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주의와 마음, 음식선택 (끝)

기자명 고용석
  • 기고
  • 입력 2021.08.23 14:30
  • 호수 1598
  • 댓글 2

깨어있는 밥상이 민주주의 만든다

육식에 대한 양심·죄의식 외면
문제 다루는 능력까지 억압해
대량 학살과 무자비 직시하고
선량함 이끌 올바른 선택 해야

음식을 고르는 인식의 질은 유의미한 관계를 파악하고 피드백하는 마음의 힘과 깊은 관련이 있다. 채식이나 비거니즘(veganism)은 인간이 우주전체 질서 가운데 일부라는 연기적 사고와 함께 근본적인 생물종으로 행동하게끔 한다. 이는 음식선택을 넘어 사고방식과 문화의 전환이 된다. 그러므로 음식을 선택하는 인식의 질이 높아진다면 차이를 받아드리는 마음습관을 가꾸는 데도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동물성 음식을 온전히 깨어있는 정신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고통, 잔인함, 착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은 자연스레 거부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기초적인 활동이자 주요한 의식인 식사에 대한 회피와 부정의 문화가 우리 삶의 공적·사적 영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회피와 부정의 문화가 현대 인류의 깊은 분열증과 그림자로 남아 또다른 상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식사에 감춰진 억압, 배제의 체계적 관습은 모든 생명체의 상호 의존성을 적극적으로 무시하고 본연의 지성과 연민을 차단해 버린다. 

관계를 찾아내는 능력이자 고통을 덜어주려는 열망이 억제되면서 기아, 생태계, 공동체 파괴 등 미래 세대에 끼칠 고통도 무감각해진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룰 능력도 서서히 억압된다.

‘고기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의 문제는 전혀 새로운 의미를 보여주며 상황도 매우 긴급해졌다. 오늘날 생명체들이 수정되고 길러지는 과정에서 무자비하고 조직적으로 대량학대가 자행된 역사는 없었다. 사육으로 인한 지구상의 자원소모 및 환경오염과 파괴가 이처럼 막대한 적도 없었다. 이러한 경향은 이제 기후위기와 만성 질환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삶에 뿌리내린 일상의 민주주의는 건강, 지구환경, 생명,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끼니마다 시장에서 무엇을 구입하느냐는 선거이자 일종이 투표 행위가 된다. 즉 일상의 민주주의는 우주적 공공성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마음에 대한 우리 인식도 새로이 만든다. 깨어있는 밥상이 우리 능력을 높이고 통찰을 깊게 할 뿐 아니라 좀 더 나은 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끌어낸다는 의미다. 동시에 민주주의 시민권 확대와 더 나은 시민공동체를 열어갈 토대가 된다. 이는 지속가능성 선순환을 열어가는 살아있는 민주주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마음으로 정치를 바라보자. 정치는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오래되고 고귀한 노력이다. 이때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이란 시스템으로 정치적 견해에서 오는 차이와 갈등을 창조적으로 끌어안을 최선의 제도가 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러한 제도와 인간 마음이 지닌 강, 약점 속에서 쉬지 않고 이뤄지는 실험이며 그 성과는 결코 당연시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양자택일의 딜레마로 만연해 있다. 하지만 양자대립의 긴장을 충분히 붙들어 마음을 연다면 우리의 긴장은 파괴적인 힘에서 창조적인 에너지로 변형될 수 있다. 

경계가 부서져 마음이 열릴 때 솟아나는 선량함은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하게 만드는 우울증과 비통함에서 연결을 확장해, 그 긴장감을 생활의 유익함으로 이끌어 낸다. 고통은 공동체로, 갈등은 창조적 에너지로. 긴장은 공공선을 향한 출구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란 우리 내면이 본래 가진 선함을 불러내 다시 발견하게끔 하고, 거기에 맞춰 올바른 선택 습관을 더 깊이 뿌리내리게 하며, 인간의 잠재력과 마음의 가능성을 꽃피우는 살림의 문화이기도 하다. 즉 채워질 수 없는 영원한 비극인 열망과 현실의 간극을 받아들이고 그 간극을 채워가는 끊임없는 실험이자 정의롭고 평등하며 자비로운 세계를 위해 차이와 다양성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마음 사용법을 배우는 학습인 것이다.

고용석 한국 채식문화원 공동대표

[1598호 / 2021년 8월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