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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에서 만난 이색 ‘살림살이’들

기자명 남수연
100인분도 거뜬한 ‘쇠가마’

20년 자리 지키는 ‘목탁’


서로 잘 아는 이웃지간을 표현할 때 흔히 “숟가락 숫자까지 훤히 안다”고 한다. 안살림 특히 부엌살림은 한 집안의 내밀한 풍습과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양간의 물건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찰의 전통이나 문중의 풍습을 엿볼 수 있다.

운문사 공양간에는 커다란 쇠 가마가 한 구석에 놓여있다. 가마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그 크기가 만만치 않다. 가스를 연결해 밥을 짓는 가마는 100여명 이상의 밥도 너끈해 보인다. 아직도 장작불에 국을 끓이는 운문사 공양간의 이 밥짓는 쇠가마는 “한 여름에 장작불로 밥 짓기가 너무 고되다며 어른 스님들이 마련해준 선물”이다. 주로 여름에만 사용했는데 그 나마도 요즘에는 서랍식으로 나온 ‘전기솥(솥이라기보다는 냉장고 같이 보인다)’에 밀려 일년 내내 공양간 한 곁에 멀뚱하니 서 있는 신세가 됐다.

<사진설명>석남사의 조왕단과 운문사의 공양 목탁.

석남사 돌수조, 조형미 돋보여

공양간 문 입구에는 잘생긴 목탁이 하나 걸려있다. 밥 냄새, 국 냄새, 고소한 나물냄새에 반들반들 윤이 나게 길들여진 목탁은 공양시간 알림이다. 20여년 가깝게 그 자리에 걸려 있었다니, 목탁 하나만 봐도 사찰의 전통이 느껴진다.

손꼽히는 비구니 선방 석남사 공양간에는 개인용 목기 반상이 가지런히 쌓여있다. 안거 철에는 대중이 80여 명을 넘기 때문에 반상 숫자도 100여 개는 됨직하다. 석남사 후원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각별한 물건이 숨어있다.

돌로 된 거대한 수조가 바로 그것. 이 돌수조는 길이가 2.4미터, 높이 0.9미터, 너미가 1미터에 이른다. 수조의 두께만도 14센티이니 보통 사찰의 수조와는 비교가 안 된다. 모서리의 안과 밖을 둥글게 다듬어 소박한 조형미도 보여준다.

<사진설명>수좌들의 개인 밥상과 밥짓는 쇠가마

고려 말,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고 지금은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돼 있다. 석남사에서는 아직도 이 돌수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추적추적 비 내리는 날에도 비 맞을 걱정 없이 스님들이 옹기종기 수곽에 모여 앉아 각종 푸성귀를 씻고 다듬는다. 무척이나 정겨운 모습이다.

<사진설명>입식 부엌에 밀려 이제는 할 일이 없어진 보현암 옛 공양간.

현대식 기기로 옛것은 ‘뒷전’

사찰 공양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조왕단이다. 주로 조왕신을 그린 액자를 걸고 소박하게 단을 꾸미는 정도다. 해인사 말사 보현암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공양간에 조왕단의 흔적이 남아있다. 무쇠 솥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는 옛 공양간 아궁이 위에는 ‘나무팔만사천조왕대신’을 적은 액자가 지금도 가지런히 놓여있다. 공양간 처마 밑에는 꽤나 예스러운 뒤주가 나와있다. 쌀 담는 뒤주를 처음부터 이렇게 밖에 내놓았을 리는 없고, 아마도 어느 때쯤부터인가 공양간의 새 식구가 된 반듯하고 매끈한 쌀통에 밀려 이곳 처마 밑에 놓여져 있을 터이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좀더 시간이 지나면 이나마 처마 밑에서도 사라지겠구나’ 싶어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공양간 살림들에서 왠지 자꾸 그런 아쉬움이 묻어난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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