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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인연

기자명 혜민 스님
좋은 인연은 시작이 아니라 끝맺음이 중요

인연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노력이 바로 수행


“미국이라는 이국 땅에서 혼자 살면서 고생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잘 모시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좋은 봉사를 많이 했으니 그 공덕이 어디 가겠습니까. 한국에 돌아가 결혼하게 되면 남편에게 사랑 받는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제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가는 신심 깊은 어느 보살님을 위해 마련된 조촐한 환송식에서 주지 스님은 이렇게 축원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4년 동안 절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변함 없이 봉사를 했던 보살님이라 감회가 깊었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은 모두가 한결 같아서 절 식구들은 못 내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보살님의 앞길에 장애가 없기를, 그리고 하고자 하는 모든 일이 원만히 성취되기를 함께 진심으로 기원했다.

그러나 세상살이에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듯이 헤어짐에는 이런 아름다운 회향만이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 보살이 떠나고 불과 며칠 후 절에서는 이와 완전히 반대되는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년 전부터 우리 사찰에서 어린이부를 관장하는 소임을 맡았던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짐을 모두 싸서 가지고 떠난 것을 보니 완전히 인연을 정리한 듯 싶었다.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 많으신 선생님이라 아이들이며 선생님을 보조하는 어머니들 모두 기대가 컸었는데 갑자기 떠나셨다는 소식을 통보 받으니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떠날 수밖에 없었던 개인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큰 소임을 맡은 사람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야간 도주하듯 사라졌다는 사실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구성원들을 설득시키는 일이었다. 선생님이 너희들을 두고 사라지셨다는 말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할 것이며 어떻게 어머님들을 이해시켜야 하나. 또 계획했던 프로그램들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겁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평생을 통해 수많은 인연을 쌓는다. 삶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인연들 중에 어떤 인연이 과연 좋은 인연일까. 생각해 보면 좋은 인연이란 시작이 좋은 인연이 아니라 끝이 좋은 인연이 참으로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연 따라 와서 인연 따라 가는 사람들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만은 그 인연의 끝을 어떻게 매듭짓는가는 그 사람에게 달려있다. 불교에선 현재의 끝이 영원한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했다. 무시무종(無始無終)란 말씀도 그래서 있는 것이다. 다음 생에서 다시 만날 것을 대비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그리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노력, 그 자체가 바로 수행이 아닐까 싶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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