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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 Story

기자명 남수연
출세간 모두에게 고향 같은 곳



사찰의 많고 많은 전각과 공간 가운데 ‘이야기’라는 단어와 가장 어울리는 곳은 어디일까. 대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곳을 꼽아보자면 공양간, 해우소, 지대방 등일 것이다.

이 공간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곳이 아무리 사찰 안 경내에 위치한 엄연한 수행공간이라 할지라도) 모깃불 피워 놓은 한여름 대청마루에 누워서나, 휘영청 보름달 밝은 동내 언덕 마루에 철퍼덕 앉아서나, 혹은 따끈한 아랫목에 옹기종기 배를 깔고 엎드려 듣고 말해도 전혀 ‘죄스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서도 풋풋한 삶의 체취가 가장 담뿍 묻어나는 곳은 단연 ‘공양간’일 터.

구수한 밥 냄새와 고소한 나물 반찬 냄새가 묻어나는 듯한 공양간의 모습은 세간인들에겐 어린 시절 할머니 댁의 추억이나 고향 모습과 겹쳐 떠오르는 영상이 된다. 간혹 그 속에서 마주치는 출세간의 모습은 길을 가다 마주친 오랜 친구같이 더욱 반갑고 찡한 감동이 되기도 한다.

공양간이 눈을 뜨는 시각은 새벽 3시. 첫 새벽 도량석 소리에 공양간도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사진설명>아침공양이 준비되고 있는 운문사 공양간. 아직도 장작불로 국을 끓인다.

사찰 대중의 수가 200여 명에 달하는 비구니 강원 운문사의 공양간도 이 시각이면 곰실곰실 장작불 타는 냄새가 새어나오기 시작한다. 백열등 두어 개가 전부인 새벽 공양간에는 아궁이의 붉은 장작불빛이 가득 차 불빛이 움직이는 대로 함께 너울거린다.

아궁이 위에는 지름이 1미터는 족히 넘을 듯한 커다란 가마솥이 연신 하얀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연기를 따라 구수한 된장국 냄새도 함께 나온다. 무나물을 만들 요량인지 아궁이 불빛을 빌어 무채를 써는 두 스님들의 도마소리는 작은 목탁 소리처럼 경쾌하고도 정갈하다.

<사진설명>카메라를 보자 쑥쓰러워하는 비구니 스님들.

그곳에도 시대의 변화가 여지없이

공양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정갈함’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할 듯 하다.

부엌살림이라는 것이 들쭉날쭉한 온갖 물건들의 집합체라는 점은 사중이나 가정이나 매한가지이다. 이런 것들이 잔뜩 쌓여 있다보면 어지간히 부지런한 주부가 아니고서는 어느 구석, 어느 틈바구니에고 먼지가 끼고 찌든 때가 앉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곳 공양간에서만큼은, 도통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하수구에는 밥알 한 톨, 시래기 한 줄이 없으니 하수구에 몸을 박고 있는 플라스틱 걸름망은 괜한 헛수고만 하고있는 셈이다. 가지런히 줄을 맞춰 널어놓은 행주며, 고무장갑도 이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조연들이다.

그렇다면 주연은 누구란 말인가. 공양간의 진짜 주인공들, ‘정갈함’의 정수는 바로 스님들의 손끝에서 차려지는 공양상이다. 사중의 어른스님들을 위해 따로 준비되는 공양상을 들여다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자로 재듯 칼을 눕혀 칼 폭 만큼 썰어 놓은 김치. 한 장 삐뚤어짐 없이 쌓아진 김. 특히 김은 모서리 하나라도 부스러지면 여지없이 맨 밑자리로 퇴출당하는 신세가 된다. 이렇듯 각별한 정성이 기울어진 공양상은 어른 스님을 모시는 정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인 듯 해 자못 경건함 마저 느껴진다.

<사진설명>오른쪽의 운문사 공양간의 조왕단과 옛 가마솥. 왼쪽에는 정성스럽게 손질된 먹거리들이다.

안거철이면 80여 명의 비구니 선객들이 결제에 드는 대표적 비구니 선방 석남사의 공양간은 늘 분주하다.

“용맹정진을 하는 스님들, 혹여 기운이 딸려 수행에 장애가 되면 안 된다”는 주지 영운 스님이 공양에 각별히 신경을 쓰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차려진 공양도 다채롭고 먹음직스럽다.

공양간 한 곁엔 고추며 각종 나물 등이 잔뜩 널려있다. 직접 재배해 거둔 수확물이거나 주변 야산에서 뜯어온 나물들인데 시장에서 손쉽게 사오는 것들과 비교가 안 되는 그야말로 무공해, 자연산의 ‘1등급 먹거리’인 셈이다.

요즘엔 선방 대중공양으로 우유나 요구르트, 치즈 등도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한다. 시대에 따라 공양간에 드나드는 먹거리들도 변하기 마련인가 보다.

또 다른 비구니 선방인 경남 합천 보현암 공양간은 이런 시대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공양간은 몇 해 전 새로 불사를 해 말끔하게 정리된 ‘입식 주방’이다. 깔끔한 싱크대에 반짝 빛나는 김치냉장고 까지. 그러나 공양간 건너편 굳게 닫혀있는 오래된 나무문을 열어보면 그곳이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공양간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 되어버렸지만 장작불 그을음이 아직도 선명한 옛날 식 아궁이에는 제법 연륜이 있어 보이는 가마솥 두 개가 제 빛을 간직한 채 걸려 있다. 그 옆으로는 그야말로 옛날 식, 굳이 비유를 하자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흑백 영화에서나 봤음 직한 미닫이 찬장이 아직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궁이 위에 반듯이 놓여진 ‘조왕신’ 액자는 이곳이 여전히 사찰의 명실상부한 공양간임을 말해준다.

사찰 공양간은 세월의 흐름에 순응한다. 대웅전이나 종각, 각종 전각들은 오히려 ‘문화재다’ ‘보존이다’ 하면서 수 백년씩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비해 공양간은 쉽게 변하고 혹은 완전히 자리를 내어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곳의 물건들도 쉽게 나이를 먹고 새로운 신식 도구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그러나 그것이 서운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수많은 물건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남을 것은 남아 그것이 전통이 되어가며 공양간의 풍경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공양간에서 손끝에서 손끝으로 이어지는 맛깔스런 전통과 정성 그리고 소곤소곤 전해지는 사찰의 옛 이야기들이 아닐까.


글·사진=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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