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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자광원 김정자 원장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아픈 중생 부처님으로 모시고 받들어

사랑과 봉사는 추상명사가 아닌 동사이어야 한다. 관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러나 무수한 논리와 이론만 안개처럼 자욱할 뿐 정작 손길을 내밀어 실천하는 일에는 인색한 것이 우리 시대의 현주소이다. 특히 그것이자기 희생을 필요로 하는 영역일 때에는 무관심이란 장벽을 둘러쳐 버리기도 한다.

며칠 째 예년 기온을 밑돈다는 일기예보가 들린다. 없는 사람 살기는 아무래도 여름이 나을 것이다. 아직 겨울의 문턱이 아닌데 외투를 껴입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겨울이 깊어지면 우리는 저마다의 밀실에 꼭꼭 숨어서 ‘춥다, 아 춥다'라고만 할 것이다.

더러는 온기 그득한 방안에 모여 넉넉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텔레비젼이 쏟아내는 망각의 폭죽에 묻혀 있을 것이다. 나무는 겨울이 되어도옷을 갈아입지 않지만 이듬해 봄에는 물이 오르고 싱싱한 잎사귀가 무성하게 달린다. 나무보다 못한 것이 인간일까.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한 여인의 어깨에만 의지한 80여 분의 노인들이 거기 있었다.

머리 위로 전철이 요란한 소음을 흩뿌리는 굴다리를 지나니 부처님 마을-자광원이 거기 있었다. 양지쪽에 노인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해바라기를 하며 다가오는 겨울을 깊게 패인 살갗으로 맞고 있었다. 아직 번듯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갈곳없는 노인들이 그래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드러누울 수있는 따뜻한 방과 하루 세 번 지성으로 부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 곳- 그곳이 ‘부처님마을 자광원'이다. 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닿지않는 외진 마을, 비록 초라하나 부처님의 자비가 뜨겁게 넘치는 그마을의 촌장이 보현행 김정자 원장이다.

1984년에 이 일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13년이 지났다. 좌절과 절망, 기쁨과 슬픔의 질곡을 모두 겪은 노장답게 김원장은 의연했다. 개인의 사사로운삶도 풀어헤치면 사연이 구구할진데 무의탁 노인을 돕겠다고 나선 그의 인생 역정 또한 절절하리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가. 나에게 주어진 삶에서 실천가능한 보살행은 무엇인가. 그 화두를 안고 고민하다가 그들 부부는 무의탁노인과 장애인 돕기라는 힘든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모든 아픈 중생을부처님으로 모시고 받들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열병처럼 그에게 다가와실천에 옮긴 것이 1984년 12월. 서울 동숭동 영산 법화사 소속 ‘연화회'에서 30여명의 불자들과 8년 동안 고아원, 양로원 등을 돌며 봉사 경험을 쌓은 것이 계기가 됐다. 성남 신흥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거대한 중장비로 판자집을 허물자 저마다 개나리 봇짐을 이고 쫓겨갔다. 그러나 쫓겨갈 곳도 없는 최후의 패잔병-노인 네 분과 성남 모란시장에서 구걸하는 김임순 할머니를 그의 집으로 모셔온 것이 자광원의 시발이다.

“집에 모셔다가 나름대로 극진히 모셨지만 이분들이 너무 민망해하고 불편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드리자고 우리 부부가 결정했습니다. 성남시 은행동에 있는 상가 건물의 3층 옥상에 설치된 가건물을임대해서 이분들이 임종할 때까지 편하게 모시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가 1984년 12월이었습니다. 보증금 800만원, 월세 5만으로 출발한 것입니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숱한 곡절을 헤쳐나갔다. 알 수 없는 힘이란 보살행을 실천하라는 부처님의 엄중한 명령이었다고 김원장은 술회했다. 87년이되자 봉양인원이 30여명으로 증가하여 가건물에서는 수용이 불가능했다. 건물주가 ‘구질구질’한 노인들이 들끓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집을 비우라고 재촉한 것도 당연한 세상 인심이다. 부랴부랴 부지를 물색하여 현 위치에 자리를 잡게되었다. 건물이 완성되기도 전에 강제로 쫓겨나 가건물에 거주하던 노인 45명이 1주일간 야외에서 침식을 해야했던 세상 인심이 지금도 야속하다고.

보살행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오늘까지 자광원을 지켜온 김원장 내외였다. 헌옷가지를 수집하러 다니는 부끄러움도, 집안 일은 항상 순서의 나중에 놓인다는 아들 4형제의 불만도 그 열정 앞에 무력했고 또한 거뜬하게 극복되었다. 평생 박봉의 공무원으로 봉직하다 정년 퇴직한 남편 조귀보 처사도 어느덧 열렬한 동반자가 되어 사회복지법인 자광원의 대표로 봉사하고 있다. 고3 자식을 둔 어머니로서는 역할을 한 기억도 없는데 4형제 모두 건강하게 자랐다. 그리고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명문대학에 쑥쑥 잘도 들어갔다. 베푼 것보다 항상 더 넉넉하게 주시는 부처님의 은덕이 아니겠느냐고 김원장이 웃었다.

서류에만 충실한 행정관료들과의 끊없는 철거 싸움, 양로원도 혐오시설인지 이웃 주민들과의 갈등, 과로로 쓰러져 간을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아야했던 시련, 내일 어떻게 될까를 걱정할 수 없는 오늘 하루와의 싸움 등이 어느덧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고한다.

“그러나 걱정이 없습니다. 부처님 법을 모르는 자에게 법을 알리는 것도방생이요, 목마른 이에게 물 한 모금 주는 것도 방생이요, 남에게 길을 가르쳐 주느 것도, 남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꿔주는 것도 방생이 아니겠습니까. 아직도 인간방생의 손길이 닿아야할 곳이 너무 많은데 물고기 방생에나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인간에 대한 사랑보다 번듯한 행사나 이름내기에 더욱 힘을 쏟는 세태는반성해야할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특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는 승속을 불문하고 자기점점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에 대한 불교인의 노력은 부끄럽게도 최하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한다. 좋은 경쟁은 아름다운 것이다. 나라의 손길이 미처 못미치는 곳에 종교의 사명이 있을 것이다. 실천하는 자비행이야말로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요,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일 것이다.

현재 자광원은 건평 60평의 2층 건물로 법당을 중심으로 11칸의 방과 식당 및 휴게실, 사무실 겸 창고로 쓰이는 비닐하우스 2개동이 있다. 부군 조귀보 거사의 공직 35년 퇴직금과 사재를 정리하여 89년 9월에 성남시 복정동에 45명의 가족과 불자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완공한 것이다. 현재 자광원가족은 80여명. 이들을 위해 4명의 상근 자원봉사자와 정기적으로 200여명의 봉사자들이 가족들에게 자비행을 실천하고 있다. 성한 손이 할 수 있는것이면 무엇이든 자광원에는 필요하다. 빨래, 청소, 목욕 시켜주기, 이발, 집수리는 물론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나들이 갈때도 도움이 필요하다. 노인들에게 정성이 담긴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도 보시이다.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외로움이다. 아니 인간이면 누구나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고독인지 모른다. 그래서 자광원을 아예 땅값이 싼 먼 곳으로 이전하는 문제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않다고 한다. 여긴 그래도 마을도 있고 차소리, 전철소리도 들리고 봉사하러 오시는 분들이 다녀가기도 편하다는 설명이다. 외딴산속에 지은 양로원은 자칫 실패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표시했다. 외로운노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미끈한 편의시설보다는 인간의 땀냄새, 사람들 속에 살고 있다는 자기존재에 대한 위안이라는 것이다. 경험에서 우러난 철학이다.

김원장이 그동안 돌본 가족 수는 1천여명. 1백여명이 자광원에서 죽음의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저세상으로 갔고, 5백여명은 고부간의 갈등과 치매 등으로 인하여 짧게는 1주일 길게는 1년씩 자광원을 거쳐갔으며, 4백여명은 1년에서 12년째 자광원 가족들과 만나고 다시 헤어지곤 한다. 자광원 가족들이 임종하면 김원장은 직접 염을 하고 장례를 치루고 사십구재와 천도재를 해준다. 어느덧 김원장은 임종, 염습, 입관법 등과 불교식 제례에 대해 초청 강의를 하는 강사도 되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노인, 고약한 버릇 때문에 다른 양로원에서 쫓겨온 노인도 부처님의 자비행으로 감싸는 김원장 앞에서 천진한 어린이가 된다.

“겨울은 노인들에게 힘든 계절이지요. 자광원 가족들 모두 올겨울도 잘넘기고 새봄엔 봄풀처럼 파릇파릇 생기를 회복하길 부처님께 빕니다. 아울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자광원에 고마운 분들의 따뜻한 손길도 기다립니다.”

법당에 보관되어 있는 두툼한 세 권의 노트를 보여주며 김원장은 겸손한소망을 곁들였다. 평양에서 월남하여 삯바느질로 어렵게 살다가 백내장으로앞을 못보게되고 그러다 가 교통사고까지 당한 김복동 할머니(88세)가 지난3년간 눈물과 환희심으로 세 번이나 쓴 법화경 서사본이었다. 자광원에 와서 김원장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보게된 공덕의 결실이었다. 유난히 두꺼운 돋보기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김 할머니가 말했다.

“이건 내가 쓴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쓴 것입니다. 원장님이 쓴 것입니다.” 또박또박한 글씨체, 한자라도 틀렸으면 고쳐쓴 자국, 평생 닦은 바느질 솜씨보다 더욱 공들인 정성이 두꺼운 노트의 쪽쪽마다 빽빽했다.

취재수첩-내가 가진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손
‘나는 나이가 들어도 늙지 않는다'라는 무지에서 ‘나도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깨달음에 이르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러나 그것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어둡고 아픈 곳을 볼 줄 아는 눈, 가슴을 열어 내가가진 사랑을 나누어줄 줄 아는 손의 문제이다. 거두어 감추는 은밀한 쾌락보다 베푸는 참기쁨을 누려야할 것이다.

올해로 쉰여섯이 되었다는 김원장의 얼굴은 갓 시집 온 새악시처럼 곱고맑았다. 자광원 마당에서 한 할머니와 장난을 치는 모습은 흡사 천진한 소년같았다. 사회복지 활동에 대한 불교계의 노력이 더욱 확산되어 이 땅에불국정토가 실현되길 기원한다. 자광원은 환희심으로 동참할 참이웃에게 문이 항상 열려있다.

봉사가족, 후원가족, 후원회비, 관련 자료 등에 관한 문의는 전화:0342)759-5320, 4209 FAX:0342)759-4209로 연락하면 친절히 안내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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