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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수지하던 날

기자명 정인화
불교에 입문한지 3년이 되던 해 수계식이 있었다. 가슴이 설레고 망설여졌다. 5계를 지킬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만약 5계를 지키지 못하고 어겼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무겁게 눌렀다. 계를 받는 자체가 송구스러운 마음과 함께 지난날의 생활을 돌이켜보니 계를 어긴 것이 무수히 많아 죄책감은 더욱 나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참회진언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를 외우며 계를 받는 순간 마음에는 지킬 수 있다고 다짐을 하면서 계수어가 끝나니 한편으로 어느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법명도 받았다. 혜산(慧山)이란 이 법명과 같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며 고뇌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나의 행동과 마음을 얽매는 것 같았다. 그후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내가 계를 얼마나 지켰으며 법명에 따른 불심은 어느 정도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대로 이행한 것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내가 계와 법명을 받은 것은 보이지 않는 목걸이를 한 셈인데 그간 나는 그 목걸이를 내 손으로 벗어놓고 지낸 것이다.

특히 천수경을 독송하다보면 삼악참회시 이제 참회(큰절하면서)합니다. 매 절마다 가슴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나는 지금도 나의 마음과 행동은 초보운전자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숙련된 운전자라면 내 주위를 골고루 살피면서 살아왔을 터인데 앞만 보고 달리는 초보운전자이기에 주위를 살펴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계와 법명을 잘 지킨다는 사실보다 그 울타리 속에서 충실히 살아야하겠다고 생각해본다. 울타리 속은 내면의 세계에서 스스로 계를 어기지 않겠다는 수행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지키기보다는 수행으로 나를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에서다.

또한 다짐하지만 한시도 쉬지 않고 들어오는 번뇌 망상을 단속하고 방지하지 않고서는 옳은 수행의 길로 갈 수 없으므로 옳은 수행을 위해 내부로부터 타오르는 번뇌와 망상의 굴레를 벗어야 하고 계의 굴레를 써야한다. 그렇다고 계의 울타리 속에만 집착하고 집안 사정을 망각한다면 외부의 도둑보다 내부의 불안이 외부로 노출되어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기에 계도 중요하지만 수행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내가 얼마나 충실하게 하루를 살았는가 다시 생각해본다. 하루를 부끄럼 없이 살았다는 것은 지난 과거도 또한 미래도 오늘과 같다고 생각되기에 늘 계와 법명을 받던 그 순간의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정인화/고려수지침회 춘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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