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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수행 실천하면 나와 이웃 모두 행복”

기자명 이재형

30년간 염불수행 위강원 전 병 롱 원장

서울 종로5가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전병롱(53·홍원) 원장은 세간에서 치열하게 정진하고 있는 수행자다. 지난 30여 년째 화두와 염불 수행을 하고 있는 전 원장의 일과는 밤 1시부터 시작된다. 남들이 깊은 잠에 들 무렵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목욕재계하고 정진에 들어간다. 그는 먼저 초를 밝히고 향을 사른 후 부처님을 찬탄하는 예불과 수많은 무주고혼들의 왕생을 기원하는 발원부터 시작한다. 일반인들 눈에야 보이지 않지만 구중에서 헤매는 불쌍한 영가들이 수없이 많고, 이들이 천도돼야 살아있는 사람들은 물론 국운까지도 융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분 정도 예불을 한 후 1080배 정진에 들어간다. 처음 시작할 무렵에는 힘도 들었지만 십수 년 계속 하다보니 이제는 절을 오래해도 숨이 가쁘지 않고 땀도 나지 않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진설명>"참맛을 알고 나면 안할 수 없는 게 수행"이라고 강조하는 전병롱 원장.


매일 새벽 1∼6시까지 수행

그렇게 예불과 절이 마치면 출근 전까지 3~4시간 동안 아미타불을 지성으로 염하며 번뇌와 업장을 닦아 나간다. 염불에 집중하다보면 마음에 환희심이 솟고 나중에는 육신의 무게가 사라지고 공적한 경지에 이르곤 한다. 전 원장은 정토세계가 있음을 확신한다. 중국의 관정 스님이 정토세계를 경험했던 것처럼 그도 정토세계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험이 수행의 궁극에서 아니면 반대로 별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염불을 일심으로 하다보면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 원장은 또 매주 주말이면 깊은 산사를 찾아 잠을 자지 않고 수행에 전념하는 가행정진을 꼭 실시하고 있다. 가행정진이 있어야 깊은 경지에 나아갈 수 있고, 평일 수행도 힘이 붙기 때문이란다.

전 원장의 불연(佛緣)은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인사 부근에 살았던 그는 독실한 불자였던 부모님을 따라 사찰에 자주 다녔고, 새벽마다 가족이 함께 염불을 하곤 했다. 그렇게 불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전 원장은 고등학교 졸업 후 경희대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아픈 이들을 돌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방학을 이용해 명산대찰의 기도처를 찾아다니며 간절히 기도했고, 빈 암자가 있으면 손수 공양을 짓고 빨래도 하며 부처님을 시봉하며 염불했다. 또 49일 혹은 100일 등 일정한 기간을 정해 기도정진에 들어가기도 했다. 마음이 간절해질수록 부처님의 명훈가피를 체험했고 시방삼세에 상주하는 부처님의 무한한 능력을 감지하기도 했다. 여기에 정진할수록 반야의 지혜가 솟아나고 혜안이 조금씩 열리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전 원장은 사람 몸 받기 어렵고, 사람 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불법 만나기가 정말 어려운 일임을 갈수록 절감했다. 그리고 자신을 이끌어 줄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관음기도에 들어갔다.

염불로 공적한 경지 이르러

그 때문일까. 전 원장은 태백산 문수암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홀로 수행정진하는 94세의 향승 노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한없이 자비롭고 해맑은 모습, 철저한 수행자가 아니면 지닐 수 없는 해맑은 눈빛과 온몸에서히 풍겨져 나오는 은은한 향이 영락없는 도인이었다.
“내가 미숙하고 복이 없어 그 당시에 많은 것을 여쭙고 배우지 못했지만, 공부가 조금씩 나아지니 그 스님은 진리의 본체에 입각해 정견을 가지고 정념 속에서 정정진을 해나가신 대선지식이셨다는 알겠더라고요.”

향승 노스님은 그에게 행주좌와 어묵동정 아미타불을 간절히 염(念)할 것과 수행에 장애가 있거나 나태심이 생기면 부처님께 지성으로 참회하고 발원할 것을 강조했다. 또 항상 안과 밖을 청정하게 해 모든 경계가 꿈인 줄 알고 이끌리지 말며, 마음이 청정해야 불보살님의 가피로서 쉽게 삼매에 들 수 있음을 일러 주었다. 노스님의 지도로 전 원장은 과거에 대한 생각도 없어지고 미래에 대한 생각도 없어지고 오로지 순간순간의 뚜렷한 염불삼매가 영원을 향해 이어지는 듯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장남이었던 전 원장은 노스님 곁을 떠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져야 했다. 세속에서의 수행은 산속보다 몇 배의 힘이 들었다. 염불을 해도 망상에 젖기 일쑤였고 정진 시간도 갈수록 줄어들었다. 상근기 도인이 아니라면 산사에서처럼 똑같이 수행하기란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절망이 깊어갈수록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다짐도 커졌다.

문경 봉암사에서 선사로부터 ‘무’자 화두를 해볼 것을 권유받은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스님의 말씀대로 치열하게 정진했다. 그러나 화두는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겉돌기만 했다. 큰스님은 “송곳으로 단단한 나무를 뚫듯 정진해야 한다”고 일렀건만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역대조사들의 어록과 선사들의 법문집을 부지런히 탐독했다. 그럼에도 화두는 성글지 않고 잡념만 늘어갔다. 반면에 마음 깊숙이 소리 없이 흘러나오는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고 관하면 금방 마음은 고요하고 정(定)에 들어버림을 느끼고는 했다. 그렇게 갈등과 회의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청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스님의 스승인 금타 스님의 좬보리방편문좭을 접하면서 홀연히 마음이 열리고 커다란 광명이 가슴을 메웠다. 전 원장은 자신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무쳤던 아미타불이 상주불멸의 실상이요, 우주의 생명이요, 광명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염불과 선(禪)이 둘이 아님도 깊이 깨달았다.

“큰스님들의 지중한 은혜를 생각하면 한순간도 방일해선 안되죠. 부처님의 혜명을 잇고 무생법인을 이루어 무량중생을 제도하는 게 그분들의 은혜를 갚는 것이고,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의 길일테니까요.”


수행의 관건은 ‘간절함’

전 원장은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간절함’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간절함은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전을 읽고 계율을 지킬 때 비로소 생긴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수행은 그동안 쌓인 습기를 제거해 청정한 자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 길은 최고의 진리와 행복을 터득하고 체화하는 과정입니다. 수행은 일정 단계까지 오르기가 어렵지 일단 수행의 맛을 알게 되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으니까요.”

<사진설명>전 원장은 모든 환자들이 아미타부처님이라고말한다.

한의원을 운영하며 남은 수익금을 어려운 이웃을 돕고 많은 사찰의 불사금으로 보시하고 있는 전 원장은 “진정한 수행은 자신과 더불어 남들까지 행복해지는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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