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시기도의 참된 의미

기자명 법상 스님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것

우리 절엔 한 1년 쯤 전부터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고3 수험생들이 셋 있다.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힘들고 답답할 때면 점심시간이고, 하교길에고, 쉬는 날에고 할 것 없이 절을 찾는다. 그저 조용한 절이 좋아 찾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얼마 전 부터는 새벽기도에도 곧잘 나오고, 평소에도 절에 와서 108배도 하고 1080배도 하고 나름대로 부처님 전에 앉아 원(願)도 세우고 기도도 하곤 한다.

그래도 이 곳 시골은 이 정도로 수험 시즌이 정갈하고 차분하니 참 좋다. 이 아이들 부모님들이야 내심 걱정이 안 되겠느냐마는 도시 부모님들처럼 그렇게 유난을 떨지는 않아 보인다.

이 맘 때면 전국의 산사가 기도객들로 분주하다. 입시기도며 진급기도 등으로 수많은 기도객들이 정성스럽게 불전으로 나아가 향을 사르고 절을 하곤 한다. 매년 반복되는 이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기도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새삼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기도는 말 그대로 ‘비는 것’이다. 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루기를 원한다는 것이고, 원하는 바가 크고 강할수록 우리의 기도는 더욱 간절해 진다. 그러나 다른 말로 기도가 간절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강하게 바란다는 말이며 그 이면에는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괴로움 또한 크게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기도의 의미가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데 있을까. 그렇지 않다. 수행자의 기도는 내가 바라는 결과를 얻고자 함이 아니고,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그 결과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강인한 내적인 수행력을 쌓는데 있다. 기도를 하면 마음이 비워지고 마음이 비워지면 결과에 대한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며, 그랬을 때 결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그것이 기도의 참 의미가 아닐까.

기도를 하면서, 수행을 하면서 ‘잘 되기를...’ 하고 기도한다면, ‘이렇게 되어지기를...’ 하고 기도한다면, 그건 벌써 어긋나기 시작한 것. 기도와 수행은 아무런 이유가 붙어서도 안되고, 그 어떤 조건이나 거래의 마음이 붙어서도 안 된다. 수행하고 기도하는 순간 이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완전히 이룬 순간인 것이지, 기도를 했더니 이렇게 되더라거나, 기도를 했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더라거나 그런 분별이 붙는다면 그것은 부처님과 거래를 하자는 것이지 참된 기도가 아니다.

내가 몇 일 동안 기도할 테니까 꼭 진급하게 해 주시고, 일 잘 풀리게 해 주시고, 대입 합격하게 해 주시고, 그러면서 부처님과 장사를 하려고 하는 마음을 갖다 붙이니 거기에 무슨 공덕이 있을 것인가. 입시기도든, 진급기도든 그 기도의 목적은 합격이나 진급에 있지 않다. 다만 입시와 진급이라는 그 경계 앞에서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자유롭고 당당한 내 안의 중심을 잡는데 있다.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그 결과를 당당하게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마음공부를 하는데 기도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참되게 수행하고 정진한 수행자라면, 인과를 믿는 수행자라면 내 스스로 공부한 만큼, 노력한 만큼 온당한 결과를 받는 것이 당당한 노릇 아니겠는가.

수행자들이여, 기도를 하자. 다만 합격이나 진급을,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그 어떤 결과 앞에서라도 내 안의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당당해 질 수 있도록,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도록, 마음을 텅 비우기 위한 기도를 하자.

법상 스님 buda1109@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