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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불교구루 

구루(Guru)는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은 정신적 지도자이다. 세계 최고의 기업가들 가운데에는 두 부류의 스승을 두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경제학 분야의 석학이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기업의 미래를 판단할 합리적 예언자가 필요하다. 둘째는 정신적 스승이다. 실물경제 분야의 최고봉에 올라오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인생이 무엇인가 묻고 싶은 것이다. 후자의 경우, 경제 전쟁에서 겪은 그들의 삶의 내면을 깊이 있게 보고, 이 세계와 우주의 진실을 설해준다면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어쩌면 기업가에게 바른 업을 쌓을 수 있도록 정도(正道) 경영을 설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세계는 이미 잘 알려진 구루들이 있다. 암베드카르, 달라이라마, 틱낫한 등. 이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대중들과 소통에 능하다는 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고통 가운데 가장 극한의 고통 현장에 있었거나 있다는 점이다. 암베드카르는 카스트에도 들어가지 않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평생 고군분투했다. 달라이라마 또한 수십만 명의 백성이 죽고, 그들의 의지처인 불교 사찰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망명국가 티베트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이다. 틱낫한도 인간의 고통이란 고통은 다 쏟아진 베트남 전쟁의 살육 현장에서 온몸으로 항거했다. 그들 자신도 지옥같은 사바세계 속의 한 사람임을 자각한 것이다.

다음은 그들의 언어가 너무나도 쉽다는 점이다. 대중들의 눈높이에서 때로는 현학적인 사람들 앞에서도 문제의 본질을 쉽고도 친절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자비심이다. 길잃은 어린아이가 울고 있을 때, 두려움을 달래고 집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어떤 말로 전해야 할까. 그들의 언어로 먼저 공감을 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시기상응(時機相應)의 정신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언어로 그들이 처한 삶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는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교철학의 수준은 물론, 교법의 현대적 해석, 적용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암베드카르가 불교 개종식에서 발표한 22가지 서약 중 “나는 인간을 불평등하게 취급하는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를 받아들인다”라고 과감하게 선포한 것은 종교는 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달라이라마는 고집멸도, 팔정도를 현대 사회의 과학이나 환경, 전쟁과 평화 문제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틱낫한 또한 5계(戒)를 다섯 가지 전념 훈련이라고 바꾸어 부르며, 이를 현대인들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도록 새롭게 풀어 설하고 있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는 이들이 높은 수행력과 함께 교법의 핵심 속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역사 이래 극도의 고통을 당한 이 한반도, 지금도 통한의 눈물이 강을 이루고 있는 이 땅에서 이러한 구루들은 왜 우후죽순처럼 나오지 않는 것일까. 물론 우리가 아는 많은 불교 지도자들이 그러한 능력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근현대 불교계에 위대한 인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지금 한반도가 여전히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이 현실 속에서는 어떤가. 나아가 미얀마의 민중이 군인들의 탐욕에 의해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데도 우리는 무기력하다. 팔레스타인의 어린이들이 그렇게 죽어나가는 데도 우리는 어떤 힘도 쓸 수 없다. 양심과 도덕, 정의와 평화, 권선징악의 인과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인 불교의 구루들은 분명히 말한다. 인간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어떠한 환경도 반대한다고. 그것이 권력이든 전쟁이든 탐욕이든. 그리고 오히려 그러한 지옥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곳에 빠지지 않길 기도해야 한다고. 불법의 효용성이야말로 이 무도한 현실을 바로 잡는 것에 있다. 대중들은 공허한 외침은 외면한다. 불법의 묘용인 활불, 활법, 활승의 세계를 우리 불자들이 구현해야 한다.

원영상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 wonyosa@naver.com

[1589호 / 2021년 6월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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