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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霜松의 지조로 자신을 정제하세요”

기자명 이학종
  • 인터뷰
  • 입력 2004.03.22 13:00
  • 수정 2017.07.04 15:52
  • 댓글 0

봉은사 조실 석 주 스님 특별인터뷰

새해 벽두, 문득 석주 큰스님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뭘 망설이랴. 전화로 절에 계심을 확인하고는 주석처인 봉은사로 달려갔다. 찰나라도 빨리 큰스님의 향훈을 느껴야 한다는 조급함이 목까지 차올랐음이다. 이 조급함은 지난 연말 서옹, 월하, 청화, 덕암 큰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이 하나 둘 입적에 들면서 생겨난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오가며 만난 대다수의 불자들이 이런 증세에 시달리고 있음을 확인했던 터라, 우리시대 마지막 큰 스승 석주 큰스님의 모습, 일과가 한층 더 궁금하고 간절해지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불자로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리라.

“서리와 소나무 같은 지조로 자신을 정제하고, 물에 담긴 달처럼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대하라(霜松潔操 水月虛襟).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지. 영명연수 선사 문집의 서문에 나오는 글인데, 시류와 이해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탐심으로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야.”

<사진설명>석주 스님은 "큰스님들의 잇단 열반에 마음이 허전할수록 정진할 것"을 불자들에게 당부했다 사진=심정섭 기자

갑신년 새해 덕담 한마디를 내려달라는 부탁에 대해 석주(昔珠) 큰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당신도 이 구절을 좋아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글귀를 좋아하며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붓글씨로 써서 여기저기 보시도 많이 했다는 스님은 요즘 세월이 이 글귀를 간절히 여길 수밖에 없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또 원숭이의 해를 맞았으니, 모든 불자들이 삼장법사를 따라 구법여행을 떠났던 서유기의 원숭이처럼 선업을 쌓고, 또 예로부터 수행자들의 흉내를 내던 원숭이가 그 공덕으로 성불을 했다는 이야기가 오래 전부터 불가에서 전해오는 만큼 정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95세의 고령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종 청명한 미소를 머금은 스님은 정치권의 부정부패와 각계각층의 갈등으로 극도의 혼란을 보이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 불제자들만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실천하며 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그 마음을 선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직한 삶, 마음을 착하게 활용하는 것 외에 다른 비결이 있을 수 없다는 스님은 불교계를 중심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환경보존 문제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환경을 보호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 하겠지만, 국민의 삶이 편안해지고 정부의 정책이 차질을 빚지 않도록 협조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많은 선지식들이 잇따라 입적에 드는 것에 대해 석주 큰스님은 안타깝고 허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함께 수행을 했던 스님들이 줄이어 사바세계의 인연을 접는 것에 대한 소감을 스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사진설명>석주 스님은 "마음을 선하게 사용하라"고 마음씀씀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참 많은 선지식들이 갔어.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분들이 가신 일은 없는데, 파계사 고송 스님을 비롯해서, 월하 스님, 서옹 스님까지…. 선지식들이 너무 빨리 다 가버렸으니 안된 일이지. 이제 선지식은 젊은 사람들 몇 밖에 없는 것 같아. 하긴 갈 때가 되었으니 가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고 허전한 일이지. 불자들이 아마 허전한 마음과 서운함을 느낄 테지만 그럴수록 더 정진하고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예전 만공 스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수좌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도 수월, 혜월 스님 등 선지식이 많았는데, 오늘날에는 수좌는 많지만 선지식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차이라고 지적한 석주 스님은 “요즘 수좌들 중 선지식이 더러 계시고 또 열심히 공부하는 분들이 많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고, 특히 재가자들은 살아가다보면 참선정진에 장애가 많겠지만 더욱 정진하고, 참선이 어려우면 염불, 주력 등 어느 것 한 가지를 반드시 정해서 쉼 없이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의 글씨를 두고 중국의 왕희지 시대 한 대가의 서체와 닮았다는 일각의 평가에 대한 석주스님의 반응은 그저 담담하고 간단하다. 출가 전 글방에 다닐 때 붓글씨를 좀 배웠을 뿐 누구의 글씨체를 따르거나 한 것은 없고, 글이 늘었다면 아마 군법사들이 주로 포교에 도움이 되니 글씨를 몇 점 써달라고 부탁을 자주 받아 들어주다보니 조금 체계가 잡힌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석주 스님은 문턱이 없는 스님이다. 누구든 스님을 친견하고자 찾아오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반갑게 맞는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조언도 하고, 그렇게 한 세기를 살아오신 분이다. 스님의 회상에 문턱을 없앤 연유는 부처님이 중생에 대한 연민으로 누구든 가리지 않고 설법을 해주신 것과 다르지 않다. 문턱을 만들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는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모르는 일이다. 이 일을 스님은 백수가 가까운 고령에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일반인들도 알아듣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법당의 현판을 ‘큰법당’으로 바꾸고, 기둥의 주련을 한글로 써서 달았던 스님이시니, 모든 것을 불자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스님의 마음크기를 어찌 혜량할 수 있으랴.

스님의 요즘 하루일과는 여느 스님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정진을 하고 예불 후 다시 정진, 포행을 거듭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대중 스님들이 신경을 쓰지 않도록 법당이 아닌 법왕루에서 예불을 올리는 점, 거동이 불편해 공양을 거처에서 드시는 것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 후학들에 대한 배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가 다 살아있는 교훈이자 감동의 법문인 셈이다.

스님의 거처하는 집 다래헌은 찻길에 인접해 있어 다소 시끄럽다. 그러나 스님은 이를 두고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저 평생을 깊은 산중이 아닌 도시에서 뭇 중생과 가까이 살아오셨기에 그리 큰 불편을 느끼지는 않는다고 말씀하실 뿐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래헌을 나서는 우리 일행을 위해 문밖까지 배웅을 나오시는 큰스님의 자상함에 울컥 눈물이 솟는다. 그 감동의 조화인가. 선지식들이 하나 둘 열반에 드시면서, 더욱 더 그립고 간절해진 석주 큰스님의 법향을 새해 아침 법보신문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하기 위해 신문사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이토록 가벼운 것은.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 석주 스님은

1909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해 23년 남전 큰스님을 은사로 선학원에 출가했다. 이후 28년 부산 범어사에서 득도, 33년 범어사 불교전문강원 대교과 이수, 36년 오대산 상원사, 금강산 마하연사, 덕숭산 정혜사, 묘향산 보현사 등 전국제방의 선원에서 안거, 71년 조계종 총무원장, 76년 은해사 주지, 77년 조계종 포교원장, 80년 중앙승가대학장, 84년 조계종 총무원장, 85년 대한불교문서포교원 총재, 88년 중앙승가대학 명예학장, 89년 동국역경사업진흥회 이사장, 94년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 97년 보문사 사회복지시설 안양원 설립, 98년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고문을 엮임하고 99년부터 칠보사 조실, 봉은사 조실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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