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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홈 아이들의 아주 특별한 초대

기자명 김형섭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에서 운영하는

성북 그룹 홈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사회적 자립심을 키워주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지난 98년 개원했으며

현재 8명의 장애아동과

2명의 생활재활교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10월 어느날 이들을 찾아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삶을 엿보았다.

<사진설명>"형아 힘들지" 야채를 손질하고 있는 맏형 준홍이를 위해 준희가 안마를 해주고 있다. 이들은 그룹 홈을 통해 만난 사이지만 진형제보다 끈끈한 정으로 뭉쳐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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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초대를 받았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보금자리인 ‘성북 그룹 홈’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로부터 받은 점심식사 초대였다. 초대에 대한 보답의 의미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일이며 간단한 과자와 음료를 준비한 뒤 그들의 집을 찾아 나섰다.

좁은 골목에 빼곡히 들어선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곳이었지만 재활 교사의 친절한 설명에 집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지 흠이라면 20도는 족히 넘어 보이는 가파른 길이 양손 가득 물건을 든 사람에겐 약간 버거웠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문을 여는 ‘대성이(12·정신지체 1급)’. 줄곳 창문 틈에 기대어 오늘의 손님을 기다렸단다. 가족이 아닌 타인을 집으로 초대한 것이 처음이라는 이들에게 ‘초대’라는 것은 ‘설렘’ 그 자체였던 것이다.

대충 인사를 하고 들어서려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낀 6명의 아이들이 음식에 필요한 조리 기구를 들고 현관으로 뛰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룹 홈의 맏형 준홍(32·정신지체 3급) 씨가 부엌칼을 든 채 뛰어온다. 그것도 ‘앞에 총’ 자세를 하고선….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며 악수를 나눈 후 이들은 본격적인 식사준비에 들어갔다.

양파나 마늘 등을 다듬는 ‘야채조’, 어제부터 고기 손질을 했다는 ‘고기조’, 이밖에 설거지 등 허드렛일을 맡은 ‘열외조’. 무엇을 만드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각기 맡은 일을 하는 모습은 어설프지만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 돌아갔고 조직력은 가히 ‘프로급’ 이상이었다.

상현(24·정신지체 2급)이가 양파 손질에 들어간다.
“상현아, 칼질 할 때는 조심해야 돼 알지”
다듬기 좋게 반을 ‘쓱싹’ 자른 상현이가 얼굴을 찌푸린다. 30초쯤 지났을까. 선생님의 말이 신경이 쓰였던지 양파에 코를 박고 다듬는 상현이의 얼굴은 어느새 눈물로 범벅이 됐다. 한번쯤 고개를 젖혀 쉴 만도 하련만 절대 눈을 떼지 않는다.

대충 음식에 들어갈 야채손질이 끝나갈 무렵 냉동실을 뒤지던 준희(23·정신지체 3급)가 살며시 다가와 “정통 이태리식 스파게티”라고 귀뜸을 해준다.
그 순간 어묵을 다듬고 있던 창석(20·다운증후군)이에게로 시선이 집중된다. 어묵을 다듬기는커녕 창석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많다. 참다 못한 준희가 한마디 한다. “맛있겠다”

음식을 준비한지 1시간이 넘어갈 시간. 방안 가득 맛있는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음식을 받던 순간 눈을 의심했다. 외형은 아이들이 스스로 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사했다. 그리고 맛도 일품이다. 분명 눈으로 확인을 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많이 연습했나 봐요.”
“설마 첫 작품으로 손님을 초대 했을까 봐요. 아마 지난달에 한 번하고 두 번째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실력은 전문 스파게티 점을 내어도 될 정도다.

맛을 말할 때까지 먹지 않고 기다리던 아이들에게 엄지를 내보였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이 기가 막힌다. 슬쩍 웃음을 보일 뿐이다.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발달장애로 양손에 힘이 없는 대성이는 먹는 양보다 흘리는 양이 더 많다. 맏형 준홍이가 다가가 음식을 대신 먹여준다. 먹성 좋은 대성이는 어느새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운다. 양이 조금 모자라는 눈치다. 당연한 듯 자신의 음식을 덜어주는 준홍이는 아침을 많이 먹어서 배가 고프지 않단다. 피붙이도, 오랜 세월 함께 한 친구도 아닌 이들 두 사이에서 부자지간의 정이 스며든다. 지켜보던 아이들이 자신의 것을 조금씩 덜어 주기 시작했다. 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체득한 상태였다.

<사진설명>교육은 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필수 단계다. 하루 한 시간씩, 주말이면 보충수업에 특강이 이어진다.

양념 하나 남김없이 깔끔히 처리한 후 지금까지 별 할 일 없던 ‘열외조’가 투입됐다. 5분 만에 엉망진창이던 부엌이 말끔해졌다.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식사초대. 맛을 음미하며 먹을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아주 특별한 식사였다.

맛있는 식사초대에 대한 감사함을 준비해간 간식으로 전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일정량의 간식만을 내 놓는다. 비장애인에 비해 운동량이 적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서다. 내심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내 보이지만 떼는 쓰지 않는다. 선생님 손에 들어간 이상 오늘은 절대 나오지 않음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대신 음식소화를 시킬 겸 선생님이 팔씨름 시합을 권한다. 1등 상품은 과자 한 봉지.

팔씨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준희가 어깨를 들썩인다. 입소당시 120kg이 넘었다는 준희다. 팔씨름은 체급별로 이뤄졌다. 1라운드 준희와 준홍. 예상외로 준홍의 승이다. 약간의 반칙이 있었지만 승자는 준홍이다. 2라운드 관희와 상현. 팽팽한 접전 끝에 상현 승. 3라운드 창석과 준형. 체격이 왜소한 창석의 승이다. 두 손에 힘이 없는 대성이는 아쉽게 시합에서 제외됐다.

부엌칼을 들고 현관으로 뛰어오던 아이들과의 만남은 해가 질 무렵 끝났다.
난생 처음 집으로 손님을 초대한 아이들은 헤어짐이 아쉬웠는지, 큰 길까지 배웅했다.
“형, 다음엔 삼계탕 먹자” 준희가 다음을 기약 하듯 말을 던진다.

따뜻한 배웅에 감사의 인사를 하며 “다시 올께”라는 약속을 하고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직도 아이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사진설명>이곳에선 장애인이기 때문에 받는 특혜는 없다. 자신의 옷은 직접 세탁하고 손질한다.

가슴 한편에 뜨거움이 인다. 장애인들에게 받은 초대이기에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부끄럽다. 문득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가진 사회 속에 정작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편협된 인식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사진=김형섭 기자 hsk@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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