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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따다

기자명 철우 스님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부처님은 계율을 제정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일은 하지 말라 하셨다. 첫째, 스님으로서 체면 없는 행동(非威儀), 둘째, 스님의 법도가 아닌 행동(非沙門法), 셋째, 깨끗하지 못한 행동(非淸淨行), 순리를 따르지 않는 행동(非隨順行)이다.

나와 가까운 이들은 곧잘 나를 왕따 시킨다. 도반을 만났을 때, 같이 밥 먹으러 가기도 하고, 같이 놀아주기도 하고, 무슨 일이에나 뜻을 같이 해주고, 자기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주어야 하고, 상대방이 도움을 주었을 때 어떻게 해서라도 그 도움을 갚아야 한다. 그리고 바른 말은 상황에 따라 해야 하는데 옳지 못한 것이면 꼭하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재가불자에게도 인기 없기는 매 한가지이다. 차라도 한 잔 손수 우려서 대접하고, 가끔씩은 안부도 묻고, 자질구레한 신세타령도 고분고분 들어주는 펜 관리를 못한다. 그러니 나 스스로도 나 같은 사람보다는 매사에 부드럽고 쉽게 넘어가주는 ‘아무개 스님이 좋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겠다 싶다. 그래서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설화처럼 처신해주기를 알게 모르게 강요 아닌 강요를 당한다.

옛날 어느 한 절에 관음기도를 하는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관세음보살 정근을 할 때, 꼭 ‘관세암보살....’이라고 불렀다. 지나가던 객스님이 이 소리를 듣고 따져 물었다.

“아니 관세음보살을 왜 관세암보살이라고 하십니까?”
기도하던 스님은 “관세음보살이라뇨? 관세암보살이 맞습니다.”

두 스님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우겼다. 결국은 다음날 큰스님께 판결을 받자고 합의했다. 조금 있다가 관세암로 외우며 기도하던 스님이 호박범벅 죽을 큰스님께 드리면서 다음날 관세암보살이 맞다 해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그리고 조금 뒤에 관세음보살을 주장했던 객스님도 국수를 큰스님께 드리면서 자신이 맞다 해주시기를 부탁드렸다.

이윽고 날이 밝고 판결의 시간이 오자 큰스님께서는 판결하셨다.
“호박범벅경에 보면 관세암보살이라고 나와 있고, 국수경에 보면 관세음보살이라고 적혀있느니라.”
말씀을 마치고 큰스님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자리를 떠나셨다.

‘옳지 않은 것도 옳다, 옳은 것도 옳다’를 요구하는 사람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왕따가 되는 내가 부끄럽다.

너무나 세속화 되어 가는 먹거리며 옷이며, 잠자리를 누가 한 번 잘못된 점을 짚어주지도 않는 우리가 외국의 큰스님은 왜 부러워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다. 어른은 묵묵히 방관만 하는 것이 어른의 의무는 아닌데 말이다.

사리불과 목건련이 걸식하는 비구 앗사지의 위의를 보고 단박에 성인의 제자임을 알아 볼 수 있던 그런 위의를 지닌 수행자가 우리에게 많이 나투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요즈음 왕따를 당해도 “아재비야, 묵묵히 할 일만 하다보면 좋은 일 있다” 하시는 큰스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철우 스님/파계사 영산율원장

vinayabul@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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