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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멋졌다”

기자명 이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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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4.03.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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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 대한 예의-배려 사라진 시대

권위 살아있는 ‘마지막 보루’입증


“총무원장 스님은 대통령의 고충을 잘 헤아려서 국정운영을 하는데 적극 협조를 당부합니다.” “종정 예하의 뜻을 받들어 국정운영에 협조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난 12월 22일 해인사에서 있었던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과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대화에 많은 국민들은 신선한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우선 그 모습이 생소하기도 했거니와 매우 아름다운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사패산 터널공사를 백지화하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며 직접 해인사를 찾아온 대통령의 난감한 사정을 전해들은 종정 스님이 즉석에서 총무원장에게 내린 이 당부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많은 국책사업의 차질 등 국정을 우려하던 많은 이들에게 청량음료와 같은 장면이었던 것이다.

불교계의 피해를 줄이고, 자존심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나라의 원활한 운영이라는 생각으로 대통령의 고민을 덜어준 종정 스님의 결단과, 직접 사패산 터널 반대의 일선에 섰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말씀을 존중해 받들겠다는 총무원장 스님의 화답은,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는 매우 오랜만에 만나는 드문 광경이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지겹게 들었던 대통령에 대한 비난과 상처 입히기는,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솔직히 도를 넘는 것이었다. 나라를 경영하는 지도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이 사라진, 심지어 국민이 선택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패륜이 버젓이 횡행한 것이 지난 1년이었다.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여기에 글을 기고하는 사람들조차 마치 대통령을 걸고 넘어가는 것이 미덕인양 기승을 부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오죽했으면 한 유명 소설가가 ‘독자노릇 하기도 힘들다’는 내용의 칼럼까지 발표했을까.

상대의 입장을 존중하고, 반대를 하더라도 예의를 차리는 일이 시나브로 사라져가던 시점에 나온 해인사에서의 정경이 국민에게 반갑고 신선하게 다가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를 헐뜯고 깎아내리는,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고 상대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고질병으로 악화될 즈음 나온 이 장면은 실로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안이었기에 종정 스님과 총무원장 스님의 결단과 수용은 더욱 빛나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사패산 철마선원에서 지난 2년간 온몸으로 산을 지키던 보성 스님도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개인의 입장을 떠나 종정 스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종도로서 지켜야할 마땅한 도리라는 이유에서다. 위계질서와 권위가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불교계가 보여준 이런 광경들은 우리 사회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서게 될 것으로 믿는다.

해인사 모임이 있던 날, 한 지인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화를 걸어왔다.

“불교계가 이렇게 멋진 곳인 줄 몰랐습니다. 스님들이 보여준 모습은 그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 입장보다 상대의 입장, 집단의 입장보다 국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원칙을 잃어버린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계는 위계와 권위가 살아있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이학종 부장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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