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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환 스님과 떠나는 경전산책 17 - 장로니게(長老尼偈)

기자명 계환 스님
비구니 수행담 실은 시집 같은 경전
73명의 비구니 등장, 522편의 게송 담아

불자님들이 스님들에게 물으면 안 되는 세 가지 질문이 있는데 개별적으로는 가장 알고 싶은 질문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세 가지란, 첫째 왜 출가했느냐? 둘째 나이가 몇 살이냐? 셋째 어느 절에 거주하고 있는가? 라는 것들이 그것인데, 이 가운데서도 첫번째 물음이 제일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라고들 합니다.

어떤 노보살님은 너무나 측은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통에 오히려 이쪽이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잣대로 남들의 생활까지 재려고 드는지, 왜 자신의 시각을 표준으로 삼아 남을 보려고 하는지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장로니게》는 바로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담과 함께 출가동기까지를 솔직하고 아름답게 게송으로 읊어놓은 일종의 시집(詩集)과도 같은 경전입니다.

《장로니게》는 팔리어 원전인 테리가타(therigatha)만이 완본(完本)으로 남아있을 뿐 한역본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립년대를 놓고 의견들이 분분한 편이지요. 그러나 부처님 재세시(在世時)의 '장로니' 즉 학덕과 수행을 겸비한 비구니 스님들이 부처님에 대한 찬탄과 깨달음을 향한 수행과정 그리고 출가 이전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늦어도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성립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장로니게》와 자매편이라고 할 수 있는 《장로게》도 있는데 이 경전은 비구 스님들의 외적인 체험담을 주제로 하는 데 반하여, 《장로니게》는 비구니 스님들의 내적인 체험담을 주제로 하고 인생에 대한 섬세한 묘사들이 돋보이는 경전입니다. 《장로게》는 1279편의 게송임에 비해, 《장로니게》는 522편의 게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게송의 수에 따라 한 게송만을 남긴 장로니들의 게송을 모아 1집이라 하고, 게송 두개는 2집, 세개는 3집, 이런 형식으로 70여 개의 게송을 한 묶음으로 하여 대집(大集)으로 편찬한 것입니다.

《장로니게》에는 모두 73명의 비구니 스님들의 이름이 보이는 있는데 경전에 의하면, 왕족 출신이 23명, 바라문 출신이 18명, 부호 출신이 13명, 여타의 계급 출신이 4명, 화류계 출신이 4명, 그리고 신분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 11명 등의 분포로 되어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인도의 근대화를 막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저해요소로는 계급제도를 들고 있는데 2천년 전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던 당시를 감안해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평등사상 위에서 얼마만큼 인간의 존엄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것인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사회도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제도적 불평등을 안고 있지만, 부처님께서는 2천5백년 전에 이미 인도사회에서 여성들의 사회적 입지와 아울러 그들의 에너지를 이처럼 진취적으로 이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장로니게》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여러 부류의 여성들이 출가를 하였는데 한결같이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외아들을 잃고 미쳐서 돌아다니다가 출가한 이야기, 어떤 과부는 자살을 하려다가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깨달음의 세계를 찾아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게 됩니다. 마치 같은 소금을 뿌려도 살아나는 해초가 있는가 하면 시들어버리는 배추도 있고, 똑같은 바람에도 침몰하는 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쾌속으로 항진해 나가는 배도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에서는 한결같이 "부처님의 말씀은 진실로 틀림이 없다"라는 말로 끝마치고 있는 걸로 보면 부처님이 걸어오신 길을 자신들도 걸어가고 있다는 높은 자긍심과 아울러 앞으로도 변함없이 걸어가겠다는 비장한 결의 같은 것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장로니게》에는 다른 경전에서 보이는 신비한 영험담이나 심오한 이론도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비구니 스님들이 담담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지나온 삶과 현재의 수행, 그리고 깨달음을 향한 의지를 잔잔하게 노래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오히려 그 어떠한 설법보다도, 그 어떠한 교리보다도 종교적 감동을 느낄 수 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 이 경전의 특색입니다.


계환 스님/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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