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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천과 거조암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예묵(禮默)의 공간 영산전

평범한 건축양식은 ‘無’의 미학


팔공산 거조암의 영산전을 생각하게 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무문어록에서 남송 스님은 생사의 경지 즉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지에서 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법은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 無無無無無”라고 노래하였다. 국보 14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전은 게송과 같은 절대 무(無)의 건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곳에선 기둥의 배흘림 수법이나 맛배지붕의 장중함 같은 형태적 미나 노출된 구조의 솔직 담대한 공간미나, 비례의 미 등 일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에 대한 얘기들은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영산전은 일체의 유위적(有爲的)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멀리 떠나있는 빛과 그림자만 존재하는 무공(無空)의 침묵(本寂)을 추구한 건축인 까닭이다.

그 무공의 적묵은 중국선이 이룩한 평상심에서 나아가 평상심이 다시 지극한 신성(神性)으로 회향되는 건축적 철학과 불교적 공간을 이룩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창고 등의 용도로 지어졌으리라 추정되는 영산전은 리노베이션을 통해 재창조된 것이기에 본래의 건물 배치와 용도와는 다른 창조적 금당의 공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한국의 고승 중 원효와 지눌 스님을 추앙하고 있는 바 그 지눌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쓰시고 수행과 실천을 하셨던 도량이기도 한 곳이다.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조사당, 수덕사 대웅전과 함께 몇 안 되는 고려시대 맛배지붕 건축 중 하나인 영산전은 남아있는 동시대 다른 건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건축적 공간을 성취하고 있으나 그 표현방법은 너무나 평범하게 보여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원래 삼면이 흙의 둔덕에 묻혀있어 화려하고 웅장한 측면과 배면을 일부러 숨겨서 보여주지 않았다. 오로지 작은 마당을 통한 정면의 일부만을 느끼게 되어 있는데 그 정면이라는 것도 창고와 같이 허술하고 밋밋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특히 건물 앞의 작은 삼층석탑과 함께 양옆으로 2칸짜리 작고 초라한 건물과 또 다른 요사체가 있었는데 그 건물들은 상대적 크기의 차이로 일견 상관없는 별개의 건물로서 하수의 건축가가 설계한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는 건물이라고 하면 훌륭한 외관과 또한 장엄하고 멋들어진 공간을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산전은 아무 것도 이루려고 하지 않았다. 건물을 둔덕 위에 숨기고 큰 금당의 비례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왜소한 건축을 배치하고 작은 마당과 작은 탑을 세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절에 진입하게 되면 처음 대하는 것은 작은 석탑과 함께 영산전의 작고 평범한 출입문 뿐 주변의 작은 건물과 함께 큰 법당 역시 오히려 줄어들어 모든 것이 작고 왜소하여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김개천(건축가, 이도건축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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