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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사막에 연꽃을 심다

기자명 탁효정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

사막과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 이곳에서 한국인 청년 불자들이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기치를 걸고 미국으로 향하는 큰 꿈을 펼치고 있다. 올해 초 한국 이민1세대 청년들은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이라는 청년불교단체를 결성했다.

<사진설명>라스베가스 운주사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 회원들.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 태양을 짊어지고 간다. 이 이름은 해가 나는 방향을 향해 타인의 그림자를 따라 가지 말고 스스로 빛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뜻이다. 즉 “스님 중심의 기존 포교방식, 교포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안주하지 말고 미국 현지사회로 진출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타이틀이다.


#라스베가스 일요일 오전 11시

미국 유타, 미시간, 로스엔젤레스 등 전국 각지의 청년들이 라스베가스 운주사로 모여든다. 11시 사시예불을 마치고 난 참선방에선 불교사 세미나가 시작됐다. 오늘의 주제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왜 중국 선종의 창시자 달마는 동쪽으로 갔을까, 그렇다면 서구에서는 언제부터 불교의 유입이 이루어진 것일까, 불교가 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등 불교가 전세계로 전파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사회에 불교가 뿌리내릴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진설명>지난 10월 종단협에서 실시한 한국문화체험에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회원들이 참가했다

라스베가스에서 건축설계를 하는 회장 김도성 씨를 비롯해 라스베가스 호텔업에 종사하는 부회장 김현정, 총무 조영배, 윤희정, 강호선, 김은영, 김태윤, 그리고 감사를 맡고 있는 유타주립대학 이종화 씨 등 한국인 유학생과 재미교포들이 바로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의 주요 멤버들이다.

이 모임이 꾸려진 것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네바다 라스베가스 주립대학(UNLV) 한국인 학생들이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한국사찰 운주사에서 불교교리와 선에 관한 공부를 시작했다. 호텔경영학과에 다니고 있던 김현정, 조영배, 윤희정, 김선미, Mario 등 15명의 학생들이 주축이 돼 결성된 ‘운주사 불교학생회’가 바로 이 모임의 모태다.


#태고사와의 인연

어느날 라스베가스 주립대학 학생들은 우연히 잡지에서 작업복 차림의 깡마른 스님을 발견한다. 벌거숭이 산에서 열심히 땅을 파고 있는 그의 얼굴은 힘겨움이 아니라 즐거운 활기로,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호수 같은 맑은 눈동자는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야산에서 혼자 힘으로 나무를 베고 포크레인을 몰며 ‘미국내 한국불교 참선도량’을 만들어가던 사진의 주인공, 무량 스님을 뵙기 위해 모하비시 테하차피를 방문했다. 당시 이 곳을 찾았던 여러 학생들은 태고사 불사를 지켜보며 환희에 들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진설명>지난 10월 종단협에서 있었던 한국문화체험에 참가한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 회원들의 모습.

“한국불교를 전하는 제대로 된 도량을 짓겠다는 일념 하나로 수년째 노동 禪을 행하는 무량 스님을 보면서 한국 청년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곳에서 우리 또한 한국 불교가 미국 땅에 뿌리내릴 수 있는 거름이 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들은 곧 라스베가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태고사와 무량 스님을 알리는 한편 사찰 불사를 도울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다. 또 운주사에 한글학교를 개설하고 어린이 템플스테이를 만들었다.

한글학교와 어린이 템플스테이를 개설한 것은 누구보다 이민자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녀들의 언어교육 문제. 많은 이주민은 한글을 가르칠 시설을 찾아 교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언어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교포2세 위한 한글학교 운영

하지만 라스베가스 청년들은 한국의 정서를 불교에서 찾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미국 내 교회에서는 결국 반쪽자리 한국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채 한 반도 채우지 못했던 학생들이 조금씩 늘기 시작해 1년이 넘으면서 5개 반이 편성됐다. 그만큼 한글을 가르치는 청년들의 희망과 꿈도 함께 자라났다.

<사진설명>라스베가스 운주사에서 토론을 벌이고 있는 혜안 스님과 회원들.

이처럼 분주한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상당수 유학생들은 학교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했고, 일부는 현지에서 직장을 잡았다. 청년회 모임이 조금씩 축소되어 갈 즈음 김도성 법우와 혜안 스님이 라스베가스로 이주해왔다. 이들의 출연으로 청년회는 새로운 변모를 꾀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을 역임할 당시 국제포교 문제의 필요성을 절감해온 혜안 스님은 “미국과 한국 양쪽 문화를 모두 경험해 본 청년불자들이 현지 사회를 개척해야 한국불교의 길이 열린다” 고 역설하며, 청년불자들이 국제포교의 기반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불교세미나와 청년회 활동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혜안스님은 청년들에게 큰 버팀목이 돼주었고 라스베가스의 청년불교운동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운주사 불교학생회는 한인 대학생·직장인과 불교에 관심이 많은 미국인들을 모아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이라는 청년포교단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라스베가스 운주사에서는 매달 청년불자들을 위한 불교학 강좌가 열린다. 또 이들은 한국 사찰에서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릴 때면 통역, 행사 안내에서부터 차량 정리며 설거지까지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미국 현지로, 세계로

‘해를 지고가는 아이들’은 미국 전역의 한인 청년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일을 진행 중이다. 라스베가스 운주사 학생회 출신들은 각자의 모대학에 불교학생회 창립 준비에 분주하다. 한인 청년불자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내년 초쯤에는 UN 및 네바다주에 NGO 단체와 세계청년불교도우의회(WFBY)에도 정식 가입해 본격적인 청년불교의 붐을 일으켜볼 작정이다.

<사진설명>혜안 스님의 서각 '해를 지고 가는 아이들'. 이 작품에서 불교 청년회의 새 이름을 따왔다.

“미국의 대학생들은 불교에 대해 매우 관심이 높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 선불교를 설명하고 가르칠 스님들은 드물죠. 한국과 미국, 스님과 일반인, 한국불교와 미국 현지인들을 연결하는 작업이 바로 저희 청년불자들의 몫입니다.”

이민 1세대. 그리고 이제 30대 중반을 넘으면서 미국에서 사회적 기반을 다져가는 젊은이들. 새로운 세상에서 진리의 빛을 향해 달리는 이들의 역설적 표현이 바로 ‘해를 짊어지고 어둠을 향해 다가가는 아이들’이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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