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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단계』/들녘

기자명 이학종

자비, 수행의 시작이자 궁극

수행의미-단계 자상하게 설명

“지극한 연민이 곧 대보리심”


불교를 수행의 종교라고 한다. 수행은 불교를 다른 종교와 구분 짓게 하는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정작 불교를 믿고 실천하겠다며 귀의한 불자들조차 수행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분명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을 수지하고, 부처님이 행했던 좌선, 명상 등을 좇고 있는데도 정작 그 근본은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행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보니 자연 온갖 수행법이 난무한다. 한국불교의 대표 수행법으로 인정되는 참선 수행법은 보통의 불자들에게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큰 벽으로 남아 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선지식들의 10년 또는 50년을 눕지 않았다는 놀라운 수행이력은 경외심과 함께 참선법을 감히 범접 못할 준령으로 인식시켜줄 뿐이다.

이런 현실은 자연히 상대적으로 간편하고 성취가 빠른 것으로 보이는 갖가지 수행법들을 유행시키는 토양이 되고 있다. 불교 수행법과 관련된 혼란은 전례 없이 수행이 주목받고 있는 21세기 벽두에 한국불교계가 해결해 나가야할 중차대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만난 티베트 달라이라마 승왕의 주석서 『수행의 단계』는 가뭄 끝에 만나는 단비와 같은 책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8세기의 인도 학승 카말라실라의 저술 『수습차제』에 대한 달라이라마의 설법내용을 담은 것이다. 수행의 의미와 단계, 궁극적인 목적을 이처럼 쉽고 자상하며, 설득력 있게 제시한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깊이와 수준이 낮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달라이라마는, 이 책(수습차제)의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다른 논서들을 읽는 데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달라이라마는 이 책에서 ‘수행의 단계’를 설명하며 ‘자비’를 수행의 최우선 조건이라고 못 박고 있다. 불교의 수행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 결과도 자비이며 자비가 수행의 출발점이 되지 않는다면 수행의 목적을 올바로 성취할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아울러 자비의 시작은 살아 있는 존재의 고통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정신적·사상적 지도자로서의 달라이라마의 진면목을 여실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색다른 뿌듯함이다. 쉽고 평이한 용어를 통해 수행의 심원한 의미를 드러내는 그의 탁견에 마치 홀린 듯 빠져드는 경험을 이 책은 제공해준다.

누구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와는 관계가 먼 것으로 느껴졌던 수행이 성큼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수행이라는 것이 불교에서 왜 중요하며 왜 반드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시나브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 한국불교계에서는 마치 편법처럼 치부되던 방편이 왜 수행의 완성과 둘이 될 수 없는가를 알게 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수행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왜 지극한 연민에서 비롯된 대자비심(보리심)의 표출이어야 하는지를 절감하게 될 것이다.

비록 이 책이 한국불교의 정통수행법인 참선법과 곧잘 대비되는 남방의 사마타와 위파사나를 다루고 있지만, 책을 펴는 순간 이 수행법 또한 대소승의 구분 없이 실천해야할 수승한 수행법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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