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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알렉스 쿠소의 ‘내 안에 내가 있다’

기자명 박사
  • 박사의 서재
  • 입력 2021.03.30 10:33
  • 수정 2021.04.19 10:52
  • 호수 1579
  • 댓글 0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언제부터 ‘나’일까

‘내 안의 나’들 속에서 종횡무진
이야기들은 철학서이며 심리서
나 찾는 과정 보여준 시적 문장
삶 주체로 어떻게 살지 가리켜

‘내 안에 내가 있다’

나는 언제부터 ‘나’일까? 붉고 작은 몸을 가지고 태를 빠져나왔을 때부터 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알 수 있다. ‘나’라는 개념은 몸이 태어나고도 한참 후에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항상 나인 건 아니었다. 내가 되기 전까지, 난 내 안에 없었다. 다른 곳에 있었다. 다른 곳, 나를 제외한 모든 곳.” 

그 뒤에 나는 나를 발견하게 되지만,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마도 처음에는 내 안과 밖의 구별을 알게 되리라. 내가 머무는 곳,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곳, 나의 영토인 곳, 잠재적인 ‘나 자신’이 잠들어있는 곳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에 대해 저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그 다음에 나는 내가 되었고, 한 나라를 발견했다. 그 나라 수도는 나의 심장, 그 나라 나무들은 나의 꿈들이었다. 그 나라는 바로 내 안이었다.” 

이 책은 이렇듯 시적인 문장으로 내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기묘하고 아름다운 그림은 또 다른 관점에서 ‘나’를 보여준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고정불변 하는 실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귀 기울여보라. 지금 현재에도 내 안에서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는 싸움을 노래하고 그려낸 페이지들을 넘겨보라. 

세상에서 가장 나와 많이 싸우는 존재는 누구일까? 돌이켜보면, ‘나’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다. 우리 삶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을 뚫고 힘겹게 한발 한발 걸어 나가는 전장에 비유할만하다. 내 안에는 내 나라가 있지만, 그곳의 왕은 내가 아니다. 

이 책의 주인공 또한 내 안에서 수많은 적을 발견한다. “내 안에는 나를 없애려하는 누군가가 있다. 괴물. 날 닮았는데 나보다 더 크고 뚱뚱하고 입술이 파란색이었다.” 이 괴물과 대결하지 않고서는 나를 온전히 이룰 수 없다. 나라는 나라의 왕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대결을 한다. 피의 강 위에 돌을 던져 더 많이 튀어 오르게 하는 쪽이 지는 쪽을 잡아먹는 대결. 

그러나 대결에서 이겨도 괴물을 먹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결은 매일 매일 일어난다. 그들의 대결은 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 괴물의 입은 아이를 먹는 입일 뿐, 말을 하는 입이 아니었고 내 안에는 항상 말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괴물의 안에서 비밀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날 ‘나’는 괴물에게 일부러 졌고, 그에게 먹힌다. 

괴물에게 내가 먹히고 나면 내 나라는 어떻게 될까. 나는 괴물의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내 안의 나와 나의 그림자인 괴물과 내 나라인 나와 나의 비밀과…실핏줄처럼 얽힌 ‘나’들 속에서 종횡무진 하는 이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처럼 보이기도 하고, 중층으로 의미가 겹친 철학서로 읽히기도 하며, 현재 나의 삶을 돌아보는 심리서로 보이기도 한다. 이쯤에서 한번 멈추고 나라면 내 안의 괴물에게 먹혔을 때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다음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나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본다면 나는 영영 내 안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 것이다. 나와 남의 경계에서는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수거나 부서지는 것 이외의 다른 선택항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부처님이 말씀해주셨다.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삶의 주체로서의 ‘나’는 있다. 내 삶을 통째로 살아가는 내가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삶의 주체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명징하게 가리킨다. “내 안에서, 결정하는 건 나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롭다. 내가 결정하는 대로 자유자재로 방향을 트는 세계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 책에서는 핏줄과 심장과 뼈와 괴물과 고함과 불꽃과 구름을 말하지만 우리는 훨씬 수월하게 그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쉼으로써. 내가 결정할 때마다 바뀌는 세계를 보면서.

박사 북칼럼니스트 catwings@gmail.com

[1579호 / 2021년 3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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