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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의 두려움 삶의 집착서 출발

기자명 이미령

삶을 직시할 때 두려움 극복된다

만일 또 삼천 대천 국토에 도둑이 가득 찬 속을 한 상인의 우두머리가 여러 상인을 이끌고 귀중한 보물을 가진 채 험한 길을 지나갈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선남자들이여, 무서워말고 두려워 말라. 그대들은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를지니라. 이 보살이 능히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리니, 그대들이 이 이름을 부르면 이 도둑들을 무사히 벗어나리라’하고, 이에 여러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소리를 내어 ‘나무 관세음보살’ 하니 곧 그 난을 벗어났느리라. 무진의야, 관세음보살마하살의 위신력이 이와 같이 훌륭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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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난 즉 원적난(怨賊難)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경전의 문구 중 ‘도둑’이란 말은 한문본에는 ‘원적(怨賊)’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태 지의대사는 좬관음의소좭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원수의 재난은 정도가 무겁다. 도적이란 본래 재물을 구하고, 원수는 목숨을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원수가 도적이 되었으니 반드시 재물과 목숨의 두 가지를 아울러 도모하게 될 것이다. 만약 과거에 피를 흘리고 싸운 일이 있으면 ‘원수(怨)’라 부르며, 현재의 재산을 빼앗는 것을 ‘도적(賊)’이라 부른다.”

그러니 그저 재산만을 노리는 도둑이 아니라 재산은 물론이요, 내 목숨까지 노리는 흉흉한 날강도들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 속을 귀중한 보물을 지니고 지나간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못 즐거울 여행길이지만 도처에 강도가 나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내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차 올라 한 걸음도 제대로 내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입니다.

정작 도둑을 만나기도 전에 두려움이 내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결국 내 재산을 빼앗고 내 목숨을 빼앗는 자는 도둑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번져 나오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것은 외부의 대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느낌입니다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죽음 즉 자기 존재의 사라짐, 소멸, 무화(無化)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저 험난한 길 어느 굽이에 도둑이 숨어서 내 목숨을 노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여 갖게 되는 두려움은 죽은 뒤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불교기본교육 시간에 보살님들에게 제안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한번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일주일 뒤에 만나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답은 “내가 죽으면 자식들이 불쌍해서…”, “남편이 어떻게 살지 걱정이 되더군요”, “죽기 전에 살림살이 정리는 해놓아야 할텐데…”라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대답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사색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삶을 생각한 셈이 되었지요. 죽음을 살짝 비켜선 채 자신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을 지를 생각하는 대답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 어떤 노보살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아휴, 난 생각하기 싫어…”
“왜 그렇지요?”
“죽음을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워졌어.”

연세 지긋하신 노보살님의 이 대답은 참 오래도록 저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처럼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이것이 바로 두려움인 것입니다. 좬보문품좭에서 상인 중에 한 사람이 “무서워말고 두려워 말라”라고 말한 대목은 그런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비법을 담고 있는 바코드인 것입니다.


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lmrcit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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