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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전통의 한국 비구니승단, 묻혀선 안 될 불교사의 반쪽”

  • 무진등
  • 입력 2021.08.28 14:00
  • 수정 2021.08.28 17:22
  • 호수 1599
  • 댓글 4

1997년 미국서 ‘동아시아 비구니승단’ 오류 바로 잡고자 찾아본 한국 비구니승단사
연구 서적 한 권 없는 현실에 충격…2007년 독일 국제회합서 한국 비구니 위상 알려
미국학생들과 한국서 템플스테이도…봉려관 스님 연구 계획 “인생 2막의 목표”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들어온 이향순 미국 조지아주립대학 교수를 용인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한국 비구니스님들 자취를 복원하는 데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감히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해?”

욱한 마음이 올라왔다. 이향순 미국 조지아주립대학 비교문학과 교수의 미간이 잔뜩 찌푸러졌다.

사건의 발단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이수한 이 교수는 당시 조지아주립대학에서 비교문학과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하루는 동료 교수가 그에게 급작스런 부탁 하나를 하게 된다.

“이 교수, 개인 사정이 생겨서 이번 학기에 ‘동아시아문화’ 수업을 못 하게 됐어. 이번 학기만 수업 좀 부탁할게.”

학과에서 유일한 동아시아인이긴 했으나 그렇다고 동아시아문화까지 모두 알까. 대학시절부터 영문학을 전공했던 터라 한문조차 낯설던 그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없다”고 했다. 하지만 동료 교수는 “3학년 수업이라 큰 부담은 없을 것”이라며 기어코 그에게 떠맡겼다.

걱정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에게 어떻게 동아시아문화를 설명한단 말인가. 연구실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때 불교, 유교, 도교의 고전을 한 권씩 읽어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책을 찾다보니 불교경전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무엇이 중요한 경전인 지 몰라 우선 불교개론서를 폈다. 그러던 중 한 문장이 이 교수의 시선에 꽂혔다.

‘전 세계 비구니승단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비구니승단이 없다고? 그의 머리에 서울 인사동에서 보았던 비구니스님들 모습이 또렷히 스쳤다. 저자가 동아시아사를 왜곡하고 있는 건가. 순간 발끈했다. 저자의 전자우편 주소를 급히 찾았다. ‘메일쓰기’를 눌러 ‘동아시아사 비구니승단 설명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문장을 이을 말이 없었다. 모니터에서 껌벅이는 커서만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실제로 봤다”며 그저 우길 수만도 없는 상황.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도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 일단 한국에 들어가서 비구니승단 자료를 찾아오자.’

이듬해였던 1998년. 여름방학이 되자 이 교수는 급히 한국을 찾았다.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트렁크를 던져놓고 서울 법련사 불일서적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서점 사장에게 대뜸 “한국 비구니스님과 관련된 책을 모두 사고 싶다”고 했다. 사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잠깐 기다려보라던 사장은 10분 뒤 머쓱한 듯 다가와 이야기를 꺼냈다.

“비구니 관련 책이 정말 하나도 없네요.”

모든 영역이 촘촘히 연구돼 ‘박사학위 주제 찾기가 바늘구멍 찾듯 어렵다’던 영문학을 오랫동안 공부했던 터라 이 상황은 더 낯설게 다가왔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불교에서 이렇게 큰 분야의 연구가 안 돼있다니. 이 교수의 당황스런 표정에 서점 사장은 “혹시 모르니 이곳으로 연락 해보라”며 번호를 건넸다.

이 교수는 서점 앞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갔다. 전화를 걸자 “여보세요”라는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대뜸 “미국에서 한국 비구니 자료를 찾고자 왔는데 자료가 정말 없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고, 우리가 우리 역사를 써야하는데 아직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미안해 했다. 그런 그가 마음에 걸렸는지 “괜찮다면 차를 한 잔 사도 되겠느냐”는 말이 이어졌다. 그렇게 인연이 된 게 동국대 선학과 교수 혜원 스님이었다. 이 교수는 스님과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의 문제의식은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승단 안의 문제라기보다는 여성의 삶이 역사에 묻혀 있는 구체적 사례로 느껴졌다. 페미니즘 의식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묘한 사명감이 싹텄다. 한국 비구니사를 발굴해야겠다. 그러자 그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전공은 영문학, 부전공은 영어학. 그런 그가 불교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무작정 역사서를 뒤졌고 비구니의 ‘니(尼)’자만 보이면 불을 켜고서 수집했다. 이 교수는 그때를 회상하며 “여우라면 꾀라도 있어 수월했지 곰처럼 미련하게 자료를 찾아댔다”고 웃었다. 수없는 시행착오 덕에 그의 고민은 느리지만 묵직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비구니승단의 역사는 놀라웠다. 고대 한반도 비구니스님들은 일본 최초의 비구니를 배출시킬 정도로 활동 반경이 컸고 영향력도 막강했다. 조선시대 서슬퍼런 배불정책 하에서도 치열하게 법맥을 이었다. 모든 체제가 무너졌던 1901년에도 563명의 비구니가 각지서 도량을 지키며 수행 전통을 지켜냈다.

그의 ‘영문학’ 전공이 빛을 발할 때도 있었다. 이 교수가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正史)에 없는 비구니 역사를 문학에서 찾아낸 것이다. ‘순천승주향토지’를 통해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비구니 보운·보련·보월 스님 행장을 발굴하고 조지훈의 ‘승무’, 백석의 ‘여승’, 한용운의 ‘무명’, 정한숙의 ‘금어’, 박완서의 ‘환각의 나비’, 한승원의 ‘아제아제바라아제’, 남지심의 ‘우담바라’ 등 근·현대 소설에 담긴 사회상을 통해 비구니스님들의 역할과 위상을 탐색했다. 설요·예순·혜정·담도 등 비구니스님이 직접 쓴 한시로 스님들 각자가 인식했던 시대의 자화상도 확인했다. 이러한 연구 성과는 2008년 서적 ‘비구니와 한국문학’으로 발간됐고 이듬해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그냥 종교인으로 볼 수도 있죠. 하지만 역사를 살펴볼수록 사회에서 뛰어난 여성으로 보이더군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열녀·효부로 살아갈 어쩌면 틀에 박힌 인생을 거부했잖아요. 그것도 ‘출가’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서요. 지적 호기심이 많고 용기가 대단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낼 수 없는 마음이죠.”

이 교수는 비구니연구에 첫 인연이 됐던 혜원 스님을 미국 조지아주립대학으로 초청해 강연을 열었다. 한국 비구니승단을 미국에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반응은 뜨거웠다. 반쯤 찰 줄 알았던 강당이 그야말로 미어터졌다. 복도에까지 의자를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비구니승단에 대한 관심을 확인한 그는 좀 더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미국 동아시아학회에 한국 비구니 연구에 관한 패널을 최초로 구성해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한국불교에 정통한 로버트 버스웰 UCLA 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도 토론자로 섭외했다. 이후 학회소식을 접한 일본 비구니사 연구의 권위자 바바라 루치 미국 콜롬비아대학 교수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한국 비구니승단 연구를 너무나 기다렸다”며 “전폭적인 지원을 할테니 한국 비구니스님들을 모시고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해 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다.

2007년 7월에는 독일 함부르크대학서 열린 ‘제1회 불교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국제회합’에 묘엄 스님과 명성 스님 등 36명의 비구니스님을 모시고 등장해 세계에 한국 비구니승단의 위상을 알렸다. 달라이라마를 비롯해 30여개국에서 온 500여명의 스님이 모인 회의였다. 이날 이 교수는 ‘조선시대 비구니 승단의 변천사’를 주제로 남장사 감로탱(1701), 여천 흥국사 감로탱(1741), 봉서암 감로탱(1759), 백천사 운대암 감로탱(1801) 등 비구니·식차마나니 모습이 담긴 탱화를 소개하며 “한국 비구니승단은 조선시대에도 식차마나가 존재했을 정도로 계맥이 꾸준히 유지됐고 그 역할 또한 교단 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7월18~20일 열린 ‘제1회 불교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국제 회합’에 다. 사진출처=재외동포신문
2007년 7월18~20일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열린 ‘제1회 불교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국제 회합’에 묘엄 스님과 명성 스님 등 36명의 비구니스님이 참석했다. 사진출처=재외동포신문
2007년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열린 ‘승가에서 여성의 역할’ 학술세미나에서 운문사 명성 스님이 개막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통역을 하고 있는 이향순 교수. 사진출처=불교평론
2007년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열린 ‘승가에서 여성의 역할’ 학술세미나에서 운문사 명성 스님이 개막축하 연설을 하고 있다. 통역을 하고 있는 이향순 교수. 사진출처=불교평론
2007년 7월 독일 함부르크대학서 열린 ‘제1회 불교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국제회합’은 달라이라마를 비롯해 30여개국에서 온 500여명의 스님이 모인 회의였다.
2007년 7월 독일 함부르크대학서 열린 ‘제1회 불교여성들의 역할에 관한 국제회합’은 달라이라마를 비롯해 30여개국에서 온 500여명의 스님이 모인 회의였다.

“불교학 전공자도 아니고 뒤늦게 시작한 연구지만 발간한 책이 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고 학술 연구에 수많은 근거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비구니스님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어요. 이쪽저쪽에서 부처님 가피가 번쩍번쩍했죠. 지어놓은 복을 쓰고만 있어 두려운 마음이 들 때가 있을 정도에요.”

하지만 이 교수의 행보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코로나19로 최근 중단되긴 했으나 2003년부터 격년으로 조지아주립대학 장학생들을 한국불교와 인연 맺어 주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학년 봄방학을 이용해 청도 운문사, 순천 송광사, 해남 대흥사 등 전국 산사에서 새벽예불, 108배, 발우공양으로 시작되는 템플스테이를 하며 한국불교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3월이면 새벽이 아직 춥잖아요. 첫날엔 대방 온돌이 뜨거워 당황하던 아이들이 새벽예불이 끝나면 온돌에 몸을 지지러 뛰어간다니까요. ‘뜨근한 온돌이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드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세계 곳곳을 다녀본 학생들이지만 고요한 새벽 울리는 범종 소리, 스님들의 정갈하고 격식있는 모습, 맑은 목탁 소리, 발우공양의 의미를 알고 나면 “미스테리한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깊은 여운을 가진다고 한다. 한국불교를 전공하고 싶다는 학생도 종종 등장한다. 이 교수의 활약 덕분에 이제 ‘한국산사 탐방’ 프로그램은 조지아주립대학 장학생이라면 반드시 체험해야할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z운문사 비구니스님들과 조지아주립대학 학생들. (사진출처=운문사 홈페이지)
운문사 비구니스님들과 조지아주립대학 학생들. (사진출처=운문사 홈페이지)
운문사를 방문해 명성 스님과 자리를 함께한 이향순(명성 스님 왼쪽) 교수와 학생들. (사진출처=운문사 홈페이지)
조지아주립대학서 열린 참선 교육.

그런 이 교수는 요즘 ‘봉려관 스님(蓬廬觀, 1865~1938)’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1907년 해남 대흥사에서 출가한 봉려관 스님은 근대 제주불교 최초 비구니다. 1909년 봄 한라산 중턱에 관음사를 창건하고 200여년간 암흑기로 이어졌던 제주 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인물이지만 최근 일부학자들의 의도적인 왜곡으로 스님의 31년 행보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이 교수는 우려했다.

“조선의 상인 김만덕이 전 재산을 풀어 백성을 구제했다면 봉려관 스님은 6년 동안 제주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민중을 돌봤어요. 그들의 정신적인 버팀목이었죠. 특히 독립운동을 지원하고자 세운 법정사는 봉려관 스님의 엄청난 원력의 결실이에요.”

봉려관 스님(蓬廬觀, 1865~1938).

그는 봉려관 스님의 역사를 바로잡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혜달 스님과 함께 ‘제주불교 참모습’을 복원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봉려관 스님을 불교계 바깥으로 끌어내 전 세계인이 존경하는 비구니스님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향순 교수. 한국불교 전공자보다 불교 알리기에 더 적극적인 그의 인생 2막이 기대되는 이유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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