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인사승가대학 학감 법장 스님

지금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우바새·우바이도 승가 구성원…‘정회원’ 조건은 계·정·혜 삼학
불자로서 삶은 선행에서 시작돼 선정과 지혜로 이어지는 것
좋고 나쁜 결과 바꿀 주인공은 바로 나, 바깥에서 찾지 말아야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행방법과 나라의 전통에 따라 다양한 불교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와 전통을 초월해 공통된 것은 바로 삼보(三寶)에 대한 예경입니다. 삼보는 ‘무상정등각’의 깨달음을 이룬 석가모니 부처님과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미래의 제자들을 위해 남기신 가르침, 그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는 승단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 청정한 불법승 삼보가 있었기에 불교가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승을 스님들로만 보는 경향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승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가 모두 포함됩니다. 흔히 불교행사 때 ‘사부대중’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출가와 재가자가 원만히 화합한 집단, 그것을 일컬어 사부대중이라고 합니다. 사부대중은 불교에서 승단의 기준입니다. 출가자는 출가자로서 도리를 다하고, 재가자는 출가자를 외호하면서 그 가르침을 받아 함께 수행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재가자들도 모두 승가의 일원인 것입니다. 

우리가 승가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정회원이 되어야 합니다. 인터넷 카페 등에서 정회원, 준회원으로 나눠 특정 집단을 구분하는 것처럼 불교에서도 승단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정해놓은 매뉴얼이 있습니다. 정회원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바로 계·정·혜라고 하는 삼학(三學)입니다. ‘학’은 배운다는 것인데, 일반적으로 ‘스터디(study)’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불교에서 ‘학’은 ‘배워서 스며들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향을 싸고 있던 종이가 은은한 향내를 내듯, 비 오는 날 비를 맞지 않아도 옷에 습기가 배는 것처럼 불교에서 학은 배운 것이 일상의 삶에 저절로 스며들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알음알이가 아닌 지혜라는 것이지요.

삼학 가운데 계는 ‘하지 말라’는 의미로 많이 알고 있지만, ‘해야 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생명의 문제를 보면, 생명은 누구에게나 소중합니다. 나는 물론 가족, 내 주변의 생명까지 모두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은 내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주변의 모든 생명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계입니다. 율은 승단구성원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계율은 우리가 일상에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해놓은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할 것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막행막식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계를 익혀 모든 삶이 충만할 때 그게 바로 정이 됩니다. 그런 삶이 된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행복도 오는 것이지요.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다를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성취하는 것도 행복이 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고 해서 행복이 꼭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소확행’이라는 말처럼 일상에서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삶을 살면서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일 것입니다. 

불자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알고 찾아가는 삶을 산다면 그것이 바로 ‘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 삶은 여유롭고 밝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생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여유롭고 침착하게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지혜롭습니다.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해도 남들이 알아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뒤 녹야원으로 첫 법문을 하러 갔을 때, 부처님이 외도수행을 한다고 비난하던 5비구가 부처님을 보자마자 바로 예를 갖췄다는 말처럼, 지혜로운 사람은 남들이 저절로 알아봅니다. 

그런데 지혜롭게 살겠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일상에서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업의 작용으로 삶을 살아가는 범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업의 작용을 끊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고집멸도라고 하는 사성제입니다. ‘집고도멸’로 생각하면 사성제를 이해하는 게 조금 더 쉽습니다. 나와 나의 것이라는 집착에서 고통이 시작되고, 도를 알아야 고통을 멸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일상에서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늘 탐진치 삼독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욕심에서 집착이 생기고, 내 것을 빼앗기거나 나에게 피해를 주면 쓰나미처럼 화가 일어납니다. 불이 꺼지듯 화가 가라앉고 나면 금방 자신의 어리석음을 후회합니다. 이런 삶이 반복되다 보니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행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자신의 몸에 밴 습성을 끊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한 것이지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 가운데 무상, 무아, 고가 있습니다. 흔히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고통은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어떤 것도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나라고 할만한 것도 없습니다. 지금 존재하는 나라는 것은 혼자서 된 것이 아니라 주변의 관계성에서 성장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도 이런 관계성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관계성이 없다면 어떤 것도 이뤄질 수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연기법이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든 그것이 생겨나게된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부처님 말씀은 언제, 어디서나 통하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도 바로 연기법인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기라는 관계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어떤 결과는 어떤 원인에서 비롯됐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원인의 기폭제가 됩니다. 그런 관계성으로 우리는 성장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선인락과 악인고과(善因樂果 惡因苦果)’라고 했습니다. 

좋은 원인은 즐거운 결과를 낳고, 나쁜 원인에는 고통스러운 결과가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선인과 악인이 바로 업입니다. 선업과 악업으로도 표현됩니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반드시 그 결과를 가져옵니다. 선악의 모든 행위는 전부 기록되고, 그 기록된 행위는 업이라는 에너지가 되어 언젠가 반드시 본인에게 그 결과를 가져옵니다. 업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원인이 되는 행위를 통해 그 결과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업은 모두 나로부터 생겨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수많은 선지식들이 선업을 지으라고 강조하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선업을 짓는 것에서 불자의 삶이 시작되고 거기서 정이 완성되고 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느냐의 결과입니다. 깨끗한 삶도 좋지 못한 삶도 모두 과거 우리의 업에 따른 결과입니다. 그렇기에 인과를 안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바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내일이 청정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일은 어두울 것입니다. 어떤 삶을 사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삶의 주인공은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남의 잘못을 보지 말라. 남이 한 것이나 하지 않은 것을 보지말라. 오직 자신이 한 것이나 하지 않은 것만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부처의 삶을, 보살의 삶을 살아간다면 결국 부처가 되고 보살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도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결국 바로 여러분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삶의 주인공이니까요. 원인과 결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첫 번째는 바로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있지 않다면 주변은 없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지금 살아있지 않으면 깨달음도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어떤 관문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깨달음의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삶으로서의 하루하루 충실하고 성실하고 후회 없이 살아가길 바랍니다. 

좋은 시간에 함께해서 저 역시 기쁩니다. 우리 모두 선업을 쌓아 언제나 행복한 나날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윤태훈 기자 yth92@beopbo.com

이 법문은 해인사승가대학 학감 법장 스님이 9월28일 대한불교진흥원이 서울 마포 다보빌딩 3층 다보원에서 개최한 화요열린강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