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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위진현학과 불교의 관계(중)반야학의 융성

기자명 법보신문

『방광반야경』은 반야학의 기본서

불교, 오호십육국-동진 사상계 전면

일찍이 동한 시대 때 지참은 『도행반야경』을 번역하였고, 삼국 시대 오 나라 때 지겸은 『도행반야경』의 동본이역으로 『대명도무극경』을 번역한 적이 있다. 따라서 양진 시대 이전에 당시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반야경전류의 한역을 통해서 이미 ‘현학’의 전문용어와 ‘공(空)’의 번역어 ‘본무(本無)’를 가로지르는 기묘한 유사성에 깊은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서진 시대 중엽 무렵 『광찬반야경』(축법호 역), 『방광반야경』(축숙란·무차라 공역)이 차례대로 번역된다. 『광찬반야경』은 감숙성 양주(?州) 지방에서나 유포되었기 때문에 중원 지방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위진 현학의 우산 아래 놓여있던 중원 지방의 지식인 사회에 퍼진 반야경은, 바로 축숙란이 낙양에서 번역한 『방광반야경』이었고, 이후 거의 백년 넘게 『방광반야경』은 양진시대 반야학의 기본 텍스트가 된다. 도안은 양양에 있을 때부터 장안에 있을 때까지 거의 20년간 매년 두 차례나 『방광반야경』을 강습했다 하니, 이 시기의 불교계에서 『방광반야경』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위진 현학을 등에 업고 사상계에 발판을 마련한 불교는 이윽고 오호십육국-동진 시대에 이르러 사상계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지도림(支道林/지둔 支遁 314-366), 도안(314-385), 혜원(334-416), 구마라집(344-413, 在中 401-413), 축도생(竺道生 355-434), 승조(僧肇 384-414)와 같은 기라성같은 불교 사상가가 이 시기의 사상계를 이끌어간다. 동진 시대에 『반야경』 연구는, 소품으로는 『도행반야경』, 대품으로는 『방광반야경』에 대한 천착이 성행하였다. 따라서 이 두 대,소품의 비교연구도 이루어졌는데 지도림의 〈대소품대비요초서〉(『출삼장기집』에 수록)는 이러한 연구성과의 일단을 보여준다.
오호십육국-동진 시대의 반야학은 편의상 구마라집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도안과 동시대인이었던 축법아(竺法雅)나 강법랑 (康法郞)같은 사람들은 소위 ‘격의(格義)’, 곧 위진 현학의 용어에 빗대어서 반야 공사상을 해석하는 학풍을 구사하여 불교와 현학의 합류 현상을 촉진시켰다. 위진 현학이 지배적인 사상 조류였던 당시의 실정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격의에 대해서 도안은 “이전 시대의 격의는 대부분 이치에 어긋난다”(『양고승전』 『석도안전』)고 강한 불만을 보인다.
격의에 관해서는 다음 회에서 다루기로 하겠지만, 아무튼 이러한 학풍을 통해서 위진현학에서 전개된 여러 쟁론이 반야학 안으로 수용되어 ‘육가칠종’(본무-본무이, 즉색, 식함, 환화, 심무, 연회종)이라 통칭하는, 중국적 특색을 지닌 반야학 학설의 백화제방 시대가 도래한다. 이 시기에 반야학의 ‘이제설’은 위진현학의 사상 범주에 빗대어 해석되었는데, ‘진제’ 곧 ‘공성(空性)’은 본체인 ‘무(無)’로, ‘속제’ 곧 ‘연생법(緣生法)’은 현상 만물인 ‘유(有)’로 풀이되었다. 후대에 길장(吉藏)은 육가칠종 가운데 도안의 본무종(本無宗)만을 반야학의 정통설로 평가한다(『중관론소』).
‘공’과 ‘무’의 명석판명한 구분법에 의거해서 육가칠종의 백가쟁명 시대를 수습한 인물은 구마라집 및 그의 제자 승조이다. 구마라집은 대품, 소품 『반야경』을 다시 번역했을 뿐 아니라 『반야경』에 대한 주석서 『대지도론』을 번역하였다. 게다가 『중론』, 『백론』, 『십이문론』 등 반야경의 공 사상을 철학적으로 심도있게 다룬 논서를 번역하여, ‘本末, 有無’와 같은 위진 현학의 중심 문제를 불교적 관점에서 새롭게 조망할 수 있도록 논의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구마라집은 위진 현학의 ‘무’에 ‘필경공(畢竟空)’을 대치시켜, ‘공성’을 실체시하려는 모든 견해를 차단함으로써 ‘무’, 또는 ‘본무’라는 역어가 지녔던 본체론적 냄새를 말끔히 제거하였다.
구마라집의 용어 사용법에서 ‘무’는 ‘무자성(無自性)’의 의미로 쓰이고 있으며, ‘유’와 ‘무’는 불교적 맥락에서 새롭게 조명되어 더 이상 위진현학처럼 대립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범어 ‘슈니야(s、u~nya/s、u~nyata-)’가 ‘無’에서 ‘空’으로 정착되기까지, 지참과 구마라집의 연대를 계산해보면, 이백년이 넘는 세월이 걸린 셈이다.

이종철(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북경대 교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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