바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삭발(削髮)’일 것이다. 삭발은 그 자체로 출가를 뜻한다. 또 삭발은 번뇌를 끊임없이 끊어내는 일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부르기도 한다. 삭발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내는 일이기도 하고 또 끈질기게 달라붙는 훈습과의 절연을 뜻하기도 한다.

삭발에 담긴 이런 지중한 의미때문인지 삭발에 관한 이야기는 율장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사분율’의 ‘잡건도(雜犍度)’ 가운데 그때에 어떤 비구가 머리가 기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깎으라, 자기가 깎든지 남을 시켜 깎게 하라”고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머리가 얼마나 길어야 할지 모르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기껏 길러야 두 손가락 두께이다. 만일 두 달에 한 번 깎으면 긴 것이다”라고 하시며 “삭발할 때는 화상(和尙) 및 아사리(阿闍梨)를 보고도 일어나 절하지 않는다”라고 나온다. 이처럼 그 시기와 방법, 머리카락의 길이까지 구체적으로 내려오고 있을 정도이다.

돌이켜보면 출가 이후 대중이 함께 삭발 의식을 할 때 참으로 어색한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스님들이 상대의 무명초인 머리카락을 예의와 정성을 다해 깎았음에도 불구하고 합장하며 “잘못 깎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 표현은 자신보다 법랍이 높은 어른 스님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법랍이 아래인 스님에게도 하는 말이다. 정말 아프지 않게 상처하나 내지 않고 부드럽게 삭발을 해주었는데 왜 “잘못 깎았습니다”라고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스님의 삭발을 해야 할 때는 모기만 한 소리로 웅얼거리듯이 말을 흐리게 되는 옹졸한 자신을 봐야 하는 부끄러운 순간이기도 했다. 반면에 실수로 상대 머리에 작은 상처를 내어 정말 잘못 깎았을 때 이 표현은 삭발 후 늘 의례적으로 하는 것이어서 상대를 안심하게도 하고 설사 잘못 깎은 것을 안다 해도 이미 참회를 했으니 더 시비하지 않게 하는 묘약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율장과 ‘석문의범’에 이를 나타내는 표현이 있는지 찾아보려 했지만 확인하지는 못했다. 단지 불교의례를 설명하는 책에서 2인1조가 되어 서로에게 합장 반배하며 “성불합시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삭발을 한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왜 이러한 표현이 한국 승가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으로 내려오게 된 것일까? 아마 동양적인 겸양과 자신의 행위를 늘 낮추어서 표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 풍습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또한 늘 함께 생활하는 승가공동체에서는 서로서로 도와주고 도움받는 ‘탁마(琢磨)’의 과정이 계속된다. 그렇기에 도움을 주는 마음에도 “잘못 깎았습니다”라고 하는 표현은 마음에 “내가 너에게 도움을 주었다”라는 기대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진언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금강경’의 ‘일상무상분(一相無相分)’에 “수보리는 적정행을 즐기는 사람이다. 수보리는 실로 적정행을 한 것이 없으므로 수보리는 적정행을 즐긴다라고 말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수보리 존자와 같은 마음처럼 자신의 선한 행동에 ‘나는 이렇게 착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내세우는 마음이 없고, 이러한 마음이 없기에 타인의 칭찬이나 인정을 기대하는 마음마저 생기지 않으니 서운함에 다툼할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의 삶에서도 서로를 위해 도와주다 오히려 마음 상하는 일이 있다. 이럴 때 스님들이 정성스럽게 삭발을 도와주고 난 후 머리 숙여 “잘못 깎았습니다”라고 하듯이 마음을 낸다면 서로에게 서운해 할 일이 조금은 더 줄어들지 않을까 한다.

성진 스님 조계종 군종특별교구 사무총장 sjkr07@gmail.com

 

[1576호 / 2021년 3월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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