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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가을과 이메일

기자명 혜민 스님

깨달은 이의 마음은 시공을 초월해 통한다

뉴욕에도 가을이 한창이다. 맨하탄의 나무들은 가을의 색으로 뉴욕 전체를 물들이고 있고 끝없이 펼쳐진 청명한 하늘은 보는 이의 마음을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인도하는 듯 하다.

어제는 뉴욕 인근 산에 올랐다.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맞으며 자작나무 흔들거리는 인적 드문 가을 길을 혼자 걷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서였다. 산행 길엔 빨강, 노랑, 고동색 낙엽들이 산에 오르는 이를 반기듯 양탄자처럼 깔려져 있고 그 낙엽을 밟고 지나가는 내 발자국에선 가을에만 들을 수 있는 ‘바삭’거리는 경쾌한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산 중턱쯤 올라와 산봉우리를 보니 은은한 가을 바람에 하늘로 향한 나뭇잎들이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 흔들거리는 가을 나뭇잎들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조금씩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이 모습들을 관조하고 있자니 내 마음도 어느새 환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산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온 몸에 녹아들었다. 또한 내가 지금까지 고민하고 번뇌했던 모든 일들이 가을 햇살 앞에서 그 힘을 잃고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듯 했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불현듯 대만에서 공부하고 있는 절친한 도반 생각이 났다. 넉 달이 넘도록 서로 연락이 없었는데 잘 살고 있는지, 하고자 하는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갑작스레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에 들아 오기가 무섭게 이메일을 보낼 양으로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메일을 연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동안 소식 한번 없던 그에게서 메일이 먼저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메일을 열어 본 순간 한번 더 놀라야 했다. 그 도반이 나에게 메일을 보낸 시각이 공교롭게도 차를 타고 절로 오면서 그를 생각했던 바로 그 시각이었던 것이다.

깨달은 이의 마음은 시공을 초월해 삼계(三界)를 관통한다 했다. 가을 햇살 아래 비친 나뭇잎을 보면서 망상을 잠시 쉰 덕에 나를 생각하는 도반의 마음을 감지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자신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몸이 몇 천만리 떨어져 있다해도 우리의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혼자 있다고 해서 외로워 할 이유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이렇게 서로의 느낌을 감지할 수 있는데, 하물며 부처님의 경우는 어떠하겠는가. 우리가 부처님을 생각하며 염불하고 기도하면 부처님은 얼마나 빨리 우리의 마음을 인지하고 계실 것인가. 부처님은 당신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둘이 아니라 했다. 그러니 일념으로 염불을 하면 머지않아 내 마음과 부처님의 마음이 한 경계임을 터득하는 날이 오리라!

누군가가 가을에는 편지를 쓰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편지 대신에 21세기 문명이 인간에게 가져다 준 이메일을 통해 도반에게 회신했다. 종이에 펜으로 쓰여진 정성스런 편지와 비교 될 바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회신 안에 담아 보낸 뉴욕의 가을 정취를 그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혜민 스님 vocalizethis@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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